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스 반대 투쟁이 노무현의 ‘교육 개혁’을 좌초시켰나?
〈노동자 연대〉 구독
전교조 위원장 선거에 출마한 장석웅 선본은 초지일관 “네이스 반대 투쟁이 노무현 정부의 교육개혁을 좌초시켰다”며 “이제 전교조는 ‘반대’, ‘투쟁’ 이미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것은 장석웅 선본이 범좌파 진영의 진영효 선본과 자신을 구분짓는 핵심 주장이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주장은 노무현 집권 시절 정부 관료들의 말과 꼭 닮았다. 전 청와대 정책실장 이정우는 최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도 “‘네이스 논쟁’ 뒤 [노무현 정부의] 개혁의지가 꺾였다” 하고 말했다.
“네이스 논란으로 개혁적이던 윤덕홍 교육부총리가 그만두[면서] … 헤게모니가 교육부 [관료들]로 넘어갔[고] … 참여정부의 교육정책이 보수화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가 교육 개혁 실패의 책임을 다른 이들에게 떠넘기는 것은 꼴불견이다. 문제의 핵심은 노무현 정부 자신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좌우 양쪽에서 동요하다가 결국 우파의 압력에 굴복해서 보수진영의 목소리를 키우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 정부는 “공교육을 살리겠다”더니 “고교평준화의 문제점을 자립형 사립고 등으로 보완할 것”이라고 후퇴했고, “사교육비를 잡겠다”더니 판교에 학원 단지를 세우겠다고 발표하는 등 혼란을 거듭했다. 특히 “교육개방은 대세”라며 교육을 시장에 내맡기자고 했고, 국립대 법인화, 교원 평가제 등 신자유주의 교육 개악을 추진했다.
노무현은 좌측 깜빡이를 켜고 대중의 환상을 부추기다 금새 우회전해 우파와 자본가들의 품에 안기곤 했다. 정부의 말뿐인 껍데기 개혁과 끝없는 배신 속에 “교육부의 대국민 개혁 사기극”에 대한 대중의 실망도 커졌다. 네이스 반대 연가파업은 이런 불만의 표출이었다.
정부는 네이스 시행을 통해 1천만 명에 가까운 초·중·고 학생들의 인적사항, 학적, 행동특성, 상담기록, 신체적 특징, 병력, 가정환경 등 무려 2백여 가지의 개인 신상 정보들을 50년간 집적하려 했다. 이것은 학생뿐만 아니라 학부모와 교사의 사생활까지 모두 수집해 국가의 전자통제 시스템에서 관리하겠다는 끔찍한 발상이었다.
네이스 반대 투쟁
노무현 정부의 ‘교육 개혁’에 기대를 걸었던 많은 교사들이 실망과 배신감을 토로했고, “학생들의 정보인권을 지키자”며 거리로 나섰다. 네이스 반대 투쟁은 비조합원 교사들을 비롯해 학생·학부모·사회단체 등의 광범한 지지를 받았다.
교사들의 연가파업이라는 수위 높은 투쟁으로까지 발전한 이 투쟁은 교육 개혁의 장애물이었기는커녕, 국가가 중앙집중적으로 개인 정보를 집적하고 통제하려는 반인권적 시도를 막아내는 성과를 냈다. 전국 고3 학생들의 학사정보를 CD로 만들어 모든 대학에 반포하려는 계획도 좌절시켰다.
무엇보다 이 투쟁은 노무현 정부의 개혁 사기극을 만천하에 폭로하며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에 반대하는 여론을 환기시켰다.
네이스 반대 투쟁 이후 지속된 교원평가, 일제고사, 반민주적 탄압 등에 반대하는 전교조의 투쟁은 대중적 교육 개혁 열망을 확대시킨 일등공신이었고, 진보교육감 당선의 밑거름이 됐다.
따라서 진정으로 교육 개혁을 이루려면 대중투쟁을 비켜가선 안 된다. 진보교육감과 파트너십을 유지하기 위해 투쟁을 자제해야 한다는 장석웅 선본의 주장이 우려스런 이유다. 진영효 후보가 잘 지적했듯이, “대중투쟁은 정부와 보수 언론의 공격에 맞서 진보교육감을 돕는 길”이고, “진보교육감이 흔들릴 때 그를 비판적으로 견인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민주대연합
장석웅 선본이 노무현 정부에 맞선 투쟁에 그토록 비판적인 이유는 2012년 대선·총선에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민주·진보연대’를 실현하는 것이 교육 개혁을 이룰 실질적 대안이라고 보기 때문인 듯하다. 그래서 이 선본은 전교조의 강경투쟁이 민주당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동맹을 어렵게 할까 봐 노심초사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은 교육에 시장의 논리를 도입하고 경쟁을 심화시키려는 지배자들에게 정면 도전하지 못한다. 기업주와 부자 들이 민주당의 돈줄이자 기반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민주당이 진지하게 경쟁교육 체제에 도전할 수 없는 결정적 이유다. 지금도 전북 지역의 민주당 의원들은 김승환 진보교육감의 개혁 시도를 방해하고 물어뜯는 데 앞장서고 있고, 민주당 지도부는 이를 수수방관하고 있다.
그런데도 진보진영 내 일부는 헛된 기대로 민주당에 정치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런 환상을 이용해 대중의 변화 열망에 올라타 정국 주도권만 챙기고, 대중운동을 단속하고 통제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
따라서 전교조를 비롯한 진보운동은 민주당에 의존해 투쟁과 요구를 자제하기보다는 정부에 맞선 대중운동을 발전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