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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핵폐기장 반대 투쟁에 부쳐 - 핵 없는 세계는 몽상인가?

19세기 이래로 전 세계 인구는 6배 증가했지만, 에너지 소비량은 80배 증가했다. 그리하여 오늘날 우리는 1백만 년에 걸쳐 축적한 자원을 단 1년 만에 태워 없애고 있다.

하지만 미래 사회에서도 이러한 방식이 가능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여러 보고서들은 2010년 이후 석유 생산량이 감소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고, 현재의 소비량을 유지한다면 2050년쯤에는 모두 바닥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또한, 화석에너지를 사용함으로써 배출되는 각종 배기가스들은 지구 온난화의 주범으로 인류를 커다란 위험으로 몰고 갈 것이다.

상황이 이에 이르자 몇몇 사람들은 핵에너지를 대안으로 주장한다. 대기 오염 물질을 배출하지도 않고, 가격도 저렴하며, 안전한 에너지가 바로 핵에너지라는 것이다.

핵은 저렴한가?

한국수력원자력(주)은 2002년 기준으로 1kWh당 판매원가를 원자력(핵에너지) 39.87원, 석탄 42.55원, 석유 70.96원, LNG 108.77원으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의도적으로 핵에너지의 비용을 낮게 잡은 것이다. 수명이 30∼40년인 핵발전소의 폐기 비용이나 폐기물 처리 비용, 온배수 배출 등을 통한 생태계 파괴와 이 때문에 생기는 보상비 등을 낮게 추산함으로써 값싼 핵에너지라는 신화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세계은행조차도 핵발전이 더는 경제적이지 않다고 보고 있다. “일반적으로 핵발전에 투자하는 비용은 실제보다 지나치게 낮게 평가됐으며 폐기물 처리와 폐쇄에 드는 비용, 그리고 다른 환경 비용들도 충분히 고려되고 있지 않다.”(〈미래의 에너지〉, 생각의나무, 48쪽에서 재인용.)

핵은 안전한가?

핵에너지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핵이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1979년 미국의 쓰리마일 핵발전소 사고, 1986년 옛 소련의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사고, 1999년 일본에서 도카이무라 핵사고가 있었다.

또한 어느 나라도 핵폐기물을 영구적으로 안전하게 관리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현대 과학으로도 핵폐기물의 독성을 없앨 방법이 없다. 단지 시간만이 해결해 줄 뿐이며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핵폐기물을 최대한 격리해 보관하는 방법밖에 없다. 하지만 핵발전소에서 나온 폐기물은 방사선 준위가 낮은 중·저준위 폐기물도 반감기가 3백 년이며, 수십만 명에게 폐암을 일으킬 정도로 강력한 플루토늄이 포함된 고준위 폐기물 즉, ‘사용 후 핵연료’의 반감기는 2만 4천 년에 달한다.

찬핵론자들은 자동차 사고가 발생한다고 자동차를 없앨 수는 없지 않느냐고 되묻기도 한다. 인류가 이용할 수 있는 에너지원이 핵에너지뿐이라면 이 주장은 타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핵에너지보다 분명히 더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원을 갖고 있다. 그것은 풍력, 태양력, 조력 등의 재생 가능 에너지이다.

핵발전과 핵무기

그럼에도 남한에서는 현재 18기의 핵발전소를 가동해 전력 공급의 40퍼센트를 핵에너지로 공급하고 있으며, 2015년까지 추가로 10기를 운영할 계획을 갖고 있다. 또한, 세계 유일의 원폭피해국이고, 지진이 잦은 일본의 경우도 56기의 핵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다.

세계 각국이 핵에 대한 국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핵발전을 추진하는 이유는 핵무기 보유에 대한 열망 때문이다. 핵발전의 확장을 급속하게 추진하고 있는 국가들이 인도와 중국, 일본, 러시아, 남한 등이라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한다.(미국은 이미 핵발전소 최다 보유국이다.) 또, 북한의 핵발전소 건설 계획과 최근 이란의 우라늄 농축 기술 도입, 중수 공장 건설 등을 미국이 핵무기 개발 의도라고 주장했던 것은 핵발전과 핵무기가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지 잘 보여 준다.

