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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수능에 즈음해:
경쟁교육이 아닌 연대와 협동의 교육을

해마다 이맘때쯤 ‘막바지 수능 전략’ 같은 신문 기사들이 수능이 다가왔음을 알린다.

초중고 12년의 입시지옥에서 탈출해야 하는 수험생들은 살 떨리는 시험대 앞에 카운트다운을 한다. 이 시기에는 수험생뿐 아니라 청소년들 모두 긴장하게 된다. 이제 곧 끔찍한 입시지옥 속으로 한걸음 더 다가가기 때문이다. 대학에 안 가면 사람대접 받지 못하는 세상에 사는 청소년들은 경쟁에서 친구를 밟고 일어서야만 하기에 오늘도 무거운 눈꺼풀과 싸우며 야자가 끝나면 학원에 간다. 너무나 끔찍한 입시경쟁 때문에 청소년 두 명 중에 한 명은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을 정도다.

이명박 정부는 청소년들을 더한층 끔찍한 입시지옥 불구덩이로 내몰았다. 일제고사로 초등학생들까지 줄 세워 보충수업과 야자를 시키고, 상위 10퍼센트를 위한 자사고와 특목고 확대로 고교평준화를 무너뜨리고, 국립대 민영화와 대학 취업률에 따른 재정 차등 지원으로 대학서열화를 공고히 하는 등 미친 교육정책을 추진하면서 말이다.

해마다 교과부는 입시제도 개편안과 수시모집 전형을 내놓는다. “한국의 입시제도는 큰 틀내에서만도 12번의 개정이 시도됐고, 사소하게는 세부조항이 거의 매년 바뀌다시피 했”다.(진보교육연구소, 박영진, ‘신자유주의 교육정책과 입시제도의 변화’)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것은 “SKY만이 진리”라는 것이다. 대학 서열체제를 그대로 둔 채 아무리 바꿔도 청소년들에게는 입시경쟁의 방식이 약간 수정되는 것뿐이다. 숨 가쁘게 달려 대학에 들어간 후에도 취업경쟁에 내몰리기 때문에 88만 원 세대들에게 “경쟁”은 평생 넘어야 하는 산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은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면, 프랑스와 핀란드의 교육을 보자. 우리와는 다른 세계이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다. 프랑스와 핀란드의 교육복지와 대학 평준화는 지배자들이 선물해 준 것이 아니라 노동자·민중의 투쟁으로 따낸 것이다. 프랑스에서 벌어지는 노동자—학생들의 거대한 투쟁 물결은 1968년 반란의 성과를 지키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한국의 괴물같은 입시경쟁교육에 맞서려면 프랑스처럼 노동자와 학생 들이 함께 힘을 하나로 모아 “경쟁이 아닌 연대와 협동의 사회”를 외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