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국가와 노동자:
민주당은 복지동맹의 대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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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30일 연세대학교에서 제3회 비판과 대안을 위한 보건복지연합학술대회가 열렸다.
‘한국 복지국가 담론의 지형과 과제’를 주제로 열린 토론에는 1백여 명이 참가했다.
이 토론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보편적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한 ‘복지동맹론’이고 다른 하나는 ‘증세론’이다.
두 쟁점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김연명 교수는 이렇게 주장했다.
“정치전략적 의미에서 복지국가가 갖는 의미는 투표권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서민과 중산층 즉, 임금근로자, 농어민, 자영자 등을 하나의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으로 묶는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을 ‘복지연합(동맹)’이라 부른다.
“이것은 다른 의미로 복지 재정 부담자(납세자 혹은 보험료 납부자)와 복지 수혜자를 일치시키는 전략이며 이것이 보편주의적 복지국가가 갖는 정치적 의미의 핵심이다.”
보편적 복지를 하려면 보편적 증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에서 복지국가론을 주장하는 개혁주의자들은 대부분 이 견해를 공유하는 듯하다.
먼저, 동맹의 문제다. 곧, 누구와 어떤 동맹을 맺을 것인가 하는 문제다. 대다수 개혁주의자들은 노동계급의 잠재력에 대해 비관적이다.
복지동맹
이 토론에서 모든 발표자들이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복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과 장석준 진보신당 상상정책연구소 연구기획실장을 빼고는 누구도 복지국가 건설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구실을 언급하지 않았다.
노동자들이 복지 확대 투쟁에서 중요한 구실을 할 수 없다면 동맹 대상을 최대한 확대하는 것이 핵심 과제가 될 것이다. 또 복지국가 건설을 주도하는 세력은 노동자들이 아니게 될 것이다. 흔히는 개혁적 정치인이 그 구실을 떠맡을 것이다.
물론 모든 거대한 사회 개혁 투쟁에서 노동계급과 중간계급의 동맹 문제가 제기됐다. 문제는 어느 계급이 이 동맹을 주도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복지 확대에 저항하는 세력 즉, 자본가들에 맞서 싸우는 데서 노동계급의 잠재력은 다른 사회집단을 모두 합친 것 보다도 크다. 자본주의의 동력인 이윤을 마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금 같은 경제 위기 시기에 노동자들이 강력하고 거대한 투쟁을 벌이지 않고도 복지국가 건설이 가능하다는 생각은 몽상이다. 복지국가의 황금기로 불린 전후 장기 호황 시기에도 복지 확대를 이룬 동력은 노동자들의 강력한 투쟁이었다.
토론자 중 한 명이었던 우석균 실장이 적절하게 지적했듯이, 복지국가는 “자본측의 동의를 전제로 한 복지연합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기나긴 노동운동의 투쟁을 통해서 이뤄졌다.”
그러나 개혁주의자들은 대체로 계급투쟁보다는 의회와 선거를 통한 개혁을 추구한다.
그런데 진보정당의 집권 전망이 현실적으로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선거적 대안을 찾다 보니 민주당과의 동맹 문제로 이끌린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김기식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은 “복지국가를 이루려면 이해관계자를 최대로 확대하는 연합과 동맹이 필요한데 이는 자유주의와 사민주의의 동맹이라고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진보정당과 민주당의 동맹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주대환 복지국가정치포럼 운영위원장은 아예 진보정당의 존재 가치 자체를 평가절하한다.
“최근의 민주당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비판적 지지’와 ‘독자적 정치세력화’도 함께 반성할 필요가 있고, 모두 원점으로 돌아가서 새출발해야 한다.”
그러나 민주당과의 동맹이 어떤 문제를 낳을지는 이날 발표자 중 한명이었던 신동면 교수의 주장이 잘 보여 줬다. 신동면 교수는 부자들에게 세금을 거둬 복지에 쓰자는 사회복지세를 놓고 “복지를 명목으로 새로운 세금을 신설하여 불필요한 정치적 논쟁과 저항을 유발하는 것은 복지연합을 오히려 약화시킬 수 있다” 하고 반대했다.
신 교수의 ‘정의로운 복지’는 민주당 일부 인사들의 견해이기도 하다. 신 교수는 특히 “복지국가 운동은 반자본 운동이 되면 안 된다” 하고 강조했다.
따라서 민주당과의 동맹은 복지국가 건설의 걸림돌이 될 뿐이다. 민주당이 근본적으로 자본가들의 정당이기 때문이다. 최근 민주당 내 일부 의원들이 화려한 미사여구를 쏟아내고 있지만 이들에게는 보편적 복지에 저항하는 자본가들은 고사하고 복지국가에 미온적인 다른 민주당 의원들을 제압할 능력도 없다.
복지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노동계급의 단결과 강력한 투쟁, 이를 뒷받침할 독립적인 노동계급 정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