이러한 핵발전과 핵무기의 연계는 ‘불량 국가’만의 일은 아니다. 일본은 ‘보통 국가’로의 전환을 추진하면서 핵무장을 준비하고 있으며, 지난 6월 초에 실시된 설문조사에서 중의원 가운데 60퍼센트가 핵무장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한도 예외가 아닌데, 북한이 핵무기 보유를 공개적으로 선언할 경우 일본처럼 언제든지 ‘핵주권’을 확보할 준비를 갖춰야 한다는 주장이 공공연히 제기되고 있다. 이는 정부 관료들이 ‘한국형’ 원자로에 대해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더 나아가서는 종종 ‘한국형’ 핵무기까지 얘기하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에너지 이용 효율의 증대와 재생 가능 에너지

인류가 현재의 삶을 유지할 뿐 아니라 더욱 풍요로운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상당량의 에너지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반드시 핵에너지와 화석연료에만 의지할 필요는 없다.

에너지의 효율을 높이고 재생 가능 에너지를 적극 개발한다면 핵발전을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남한의 경우,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태양열, 태양광, 바이오매스, 풍력, 소수력 등 재생 가능 에너지 자원량은 2000년 총에너지 소비량의 6배에 달한다. 이 중 현재의 기술로 이용이 가능한 자원량만 해도 에너지 소비량의 절반에 달한다.

가격면에서도 재생 가능 에너지는 기존의 화석연료나 핵과 비슷한 수준에 접어들었다. 예를 들어, 1980년대 초반 1㎾h당 30센트이던 풍력의 생산단가가 발전기의 대형화와 기술 발달로 2000년에는 4센트(약 50원)까지 떨어졌는데, 이는 석탄이나 석유의 발전 단가에 근접한 수준이다.(앞에서 한국수력원자력(주)가 제시한 가격과 비교해 보시오.) 또, 태양광 발전은 아직 기존 발전 방법들에 비해 발전 단가가 비싸지만, 계속 기술을 혁신해서 지난 20여 년 동안 발전 비용을 80퍼센트 가량 낮출 수 있었고, 더욱 낮아지리라 예상할 수 있다.

게다가 에너지 이용 효율을 높이는 방법을 함께 사용한다면 재생 가능 에너지의 비율을 더욱 높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남한의 경우 코드를 빼지 않은 채 가전기기를 껐을 때 흐르는 대기전력으로 쓸데없이 낭비되는 전기만 줄여도 핵발전소 1개 정도는 필요없게 되고(필립스 회사는 코드를 빼지 않아도 되는 칩을 개발했다), 대도시에 24시간 무료 대중교통을 도입하고 자전거 등과의 연계를 확대한다면 석유 소비를 상당히 줄일 수 있다. 그리고 “건물의 단열, 냉난방, 조명, 전동기, 각종 산업공정 등 가정, 상업, 교통, 산업분야에서 이미 개발되어 있는 기술만 도입하더라도 전체 에너지 수요의 30퍼센트 정도를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있다.”(〈조선일보〉 10월 1일자 시론 ‘발전소보다 에너지 절약을’.)

현재 석탄, 석유, 가스는 세계적으로 소비되는 에너지량의 약 75퍼센트, 핵에너지는 약 7퍼센트를 충당하고 있다. 약간의 예외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공업국에서는 이러한 에너지에 의존하는 비율이 더욱 높다. 거대 화석연료 기업들과 핵에너지로 전력을 생산하고 있는 발전회사들과 이들에 의지하고 지원받는 국가들은 재생 가능 에너지로의 전환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지 않다. 남한의 경우, ‘전력산업기반조성기금’의 제1차 계획기간(2003∼2005년)의 투자계획에 따르면 전체 기금 중 재생 가능 에너지원에 소요될 예산은 0.68퍼센트, 212억 원에 불과하다. 이는 남한의 전체 에너지 소비량 중 약 0.1퍼센트만이 재생 가능 에너지인 것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핵발전소를 더 짓지 않는다면 핵폐기장을 지을 필요도 없다. 핵폐기물 압축 기술과 유리고형화 기술을 적용하고 2008년이면 수명이 끝나는 고리 1호기 위치에 핵폐기물과 폐로를 종합 관리하면 된다.

물론 에너지 전환 비용을 노동자들이나 가난한 사람들이 치르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기름값이나 전기료를 올리는 방식이 아니라 값싼 에너지로 최대의 이윤을 취득해 왔던 기업들이 비용을 치르는 방식으로, 뜻있는 개인들이 태양광 전지나 풍력 발전기를 설치하는 방식이 아니라 국방비만을 증액하려고 하는 국가 정책을 좌절시키고 그 비용을 이용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대기업과 그들의 이익에 이바지하는 국가의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이러한 저항을 부수고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혁할 수 있는 힘에 의지할 때 핵에 의한 환경 파괴도 끝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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