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하이재킹 아메리카》:
미국 신보수주의자들을 해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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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타임〉의 올해 인물은 케인스였다. 헤드라인은 “이제 우리는 모두 케인스주의자”였다. 2002년 영국 노동당의 피터 맨덜슨은 “오늘날 우리는 모두 대처주의자들이다” 하고 선언했다. 한 세대를 지배하는 ‘상식’이 변했다. 40년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이 책은 이처럼 신자유주의가 등장하고 득세하는 과정을 분석하고 있다. 주된 무대는 미국이다.
1973년과 1980년의 대규모 경기후퇴가 미국 자본가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웠다. 레이건은 임금과 복지예산을 공격했다. 그러나 위기의 깊이는 단기간 전투로 메울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국내적으로는 1960년대 저항 운동으로 생겨난 평등의 가치를 철저히 무너뜨려야 했고, 국외적으로는 세계 시장의 헤게모니를 획득하기 위해 제국의 힘을 발휘해야 했다. 미국 지배자들에게는 이러한 계획을 결합시킬 교리가 필요했고 신자유주의는 곧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구현할 제국주의의 표현이 됐다.
문화적 헤게모니
공격은 곧 대규모 캠페인이 됐다. 그들은 십수 년간 치른 전투 끝에 과거엔 한낱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았던 시장지상주의 논리를 정설로 복귀시킬 수 있었다. 수전 조지는 이런 이데올로기적 변형 과정을 안토니오 그람시의 “문화적 헤게모니” 개념에 빗대어 추적한다.
1970년대 들어 조건이 무르익자 우익 사상이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핵심적인 우익재단과 우익연구소 들은 그런 진출의 교두보가 됐다.
6백여 보수재단과 기업, 개인 자선가들을 결집시킨 ‘자선원탁회의’는, 공공정책에 개입할 두뇌 집단과 행동가 집단을 양성하고 지원해 줄 법률사무소에 기금을 제공했다. 월스트리트에서 우파의 ‘레닌’으로 불린 노퀴스트는 의회 간부, 언론인, 정부 관료들을 포함한 보수단체 대표 몇 백 명을 매주 수요일 아침마다 불러 놓고 그 주에 수행할 목표를 하달했다.
경제사상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것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비판적 사상에 대한 체계적인 전투가 수행됐다. 특히 종교적 우파들은 가족 가치를 옹호하고 ‘신체 정치학’으로 불리는 낙태, 성 정체성을 둘러싼 논쟁을 촉발시켰다. 지적설계론이라는 세련된 창조론이 등장했고, 석유기업들의 지원을 업고 지구온난화 연구를 흠집 내려는 시도도 이어졌다.
‘개인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소수인종의 권리를 빼앗는 일도 했다. 대중을 원자화된 개인들로 고립시키는 이 작업들은 자유로운 시장 거래라는 철학적 뿌리로 연결된 시장 질서를 방어했다.
저자는 신자유주의가 “문화적 헤게모니”를 재구축하는 데 성공했고 이를 무너뜨리는 것은 정권교체 몇 번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특히 미국에서 진보적 축을 자처한 민주당은 “대기업의 돈에 기대고 있”고 공화당과 함께 “복지 체계를 무력화”하는 공동 주체였다며 개탄한다.
그럼에도 저자는 이런 변화가 끝날 수 있다고 말한다. “세상의 모든 진보세력”이 단결해 이런 이데올로기에 맞서 싸우고 대안을 생산해 확산시킬 “정치적 임무”를 분명히 하자고 제안한다.
2008년 금융 위기는 시장의 정당성을 훼손했다. 이라크 전의 실패는 그들이 전지전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줬다. 지배이데올로기의 설명력이 취약해지면 겁에 질린 국가는 무장력을 사용해 우리를 공포에 떨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저들의 위기를 잘 이용한다면 “문화적 헤게모니”의 지적·도덕적 우위를 무너뜨리고 체제의 중심부를 공격할 결정적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