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무상 복지’ 약속을 믿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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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이 ‘무상의료’에 이어 ‘무상보육’, ‘반값 등록금’ 정책을 당론으로 채택하자 한나라당은 “무책임한 세금 폭탄” 운운하며 비난을 퍼부었다.
‘무상의료’는 건강보험 보장성을 90퍼센트까지 높이고 본인부담금을 1년에 1백만 원으로 제한하자는 것이다. ‘무상보육’은 만 5세 이하 모든 아동의 보육시설비를 전액 지급하고 부모에게 양육수당을 지급하는 것이다.
1년 전만 해도 민주당에 기대하기 어려웠을 진보적 대안들이다. 그만큼 복지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보건복지부 장관 진수희는 민주당 얘기대로 하려면 추가 재정이 30조 원이나 든다며 “무상의료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못 박았다.
그러나 이명박이 기업주·부자에게 안겨 준 감세액만 해도 연간 10여조 원에 이른다. 경제 위기 속에서도 노동자들을 쥐어짜 어마어마한 이윤을 벌어들인 기업과 부자 들에게 추가로 세금을 부과하면 이 정도 재정을 마련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런 조처를 거부하고 복지 삭감이나 하고 있는 이명박이 한국이 “복지국가 수준에 진입하고 있다”는 둥 정신 나간 소리나 해 대는 것을 보면 역겹기만 하다.
그런데 문제는 민주당이 ‘무상의료’ 등의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먼저 민주당 안에서도 반발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 주요 난관 중 하나다. 재경부 장관과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강봉균은 무상복지를 “실행 가능성도 없는 것”이라고 깎아내렸다. ‘뉴민주당 플랜’을 입안한 김효석도 “복지병” 운운하며 반대했다.
민주당이 집권했을 때 벌어진 일들을 돌이켜 봐도 그들의 말과 실천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대중 정부 시절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이태복은 자신이 ‘약값을 낮추려다가 다국적 제약사의 심각한 저항과 다양한 통로를 통한 압력 때문에 물러나게 됐다’고 토로한 바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추진된 병원 식대 무료화, 6세 미만 입원료 무료화도 이런 과정에서 유명무실하게 됐다. 경제가 불안정한 상황에서 복지를 대폭 늘리려면 국내외 자본가들의 저항을 물리쳐야 할 텐데 민주당은 그렇게 할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
민주당이 자본가들의 저항을 물리치지 못하는 것은 단지 무능해서만은 아니다. 그들 자신이 자금과 인력을 기업주들에게서 충원하는 자본가 정당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권 시절 민주당은 비정규직 확대로 대표되는 노동유연화, 공공부문 시장화·민영화, 한미FTA 등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했다. 그 결과 대기업은 날이 갈수록 성장해도 노동자들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박지원 등 현 지도부도 모두 그런 정부에서 시장지상주의 정책을 추진하고 평범한 노동자들을 공격한 당사자들이다.
야당인 동안에도 민주당의 실천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최근 벌어진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공장점거 투쟁과 그전에 벌어진 KEC 노동자들의 점거 투쟁 모두에서 민주당이 한 일이라고는 점거를 풀도록 한 것뿐이다. 결국 사측에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 준 것이다.
4대강 사업 반대를 내걸고 대거 당선한 민주당 출신 도지사들은 4대강 사업에 일관되게 반대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최근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충북 지역 시민·환경단체들이 민주당사에서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지금도 전북 지역에서 전주시장, 전북도지사, 국회의원까지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은 전북 버스 노동자들의 투쟁을 가로막는 핵심 걸림돌이다. 전주시장 송하진은 버스 노동자들의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고는 고임금 노동자 운운하며 공격하고 있다.
물론 민주당은 다음 선거에서 이명박에 반대하는 진보적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서 권력을 되찾아야 하는 처지다. 그러다 보니 ‘무상의료’ 같은 진보적 정책도 제시하는 것이다. 사실, 이런 정책의 일부는 이명박도 대선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현재 민주당의 정책에는 알맹이가 빠져 있다. 감세 철회 정도 말고는, 복지 확대에 들어갈 재원을 어떻게 누구에게 마련할 것인지 말하지 않고 있다. 노동자들의 세금과 보험료를 올리겠다고 하면 득표에 도움이 안 될 것이고, 부자 과세와 군비 축소로 마련하겠다고 하면 지배자들이 싫어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민주당의 계급적 한계를 보여 준다.
부자 과세와 군비 축소를 통해 복지를 확대할 재원을 마련하려면 지배자들의 기득권에 도전하는 강력한 투쟁이 필요하고, 민주당에 기대서는 그런 투쟁을 건설할 수 없다.
진보진영은 민주당에 끌려가지 말아야
민주당이 진보적인 복지정책을 줄줄이 내놓은 것은 총선과 대선을 겨냥한 것이다. 우파인 박근혜마저 ‘복지’를 들고 나올 정도로 대중적 불만이 높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런 상황은 진작부터 복지 확대를 주장하고 투쟁해 온 진보진영에게 유리한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기회는 ‘도로 민주당’으로 끝나거나 최악의 경우 박근혜가 수혜를 보는 것으로 나갈 수도 있다. 진보진영이 급진적이고 독립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데 실패한다면 말이다.
민주당이 내놓은 ‘무상’ 복지 시리즈는 지난 10년 동안 진보진영이 제시해 온 대안에 비춰보면 부족한 것이다. 모순도 여전하다.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의 재협상안에는 반대하지만 한미FTA 자체는 지지하고 추진해 왔는데, 한미FTA는 이런 복지 개혁을 불가능하게 할 것이다. 한미FTA가 시행되면 ‘무상’은 고사하고 정부가 일부 지원하는 복지 제도들도 공격 대상이 될 것이다.
진보정당과 민주노총의 지도자들이 민주당과 상시적 동맹을 맺으려고 이런 문제들에 침묵하거나 급진적 복지 대안을 제시하기를 꺼린다면 민주당에게만 유리한 결과를 낳을 것이다.
사실 진보진영 일부 지도자들은 오히려 민주당 수준에 맞게 우리 편의 급진적 대안을 후퇴시키려 해 왔다.
대표적인 것이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다. ‘부자에게 세금을’ 같은 요구가 “낡은” “관성적인” 요구라며 그런 개혁은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하니 일단 노동자들이 내는 보험료를 올려 건강보험 보장성을 높이자고 한다.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를 만드는 데 주도적 구실을 한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심지어 보험료 인상을 적극적으로 얘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번에 민주당이 내놓은 무상의료 계획조차 ‘비현실적’이라고 깎아내린다.
한미FTA 문제도 한 사례다. 이명박 정부가 미국 정부와 한미FTA 재협상을 추진하고 있을 때 한국진보연대와 민주노동당 지도부 일부는 기존의 ‘한미FTA 폐기’ 입장을 ‘전면재협상’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폐기’ 입장을 유지할 경우 민주당이 함께하기 힘들다는 까닭에서였다.
진보진영이 민주당의 말만 믿고 그들의 손을 잡으려고 매달리며 급진적 대안마저 후퇴시킨다면 결국 자신의 지지 기반만 민주당에게 빼앗기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