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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진 칼럼:
위기 담론에서 복지 담론으로?

2008~2009년 세계경제 위기의 와중에서도 한국 경제는 그런대로 버텨 왔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23일 연평도 포격과 그 직후 일시적으로 조성된 준전시 상태는 한국 자본주의가 전체적으로 매우 취약한 지정학적 기반 위에 지탱되고 있음을 환기했다.

하지만 이 안보 정국은 한 달도 못 가서 소멸했으며, 연평도 포연 속에 뒷전으로 밀려난 듯 보였던 무상급식, 무상교육, 무상의료 등 복지 담론이 다시 정국의 화두로 복귀했다.

복지 담론이 안보 정국을 대체한 것은 노동자 대중의 입장에서 무조건 다행스런 일이다. 이는 또 그동안 한국에서 민주주의 운동과 의식의 성장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처럼 복지 담론이 현 정국의 중심 화두로 복귀한 것을 두고 한국 자본주의가 이제는 웬만한 지정학적 리스크에는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안정됐음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한가? 혹은 최근 진보진영이 복지 담론으로 쏠리는 현상은 2008~2009년 세계경제 위기 국면에서 부상했던 자본주의 위기 담론과 반자본주의 정치의 기각 혹은 상대화를 의미하는가?

이 글은 이런 의문에서 출발해 최근 진보진영의 화두인 복지 담론에 대해 몇 가지 쟁점을 제기하고자 한다. 우선 필자는 연평도 포격으로 조성됐던 안보 정국이 한 달도 못 가 복지 정국으로 뒤바뀌고 민주당과 같은 중도우파는 물론 박근혜 등 보수우파들까지 복지 담론을 수용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개혁주의 복지 담론으로 무마·호도해야 할 정도로 현재 한국 자본주의의 모순과 위기가 심각한 상황임을 보여 준다고 생각한다.

이명박이 집권한 동안 자본주의 모순이 더욱 격화돼 왔음은 민생 파탄과 양극화의 심화를 보여 주는 몇 가지 지표들에서 분명하다. 먼저 제조업 노동자의 시간당 명목임금 증가율은 2007년 8.1퍼센트에서 2008년 -0.8퍼센트, 2009년 0.7퍼센트로 급감했다.

자본과 노동 간의 분배 상황을 총괄적으로 보여 주는 노동소득분배율은 2000년 58.1퍼센트에서 2006년 61.3퍼센트로 개선된 후 2007년 61.1퍼센트, 2008년 61퍼센트, 2009년 60.6퍼센트로 지속적으로 저하했다.

국민경제 전체의 불평등도 증가했는데, 이는 가계소득의 지니계수가 2005년 0.287에서 2006년 0.306, 2007년 0.312, 2008년 0.315, 2009년 0.314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명박 정권 시기 민생 파탄과 양극화는 2008~2009년 세계경제 위기를 노동자 대중에 대한 착취 강화를 통해 극복하려는 과정에서 심화했다. 사실 한국의 지배계급은 지난 1997~1998년의 경제 위기도 노동자 대중에 대한 착취 강화를 통해 극복한 바 있는데, 동일한 처방이 이번 2008~2009년 세계경제 위기 국면에서도 적용됐고, 그 결과 이미 1997~1998년 경제 위기 이후 심화하기 시작한 민생 파탄과 양극화 문제가 더욱 심각하게 됐다.

1997~1998년 경제 위기와 2008~2009년 세계경제 위기를 모두 노동자 대중에 대한 착취 강화를 통한 자본의 재구성 방식으로 극복한 결과, 오늘날 한국에서는 자본의 논리가 세계 그 어떤 나라보다도 일방적 또 전면적으로 관철되게 됐다.

최근 실시된 한 여론조사를 보면 한국인 중 무려 92퍼센트가 행복과 돈을 동일시했는데, 이는 조사대상 10개국 중 가장 높았다(미국인과 덴마크인은 각각 72퍼센트, 53퍼센트). ‘결혼시장’에서 미혼 남녀의 점수가 연봉과 학벌, 부모의 재산 규모에 따라 정확하게 계량화돼 매겨지고, 이런 세태가 사회적으로 당연시되는 나라는 아마 우리 나라밖에 없을 것이다.

