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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새세상연구소의 “균형외교”론:
반제국주의 관점이 실종되다

얼마 전 중국 국가부주석 시진핑이 한국전쟁을 두고 “평화를 지키고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말하자 이명박 정부는 “한국전쟁은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했다”며 반발했다.

민주노동당 부설 새세상연구소는 이를 두고 “MB에게는 전략적 사고가 없다”고 비판했다(새세상연구소의 주간 브리핑 〈통일돋보기〉 50호). “현실적 실익만으로 고려한다면 한국에게 중국은 미국보다 더 중요한 존재가 됐기 때문이다.”

“‘국익을 고려해 미국을 자극해서는 안 된다’는 한국 지배집단의 전통적 논리는 ‘국익을 고려해 중국을 자극해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바뀌어야 할 상황”으로 “강대국들 사이에서 실익을 보장” 받으려면 “한국 외교의 전략은 균형외교”여야 한다는 것이다.

새세상연구소의 지적처럼 이명박 정부의 정책들 중에는 “한중관계에 암초가 될 것들”이 상당히 많다 — 한미동맹 강화, 대북적대 정책, 최근의 MD 문제. 이런 문제들은 점증하는 중미 갈등 속에 한국을 휘말려 들게 할 정책들인 게 분명하다.

그러나 새세상연구소가 내린 결론은 반제국주의 운동의 견지에서 볼 때 전혀 적절치 않다.

자극

첫째, 이런 논리로는 미국 제국주의 반대조차 일관되게 하기 힘들다. ‘국익을 위해 강대국을 자극하지 말아야 한다’면 “국익을 고려해 미국을 자극해서는 안 된다”는 “한국 지배집단의 논리”를 일관되게 반박할 수 없다. 사실 노무현 정부 시절 호기롭게 내놨던 ‘동북아 균형자론’이 파산한 것도 그렇다. 아직은 미국의 힘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고, 따라서 한미동맹은 여전히 중요하다는 지배계급 다수의 현실 논리 때문이었다. 얼마 전 일본 하토야마 정권의 몰락은 이것의 희극적 반복이었다.

둘째, 중국 역시 제국주의적 패권을 추구하는 나라다. 티벳과 신장 위구르의 소수민족 억압 그리고 최근 일본과의 영토분쟁을 보면, 중국 역시 패권을 추구하는 국가라는 점에서 미국과 다르지 않다(동북아시아의 긴장 고조에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국가가 주로 미국과 그의 동맹들이지만 말이다). 그렇게 봤을 때 민주노동당은 중국의 동북공정에 침묵할 것인가?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증대를 단지 ‘조중 우호’의 증거로 반겨야 할 일인가?

셋째, ‘균형 외교 전략’은 과거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균형자론’과 본질에서 달라 보이지 않는다. 동북아 균형자론 역시 강대국들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할 한국의 처지를 반영한 것이었다. ‘균형외교로 강대국들에게 실익을 보장받자’는 식의 두 강대국 눈치 보기가 반제국주의를 표방하는 진보정당의 전략이 돼야 하는가?

이 짧은 브리핑에서는 잘 드러나진 않지만, 새세상연구소의 다른 글들에서는 ‘동북아시아 다자안보 협력체제’를 대안으로 강조하는 듯하다.

이 안의 가정 중 하나는 이렇다. ‘동북아시아 신냉전이 해소되려면 중미 간 공조가 무엇보다 절실하다. 그런데 만약 그렇게 되지 못할 경우 한국이 주도적 구실을 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다.’

한국이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역내 열강의 이해를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가정은 노무현의 ‘동북아 균형자론’만큼이나 너무 비현실적이다.

북핵 문제, 역내 국가 간 영토 분쟁 문제 등 동북아시아의 긴장과 불안정이 다자간안보협력체제가 필요하다는 사상을 만들어 내는 토대지만, 이것이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이는 제국주의 체제가 바로 열강 간의 경쟁과 다툼에 근거해 작동한다는 사실을 너무 쉽게 망각하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새세상연구소의 브리핑에서 반제국주의 저항이라는 관점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