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프트21〉이 연평도 포격 사태를 다룬 방식을 두고 김태훈 독자와 김용욱 기자 사이에 독자편지란에서 한 차례 논쟁(‘연평도 충돌에 관한 〈레프트21〉의 논조는 적절한가’, ‘북한의 군사 공격을 우선적으로 비판한 것이 부적절했는가’)이 있었다. 이에 대한 김태훈 독자의 추가 반론이 들어 와 싣는다.
김용욱 기자의 반론은 여러모로 유익했다. "이번 사태는 서해 교전과는 달랐"고 "(미국의 대북 압박을 잊지 않으면서도) 북한 지배자들을 분명하게 비판하는 것이 한반도의 반제국주의 운동을 전진시키는 데서 반드시 필요한 입장이었다"는 지적에 동의한다.
그러나 내 독자편지의 핵심은 〈레프트21〉이 "두 가지 점 - 북한 군사 공격 비판과 미국 대북 압박 비판 - 을 결합시"킨 방식, 즉 강조점 문제였다.
즉, 나는 메인 기사가 (두 가지를 다룬 분량의 비율보다는) 논지를 전개하는 방식에서 양비론적(50:50)이라고 느꼈다. 제목도 다소 수세적인 느낌이다. 또 전체 관련 기사의 기획, 편집까지 종합해서 보면 오히려 북한 비판에 더 중점을 두는 느낌이었다(며칠 지난 지금은 몇 가지 온라인 기사가 보강되면서 그나마 균형이 맞는 듯하다).
내 기억이 맞다면 2001년 9월 11일 사태 당시 ‘다함께’ 성명서의 제목은 "미국 대외 정책의 쓰디쓴 열매"였다. 연평도 사태보다 훨씬 더 많은 민간인이 희생당한 비극적 사건이었는데도, 성명서는 주로 중동에서 미국이 저지른 악행이 어떻게 중동의 젊은이들을 테러리스트로 내몰았는지 설명하는 데 더 집중했다. 테러 공격 자체를 강력히 규탄하면서도 그러한 강조점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당시에 나온 월간 《다함께》 5호도 마찬가지로 빈 라덴과 탈레반, 이슬람 근본주의를 비판하면서도 관련 기사의 대부분은 미국, 부시, 이스라엘 비판이었다.
나는 연평도 사태에서도 이런 태도를 견지하는 게 옳다고 본다. 서해 교전과 비교해 북한 지배자 비판을 늘려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왜 양비론이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