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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소외를 거부한 한 가수의 죽음

소련과 북한 때문에 널리 퍼진 거짓말 중 하나는, 사회주의에서는 개성이 말살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보장하는 자유 때문에 사람들은 개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말을 우리는 듣는다.

그러나 자본주의 덕분에 다양한 개성이 표현된다는 주장을 반박하는 가장 큰 증거는 바로 오늘날 한국의 자본집약적인 가요계다. 대중은 가창력과 음악성보다는 가수들이 개성을 말살해가며 쌓은 이미지와 군대처럼 훈련 받은 각선미·복근·율동을 보면서 열광한다.

그러나 그 원인을 대중이나 가수들의 천박함에서 찾거나, 예술에 대한 의식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현실에서는 아무 것도 바꿀 수가 없다. 그러한 현상은 개인의 의식 때문이 아니라 예술마저 상품으로 만드는 자본주의 체제 때문에 생겨난다.

자본주의는 단순히 음악가들에게 상품가치를 높여야 한다는 압력을 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음악가와 팬의 관계를 상품을 판매하고 구매하는 관계로 만든다. 예를 들어, 음악가는 자신의 음반의 판매고를 보면서 자신이 사랑받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몸값이 오르는 것을 보면서 흐뭇함을 느낀다. 이 때문에 가수를 사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똑같은 앨범을 여러 장 사는 것이고, 가수들은 앨범이 더 팔리도록 하기 위해 무리한 스케줄 속에 자신을 내던지고 자신을 해치는 줄 알면서도 다이어트를 할 수 밖에 없다.

이처럼 마치 상품(음반, 콘서트, 화보, 심지어는 가수 그 자신)이 오히려 그것을 만든 노동자들에게 권능을 휘두르는 것 같은 현상을 마르크스는 상품의 물신성이라고 불렀다. 마르크스는 소외가 자본주의 하에서 그러한 물신성을 일으킨다고 보았다. 마르크스는 소외는 노동자들이 생산수단을 통제하지 못하고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팔아야만 하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자본주의에서는 음악가들도 그러한 처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처럼 소외와 상품 물신성이 득세한 가요계의 언저리에서 노래하던 가수 한 명이 최근 세상을 떠났다. 가수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하 달빛요정)의 죽음이 트위터를 통해 알려지면서 생전의 인기 이상으로 사람들이 그를 애도하고 있다. 분명 그의 죽음은 같은 포크락 가수였던 김광석이나 김현식의 죽음과는 다른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음악에 대한 그의 열정은 누구 못지 않았지만 이 체제는 그를 “허구헌 날 사랑타령, 나잇값도 못하는 게, 골방 속에 처박혀 뚱땅땅빠바빠빠, …, 그 누구보다(도) 더 무능하고 비열한”(‘절룩거리네’) 사람으로밖에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졸업하고 처음 나간 동창회, 똑똑하던 반장놈은 서울대를 나온 오입쟁이가 되었고, 예쁘던 내 짝꿍은 돈에 팔려 대머리 아저씨랑 결혼을 했다”(‘스끼다시 인생’)며 체제의 화폐 물신성을 비웃는다. 사람들은 이런 노랫말을 들으며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각자가 겪는 여러 종류의 소외를 달빛요정이 표현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나름으로 청중을 모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노랫말보다 체제의 소외를 더 극적으로 보여 준 것은 바로 그의 실천이었다. 그의 죽음이 그의 노래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예술은 사회 현실을 뒤덮고 있는 이데올로기의 연기를 꿰뚫어볼 수 있다”는 표현은 그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이 체제에서 빽도 돈도 없이, 게다가 나이까지 들어서 결혼도 안하고 음악을 하겠다는 것 자체가 체제의 강요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고 자본주의가 예술의 다양성을 보장한다는 거짓에 대한 통렬한 고발이었다. 물론 그가 의식적으로 도전한 것은 아니었고 오히려 체제가 그렇게 내몰았다.

처음 앨범을 만들었을 때 ‘가내수공업’처럼 작사/작곡/편곡/레코딩/믹스/제작/포장/배송까지 스스로 다 해야만 했던 이유는 그가 원해서라기보다는 다른 생산수단을 이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비록 인기를 모은 이후에 ‘가내수공업’은 벗어날 수 있었지만 여전히 “아무리 노래가 좋아도, 아무리 음악이 좋아도, 라면만 먹고는 못 살아, 든든해야 노랠 하지”(‘고기반찬’)라며 절규했다.

그가 2008년에 끝내 “어제 나는 기타를 팔았어, 처음 샀던 기타를 아빠가 부술 때도 슬펐지만 울지는 않았어, 어제처럼”(‘치킨런’)이라고 은퇴를 선언하는 대목에서는, 소외된 노동을 거절하는 이에게 가해지는 자본주의 철퇴를 들을 수 있다. 그 대신 자본주의는 그에게 직업에는 귀천이 없으니까 음악은 관두고 치킨집 배달부나 하라고(‘치킨런’) 부추긴다.

먹고살 수 있도록 1년에 1천만 원 남짓만 벌면 음악을 계속하겠다던 그였다. 하지만 전 인류를 부양할 만큼 생산력이 넘쳐나는 이 체제는 달빛요정에게는 음악할 공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은 인간이 어쩔 수 없는 자연법칙이라고 사람들이 느끼는 것조차, 바로 상품의 관계, 곧 시장이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은폐하는 소외와 상품 물신성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앗아간 창의력을 표현하려는 노력만으로는 소외를 근절할 수 없다는 냉혹한 현실 때문에 그는 절망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이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은퇴를 번복하고 올해 초 새로 발표한 노래들에서 “왜 날 빨갱이로 만들어, 왜 날 혁명가로 만들어, 니가 아니어도 나는 개, 왜 날 광장으로 내몰아, 왜 널 상대하게 만들어”(‘나는 개’)라며, 4대강 반대 집회에서 노래를 부르는 등 소외를 근절하기 위한 첫 걸음을 내디디려던 시기에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노동자들이 생산수단을 통제할 수 있을 때에만 인간은 노동의 소외에서 풀려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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