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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10학번 대학생이 11학번 후배들에게:
책상에서 벗어나 이젠 뛰어오르자!

대학에 합격하고 나서 던져지듯이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이것저것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던 2010년 3월, 우연히 샛노란 포스터를 보고 호기심 반, 의심 반으로 ‘대학생다함께’가 주최한 2010 신입생 맞이 강연회 ‘위기의 시대 — 대학생, 대안을 꿈꾸다’에 참가했던 게 벌써 일 년 전이다.

언론홍보영상학부에 진학한 나는 언론인이 꿈인 대다수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주장을 가지기보다 중립에 서려 했고,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는 것은 상대에게 치명적인 약점을 노출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회주의니 반자본주의니 하는 급진적인 강연회 주제들을 보며 호의적이기보다는 오히려 경계심에 가시를 잔뜩 세운 고슴도치처럼 공격적인 마음으로 강연회 장소로 향했다.

자리에 앉아 연사의 발제를 듣고 청중들과 토론하는 강연 과정을 지켜보면서, 처음에는 진한 지식의 향기에 놀랐다. 이제까지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던, 차원이 다른 진지함이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학점이나 스펙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문제, 자신이 살고 있는 이 사회에 대한 문제를 스스로 고민했다. 다양한 사람들의 경험과 주장을 들으면서, 그때서야 비로소 내가 얼마나 작은 우물 속에서 살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달콤한 과육

또 포럼 일정 내내 가시 돋은 눈초리로 연사들을 째려 보던 나는 어떤 주장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철저하게 사실에 기반을 둔 논리적인 주장들 앞에서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맑시즘의 ‘급진성’은 내가 우려했던 대로 수평의 땅에서 왼쪽에 ‘치우쳐’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수직으로 뻗은 나무의 뿌리를 파고드는 데서 출발한 것이었고, 편향된 시각이라고 평가하기보다 오직 옳은 것만을 원칙적으로 따르는 강건한 태도라고 평가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틀간 진행된 여러 강연들 가운데 가장 내 눈을 반짝이게 했던 것은 제국주의 전쟁에 관한 발제였다. 그 강연에서는 뉴스나 신문에 자주 등장하지만 늘 찝찝한 감상만을 남기는 현상적인 문제들을 끈질기게 파고들었고 주류 언론에서는 쉬쉬하는 뒷이야기를 폭로했다. 그땐 마치 이제껏 수박의 껍질만 씹어 대다가 마침내 그 속의 달콤한 과육을 맛본 느낌이었다. 그만큼 명쾌하고 속이 시원했다.

이렇게 새내기 강연회를 시작으로 다함께가 주최하는 다양한 포럼에 참가하고 발언하면서 배운 것은 바로 ‘솔직해지는 법’이었다. 지난 중고등학교 시절 6년 동안, 나는 나를 앉은뱅이로 만드는 좁은 교실과 책상이 지옥 같았고 선생님과 부모님의 시선이 너무나 두려웠지만 이런 내 고통에 솔직할 수 없었다.

그 고통을 합리화하기 위해 이른바 ‘문제아’, ‘열등생’으로 분류되는 친구들을 보며 아무도 모르게 내 자신의 존재감을 찾고 있는 끔찍한 모습에도 솔직할 수 없었고, 그렇다고 주변의 기대와 이제까지의 성적을 포기하고 떠날 용기도 없었다. 자신에게 솔직할 수 없었기에 나는 내 삶의 주인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솔직해지는 법

그렇게 끔찍했던 입시를 마치고 대학에 입학했지만 대학 생활도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학점 관리는 고등학교 내신 관리만큼 어렵고 취업이라는 커다란 다음 산행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온갖 스펙을 쌓아야 하는 미래가 있었다. 나는 대학에서조차 그렇게 나 자신을 속이고 세상의 요구에 압도돼야 한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끔찍한 위기 의식에 몸서리쳤다.

19년간 타의에 의해 책상에만 앉아 있었는데, 책상과 의자에서 벗어난 20년째 인생에서도 앉은 모양으로 어색하게 걷고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조금 두렵더라도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기로 결심했다.

“나는 끔찍한 입시 지옥이 싫고, 취업예비기관으로 변모한 대학이 싫고, 정당한 대가를 빼앗겨야 하는 노동현실이 싫고, 보이지 않는 경제적 신분에 순응하기 싫고, 지구를 뒤덮는 공장 폐수와 이상 기후가 싫고, 각국 정부와 기업들 간의 갈등에 휘말려 전쟁의 희생자가 되기 싫다. 이 사회는 변해야 하고, 나는 내 문제를 남에게 맡긴 채 팔짱 끼고 있을 수만은 없다!”

짧게는 대학 4년, 길게는 인생 전반의 방향을 결정지을 중대한 순간에 조심스러운 첫 발걸음을 떼게 해 준 지난 새내기 강연회를 회상하며, 참 좋은 선택을 했다고 간만에 나 자신을 칭찬해 본다. 앞으로도 순간순간 무엇이 옳은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치열하게 고민하며 친구들, 선배들 그리고 미래의 후배들과 함께 이 길을 걸어 나갈 것이다.

*추신 (고작 1년 앞섰을 뿐인 선배가 11학번 새내기 후배들에게 덧붙임)

엄청 어려운 4점짜리 수학 문제를 수능 당일 만났을 때의 심정이 어떤지 다들 최근의 일이라 생생할 것이다. 대체 무엇부터 손대야 할지 모를 그 막막한 심정 말이다. 직면하기 두려울 만큼 산처럼 쌓인 이 사회의 문제들을 대면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수학 문제에는 답이 있듯이, 이 사회에는 ‘대안이 있다’는 것이다. 그 대안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2011 새내기 맞이 포럼에 오라. 그리고 교과서와 주류 언론이 심어 준 편견을 과감히 버리되 함부로 고개를 끄덕이지도 말고, 오로지 솔직한 자기 자신의 ‘정치’를 찾아 보라. 지난 1년간 했던 나름의 치열한 고민과 의심들을 떠올려 보면 나는 여러분의 고민과 내 고민이 같은 지점에서 통할 것임을 확신한다. 더 영민하고 진지한 친구들을 만나 뜨겁게 토론하고 서로 성장시킬 새내기 맞이 미니 맑시즘2011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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