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뉴스에서 원하는 기사를 보고 있는가? 왜 노동자가 생존을 위해 몸에 불을 붙여여만 했는지, 왜 여성 노동자들이 1천8백95일을 차디찬 바닥에서 농성을 해야 했는지, 왜 노동자들이 ‘국가적 잔치’라는 G20 정상회의에 반대하며 거리로 나왔는지 뉴스에서 본 적이 있는가.
사실 우리가 뉴스에서 이런 기대를 포기한 지는 오래다. 언론이 객관적이고 신뢰할 만하다고 믿는 사람도 많지 않다.
《9시의 거짓말》은 정권의 방송장악 시도에 맞서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 사원행동’에 참가해 언론 자유를 지키려고 투쟁했고, 그 때문에 스포츠 중계팀으로 보복성 인사 발령을 받은 KBS 휴직 기자가 쓴 책이다.
“사실 이 책은 ‘분노’에서 시작됐습니다. 정치적 술수에만 능한 사악하기 그지없는 인간 망종들이 정치와 언론계를 장악하고 짐짓 도덕적인 척, 객관적인 체 설교하는 꼴을 더 이상 지켜보고 있기가 역겨웠습니다.”
저자는 기자가 고용된 월급쟁이가 되어 ‘받아쓰기’ 기사를 쓰고, 진실 보도보다 당장 돈 되는 보도를 우선시하고, 부자와 권력자의 이익을 ‘국익’이라고 포장하며 ‘기득권 계층의 애완견, 치어리더, 확성기’가 돼 버린 언론의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뉴스가 허위 의식을 유포하기 위해 언어를 어떻게 조작하는지(“언어의 물타기”)를 설명하는 대목은 흥미롭다.
가령 뉴스는 ‘대량해고’ 대신 ‘구조조정’ 이란 단어를 쓴다. 평소에는 ‘근로자, 직장인’이라 부르다가 파업할 때면 ‘노동자’라고 부르며 ‘폭력, 불법, 집단 이기’ 등의 상징을 색칠한다. 그래서 우리는 ‘파업 중인 직장인’이란 말을 뉴스에서 듣지 못한다.
또, 뉴스는 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해 “일부러 핵심 쟁점과 내용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예컨대, 노동자들이 파업하면 ‘국가 경제의 치명타’라고 부르대던 언론들이 이건희나 정몽구가 수조 원을 탈세하고 재판을 받으면 ‘국가 경제가 추락할 위험에 처했다고 엄살’을 부린다.
정부가 ‘대운하’가 아니라 ‘4대강 사업’이라고 하면 언론은 ‘4대강 사업’이라고 한다. 야당과 시민단체가 ‘4대강 사업’에 반대한다고 하는데, 시청자들은 그 핵심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한다.
뉴스에 출연하는 전문가들은 ‘객관적인 논리’를 말하지만 그 안에는 ‘사적 이익’이 교묘하게 숨겨져 있다. 부동산 관련 연구소, 교수, 학자들은 부동산 투기 사업을 하고 있고 건설업계의 이익을 대변하지만 방송에는 ‘객관적인 전문가’로 포장된다.
기자들의 주요 취재원은 ‘국민들’이 아니라 “거의 언제나 소수의 기득권 집단”이다.
저자는 언론이 이렇게 문제가 많으니 ‘안 보면 그만’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한국 언론의 병폐를 폭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언론 노동자들에게는 “대중을 ‘호구’로 보지 않는” “비싼뉴스”를 만들어야 한다고 충고하고, 대중에게는 “언론의 자유는 대중의 자유”이며 이를 지키기 위해 “대중의 저항”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애당초 우리 것이었는데도 돌려주지 않는다면, 가서 되찾아오는 수밖에 없습니다. 자유는 본디 쟁취하는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 하에서 부쩍 심해진 언론 자유 탄압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