10·17 빈곤 철폐의 날:
빈곤 없는 세상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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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10월 17일은 유엔(UN)이 정한 세계 빈곤퇴치의 날이다. 한국에서도 민중·진보단체 들이 주축이 돼 “빈곤 없는 세상은 가능하다”는 구호로 빈곤철폐의 날 투쟁대회를 연다. 올해는 경제 위기 책임전가를 통해 빈곤을 심화시킬 G20 정상회의 규탄 목소리도 크게 낼 것이다.
BBC가 전 세계에서 2만 5천 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한 결과 71퍼센트가 인류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로 빈곤을 꼽았다.
올해 세계식량농업기구(FAO) 보고서를 보면 전 세계에서 9억 7천만 명 이상이 굶주리고 있다. 세계 인구 여섯 가운데 하나 꼴로 굶주리는 것이다. 굶주림이나 관련된 질병으로 해마다 1천만 명이 죽고 있다. 열 살 미만 어린이가 5초에 한 명씩 죽고 있다.
이런 빈곤 문제는 머나먼 아프리카 문제만은 결코 아니다. ‘글로벌 코리아’에서도 정부 공식 통계로만 절대빈곤율이 12퍼센트로 6백만 명 가까운 사람이 고통받고 있다.
한국은 상대적 빈곤도 심각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것을 보면 상대적 빈곤율이 2000년 10.5퍼센트에서 2008년 14.4퍼센트로 급격히 늘었다. OECD 평균보다 4배나 빠르다.
그러나 “친서민”을 외치는 이명박 정부는 빈곤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내년 최저생계비는 폭등하는 물가 속에서 고작 5.6퍼센트 올렸다. 최저생계비 산정 내용도 비현실적이다. 정부는 빈곤층에게 두루마리 화장지 한 개로 한 달을 버티고, 휴대전화 통화는 하루에 45초만 쓰라고 한다.
빈곤 문제를 해결하려는 국제적 노력은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2000년 1백89 나라 정상들은 유엔에 모여 2015년까지 세계 기아 비율을 절반으로 줄이고 아동사망률 감소 등 여덟 개 목표를 담은 새천년개발계획을 채택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어느 것 하나 계획대로 되고 있는 것이 없어, 이대로 가다 단 한 개의 목표도 달성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최첨단 기술이 발달한 21세기에도 빈곤이 만연할까?
흔히 식량이 부족하다는 얘기를 한다. 그러나 세계식량농업기구는 이미 1980년대 생산력으로도 1백20억 명을 거뜬히 먹여 살릴 수 있다고 밝혔다.
왜
미국이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에 1천2백조 원 이상 쓰고 이명박이 땅 파는 데 수십조 원을 쓰는 상황에서 빈곤을 퇴치할 재원이 부족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빈곤으로 고통받는 것은 식량과 부는 이미 충분하지만 이를 제대로 분배하지 않아서다. 자본주의는 이윤을 위해 끝없이 경쟁하는 체제이기 때문에 식량마저 이윤 논리에 종속시킨다. 그래서 자동차, 세탁기처럼 식량도 사고파는 상품이고 돈이 없으면 시장 논리에 따라 굶는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이전에는 부가 부족해서 사람들이 굶었다면, 자본주의에서는 너무 많이 생산해도 불공정한 분배 때문에 굶는 것이다.
불공정한 분배는 상상할 수 없는 불평등을 낳는다. 이건희 재산 8조 7천억 원은 평범한 노동자가 30만 년 넘게 한 푼도 쓰지 않고 일해야 모을 수 있는 돈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부조리에 환멸을 느끼며 빈곤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한다.
사람들은 흔히 공정무역이나 자선 같은 개인적 실천을 통해 빈곤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빈곤에 전적으로 책임이 있는 탐욕스런 기업주들과 각 나라 권력자들에 대면 이런 실천은 너무나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개인적 실천을 통해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빈곤은 일부 예외적 현상이나 일탈이 아니라 자본주의 고유의 결함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빈곤과 불평등을 만들어내는 사회 구조, 즉 소수가 부와 권력을 독점하는 문제를 바로 잡아야 한다. 이런 뿌리를 건드리지 않은 채 이뤄지는 개인적 실천과 자선 등은 빈곤을 완화하기도 어렵고 오히려 문제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
빈곤의 뿌리에 도전하는 운동에는 그토록 적대적인 보수 언론과 지배자들이 자선·기부 등을 찬양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결국 개인적 실천보다 훨씬 더 큰 규모로 국제적인 부를 재분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기업주·부자들의 재산을 환수하고 세금을 부과해서 빈곤을 해결하고 복지를 확대하기 위한 일에 써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개인적 실천이 아니라 집단적 투쟁이 필요하고 그것은 빈곤의 뿌리에 도전하는 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이런 운동은 G20 정상회의처럼 경제 위기 책임을 노동자·민중에게 떠넘기려는 시도에 반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