또 이명박 정권 들어 국립대학에까지 법인화와 성과급적 연봉제 도입이 강요되고 있다. 최근 세계적으로 교육 부문에서 시장과 경쟁의 논리가 확산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처럼 국공립대학 체제를 없앨 정도로까지 막가진 않는다.

한국 자본주의는 안정됐는가

물론 자본 논리의 일방적 전면적 관철이 자본주의 체제의 안정적 확대재생산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자본이 발전하면 할수록 자본의 모순은 도리어 더 격화되고, 어느 순간 자본의 재생산 자체가 위기에 처하게 되는 것이 자본의 변증법이다.

한국의 지배계급은 격화되는 자본의 모순을 노동자 대중에 대한 착취 강화를 통해 돌파하려 했지만, 이는 자본의 모순을 도리어 더 격화시키고 전위할 뿐이었다.

최근 문제가 되는 노동력 재생산의 위기는 그 한 측면일 뿐이다. 실제로 2008년 한국의 합계 출산율은 1.17명으로 OECD 나라들 중 가장 낮았지만 (OECD 평균은 1.19명) 인구 10만 명 당 자살자는 2006년 21.5명에서 2007년 23.9명, 2008년 24.3명으로 계속 증가해 OECD 나라들 중 가장 높았다.

오늘날 한국에서 자본과 부의 정당성은 세계 다른 어느 나라에서보다 가장 심각하게 문제시되고 있으며 도전받고 있다. 앞서 인용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인들 중 무려 60~70퍼센트가 부는 부모를 잘 둔 덕이거나 부정부패, 권모술수에 힘입은 것이라고 간주한 반면(이는 조사대상 10개국 중 가장 높았다), 열심히 일한 결과라고 보는 이들은 30퍼센트 정도밖에 안 됐다(이는 조사대상 10개국 중 가장 낮았다).

최근 복지 담론이 우리 시대의 지배적 담론으로 대두한 것은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정당성에 문제를 제기할 정도로 자본의 모순과 위기가 심화된 것을 배경으로 한다. 역사적으로도 복지 담론은 자본주의 모순과 위기의 심화 그리고 이와 관련한 계급투쟁과 국가의 대응이라는 맥락에서 제기돼 왔다.

따라서 장하준 교수나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등 주류 진보 복지 담론의 주장과는 달리, 오늘날 민생 파탄과 양극화의 문제는 특정한 종류의 ‘나쁜’ 자본주의의 문제, 즉 신자유주의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일반의 모순과 위기의 문제로 파악돼야 한다.

민생 파탄과 양극화 문제가 이처럼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모순과 위기에서 비롯됐다면, 자본주의 틀 내에서 ‘복지에 기초를 둔 성장’ 모델을 채택하는 것으로 — 예컨대 스웨덴 모델이나 사회투자국가 등을 채택하는 것으로 — 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주류 진보 복지 담론이 대안으로 상정하는 ‘더 나은 자본주의’ 모델, ‘복지에 기초를 둔 성장’ 모델은 신자유주의 모델, ‘성장에 기초를 둔 복지’(트리클다운) 모델에 대한 실행가능한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점도 지적돼야 한다.

자본주의 계급관계의 조건에서 ‘성장에 기초를 둔 복지’ 모델이 실제로 작동 가능한 모델이 아니라 노동자 대중을 기만하는 지배이데올로기로 치환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복지에 기초를 둔 성장’ 모델 역시 자본주의에 내재적인 잉여가치 생산의 위기, 즉 이윤율 저하 위기로 인해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할 수 없다.

물론 세계적·일국적 차원에서 계급투쟁의 지형과 계급역관계의 추이에 따라 복지와 성장이 일시적으로 병행 공존할 수 있었던 나라와 국면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역사적 경험이 다른 시기와 조건에서 복제 가능한 ‘복지에 기초를 둔 성장’ 모델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진보진영은 복지를 ‘더 나은’ 자본주의 모델의 한 요소로서, 혹은 자본주의 틀 내에서 위기 극복과 성장의 전략으로서 주장하기보다, 인간의 가치로서,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의 필수적 요소로서 요구할 필요가 있다.

물론 자본주의 틀 내에서 복지 요구는 반자본주의 투쟁을 통해서만 실질적으로 쟁취될 수 있으며, 진정한 복지의 완전한 구현은 자본주의 자체를 근본적으로 변혁하고 아래로부터 사회주의를 건설함으로써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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