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폐기 요구에서 후퇴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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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정부의 강력한 요구로 사실상 한미FTA 재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오바마는 중간선거를 앞두고 미국 자본가들의 환심을 사고 싶어 한다.
이명박 정부는 오바마의 요구를 거부할 의지도 근거도 없다. 애초에 한국의 자본가들이 한미FTA로 얻으려 한 핵심 효과가 공공부문을 민영화하거나 시장화해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간단한 문제는 아니지만 이를 위해 자동차 관세 문제에서 양보할 수 있는 일이다. 이미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한미FTA 체결을 위해 자동차 배기 가스 규제와 이를 기준으로 한 과세 정책을 수정하겠다고 한 바 있다.
게다가 자국민에게 그토록 안전하다고 홍보한 미국산 쇠고기를 더 많이 수입할 수 없다고 할 근거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한미FTA 저지 범국본이 ‘재협상 반대’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 현행 한미FTA 협정이 덜 나쁜 것이라는 차악 논리에 힘을 실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노무현 정부 때 열우당 한미FTA 특별위원장을 지냈던 송영길은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며 “노무현 대통령 하에서 체결한 한미FTA 합의안을 고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주당 대표가 된 손학규도 비슷한 논리로 민주당 내 일부 의원들의 ‘재협상’ 요구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자동차 ‘재협상 반대’는 한국 노동자들이 한국 자본가와 미국 자본가 사이에서 한국 자본가를 편드는 결과를 낳는다. 이는 한미FTA 같은 신자유주의 정책에 맞서 함께 싸워야 할 한국 노동자들과 미국 노동자들의 단결에 걸림돌이 될 것이다.
고려
한미FTA 저지 범국본 내의 주요 단체인 진보연대와 민주노동당의 일부 지도자들은 정부의 재협상을 반대하며 ‘전면 재협상’을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미 국회 외통위까지 통과하고 본회의 상정만 남겨둔 한미FTA 협정을 무효화하려면 민주당과의 연대도 “세심하고 신중하게 고려”해야 하는데 기존의 ‘한미FTA 폐기’ 요구는 이를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현재 상황에서 한미FTA를 실질적으로 저지할 힘이 거리가 아니라 국회에 있다는 현실론으로 이런 후퇴를 합리화하고 있는 듯하다. 지난 지방선거 이래로 본격화한 반MB 민주연합 논리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그러나 민주당이 “전면 재협상” 요구를 당론으로 채택할 가능성은 없다. 민주당은 집권당 시절에 한미FTA를 추진한 당사자다. 일부 민주당 의원들이 서명한 재협상 촉구 서한의 내용도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모호하고 두루뭉술한 표현들로 채워져 있을 뿐 핵심 문제들은 전혀 지적하지 않고 있다.
민주당 내 재협상파의 주장 즉, ‘일부 독소 조항을 제거하는 재협상’이 유일한 실현가능한 목표라는 식의 주장은 이미 한미FTA 반대 운동 내 일부 개혁주의자들이 제기했다가 다수의 반대에 부딪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 편에게는 “전면 재협상”이 “사실상 폐기”를 뜻한다고 말하고 민주당에게는 그것이 “이명박식 재협상 반대”를 뜻한다고 말하는 것은 전술이 아니라 책략일 뿐이다. 그것도 나쁜 책략이다. 민주당은 “전면 재협상”을 수용하지 않을 것인 반면, 우리편 사이에서는 분란과 혼란을 조성하기 때문이다.
한미FTA 저지 범국본은 한미FTA 폐기 요구에서 후퇴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