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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처벌 대신 경쟁 교육 완화와 학내 민주주의 확대가 필요하다

서울시 교육청이 2010년 11월 1일 체벌 전면 금지를 시행한 지 벌써 2개월이 됐지만, 〈조선일보〉나 교총 등의 우파들은 체벌 전면 금지에 대해 ‘교실 분위기가 나빠진다’느니 ‘교권이 붕괴된다’느니 ‘학교의 규율이 흔들리고 문제 학생들을 선도 할 수 없다’느니 하며 지칠 줄 모르고 곽노현 교육감과 체벌 전면 금지령에 대해 악선동을 퍼붓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악선동에도 불구하고 체벌과 반反체벌에 대한 찬반 논란이 팽팽해 체벌 전면 금지를 쉽게 취소시킬 수 있을 것 같지 않자, 이제는 서울시 교육청의 대체 처벌을 그들의 타겟으로 삼고 추가로 비난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 가운데 가장 그럴 듯한 것이 ‘우리도 체벌은 반대하나 완벽한 대체 처벌 가이드라인 없는 체벌 전면 금지는 학교의 분위기와 질서, 규율을 붕괴시킬 것이므로 체벌 전면 금지는 시기상조이다. 그러므로 더욱 완벽하고 엄격한 대체 체벌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라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체벌에 반대’한다는 점에서 마치 진보적인 것 처럼 보이지만, 그 논리적 귀결과 주장하는 인사들을 살펴보면 본질은 체벌 전면 찬성과 다름없이 반동적인 주장이다.

그러나 진심으로 체벌을 반대하는 진보적 시민들 중에서도 ‘체벌은 반대하지만 엄격한 대체 체벌이 있어야 학교의 질서가 유지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품은 시민들이 많으므로, 대체 체벌이 왜 진보적 대안이 아닌지를 밝히는 것은 중요하다. 그렇다면 왜 대체 체벌이 진보적 대안이 아닌지를 따져 보자.

학교 문제의 근본 원인

오늘날의 학교 문제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은 집단 따돌림이나 증가하는 학교 폭력, 청소년 자살 등이다. (그리고 우파들은 ‘교권 붕괴’도 이야기하나 그것은 권위주의 교육이 사라지면서 학생과 교사의 관계가 점점 평등해지는 자연스런 진통이다.) 그렇다면 앞서 말한 문제는 왜 생기는 것일까? 과거의 학생들이나 현재의 학생들이나 똑같은 학생인데 과거에 없던 문제가 터져나오는 것을 보면 학교 환경이 바뀌었기 때문에 새로운 문제들이 생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원인은 심화된 경쟁 교육이다.

우선 집단 따돌림이나 학교 폭력에 대해 살펴보면, 현행 학교 체제는 누구나 알듯이 인간의 가치를 점점 성적으로만 평가하고 있으며, 심지어 성적이 낮으면 낙오자 취급하기도 한다. 그래서 성적이 높지 않은 대다수 학생들은 열등감과 경쟁 스트레스에, 성적이 높은 학생들은 뒤쳐지면 안 된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인정 받고 싶은 욕구’라는 중요한 욕구가 있는데, 현행 학교 체제는 대다수 평범한 학생들에게 그 욕구를 채워주지 못한다. 따라서 그중 일부 학생들은 이른바 ‘일진’이 돼 학생들 간의 서열에서 강자로 군림함으로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왜곡된 방식으로 채우며, 또 다른 학생들은 집단 중 한 명을 상대적으로 낮은 서열에 위치시키고 그 학생을 괴롭히고 따돌림시키는 데서 상대적 우월감을 느끼는 방식으로 그 욕구를 해결한다.

또 청소년 사망 원인 중 1위를 차지하는 청소년 자살 역시 그 첫째 가는 이유가 성적 비관과 학업 스트레스라는 것을 보면 결국 현행 학교의 심각한 문제들의 근본 원인은 비인간적인 경쟁 교육이 심화된 데 있음을 알 수 있다.

대체 체벌이 학교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대체 체벌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집단 따돌림을 한 학생들이 처벌받는 것이 그들과 따돌림 당한 학생 간에 우정을 싹트게 하기는커녕, 따돌림 당한 학생에 대해 ‘저 자식 때문에 우리가 처벌 받았다’ 같은 적개심만 키우고 전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볼 때, 상벌점제나 사회봉사 따위 역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결국 근본 원인을 놔두고 ‘문제 학생’만 처벌하는 것은 마치 암환자의 종양은 제거하지 않고 진통제만 투여하는 것만 같아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문제를 악화시킬 뿐이다.

대체 체벌의 진정한 목적

이렇게 처벌이 실제 문제 해결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음에도, 우파들이 대체 체벌이든 체벌이든 처벌 수단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처벌이 학교의 심각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지만, 학생들을 부당하고 비민주적인 교칙과 교사의 명령 그리고 과도한 학업 부담에 입 다물고 복종시키는 데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즉, 이전에는 충실한 공부 기계를 만들려고 ‘사랑의 매’를 사용했다면, 이제는 생활기록부에 상벌점제나 사회 봉사 등의 낙인을 찍고자 하는 것이 대체 체벌의 실체다. 따라서 둘의 차이는 ‘폭력적인’ 노예주의 채찍과 ‘비폭력적인’ 자본가의 해고 협박의 차이밖에 안되며, 체벌이나 대체 체벌이나 똑같이 야만적이고 강압적인 억압수단이다.

대안

앞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위로부터의 어떠한 종류의 억압 수단도 학교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따라서 경쟁 교육을 완화하고, 교사 수 증가와 학급 당 학생 수 감소를 통해 학교 구성원 간 인격적 교류를 되살리는 것이 학교 문제의 근본 해결책이다.

그러나 단지 경쟁 교육 완화 등으로는 부족한 것이 있다. 바로 학내 민주주의이다. 학내 민주주의 없이는 행복한 학교는 만들 수 있어도 민주적인 학교는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학교가 행복한 배움의 터일 뿐만 아니라 민주시민 양성의 장이 되려면, 학생들은 지금까지 처럼 위로부터 강요된 부당한 질서 대신에 스스로 공동체의 규율을 작성하고 준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구질서가 체벌이나 대체 체벌 같은 비민주적 억압 수단에 의해 유지됐다면, 신질서는 학교 구성원들 간의 평등에 기초한 민주적 규율에 의해 유지되어야 한다.

따라서 학교가 성적 경쟁의 장이 아닌 행복하고 민주적인 배움의 터가 되기를 갈망하는 사람들은 어떠한 종류의 강요된 대체 체벌이든 반동적이며, 진정한 해결책은 대학 평준화, 교사 수 증가 등 경쟁 교육 완화와 유명 무실한 학생회 재건, 학교 구성원 간 평등 등 학내 민주주의 확대라는 것을 깨닫고 실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