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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증세가 아니라 부유세가 필요하다

물론 물가인상과 청년실업, 전세난에 시달리는 노동자민중의 고통을 해결하려면 무상의료뿐 아니라 대대적인 복지 확대가 필요하고, 그러려면 단지 부자 감세 철회만으로는 부족하다.

예컨대 민주당의 무상의료 안에는 상병수당이 포함돼 있는데 이에 대한 재정마련 계획은 아예 없다. 낮은 수준의 상병수당을 도입하는 데만 해도 민주당이 내놓은 무상의료 재정보다 더 많은 돈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 민주당과 진보진영에서는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한 증세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사실 증세 논쟁의 핵심은 증세가 필요하냐 아니냐가 아니라 누가 세금을 내도록 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 문제를 회피하고 싶어 한다. 노동자들에게 세금을 더 내라고 했다가는 표가 떨어질 것이고 ‘부자 증세’를 내세웠다가는 존재 기반 자체가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자본가들의 돈과 인력으로 운영되는 정당이다.

최근 민주당은 ‘보편적 복지 재원조달방안 기획단’을 만들었는데 대부분 경제관료 출신 국회의원들로 구성돼 있다.

그리고 이들은 민주당 집권 시절에 종합부동산세를 반대하고 분양원가 공개를 반대했던 이들이며, 한나라당과 별반 차이가 없는 친기업친재벌 정책을 주도했던 장본인들이다.

이들이 부자재벌에게 막대한 세금을 부과해서 그 돈으로 복지를 늘리는 대안을 제시하기 힘들 거라는 점은 명백하다.

조세저항

이 점에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지도부 일부가 기존의 부유세 주장에서 후퇴하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지난 대선 때 종부세 인하를 공약했던 정동영조차 지금은 부유세를 주장하고, 최근 〈한겨레〉 여론조사에서도 무려 81퍼센트가 부유세를 지지했는데 말이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는 부유세 같은 “강제적 의무가 아니라, 더 여유있는 계층에서 사회적 기여를 더 하도록 설득해 국민적 동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며 훨씬 온건한 대안을 내놓을 뜻을 내비쳤다.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는 “부자 증세만으로는 모든 재원을 확보할 수 없으므로 비정상적으로 낮은 조세부담과 정부지출을 정상화하기 위해 ‘보편적 증세’가 필요하다” 하고 주장했다.

얼핏 다른 듯하지만 둘 다 부자들의 ‘조세저항’을 염두에 둔 것인데 진보진영 내 일부 학자들도 납세자와 수혜자가 분리될 경우 조세저항이 생긴다는 이유에서 보편적 증세와 보험료 인상을 주장한다.

그러나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두 종류의 조세저항이 있다.

하나는 현재의 불합리한 조세제도에 대한 광범한 불신에서 비롯한 것이다.

부자들과 정치인들은 늘 탈세하고, 기업주들은 세금 감면 혜택을 받고, 부자들의 금융자산, 부동산에 대한 과세는 없거나 턱없이 적은 현실에 대한 노동자들의 불만이 그것이다.

이런 불만을 억누르고 보편적 증세와 보험료 인상을 하면 최하층은 아닐지라도 어지간한 노동자들에게도 그 부담이 전가된다.

이는 공정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치명적이게도 노동자들이 복지 확대를 위한 투쟁에 나서기 어렵게 만든다. 세금과 보험료 부담이 늘어나는 것을 노동자들이 좋아할 리는 없기 때문이다.

특히 “대기업 노조의 노동자들은 [무상 복지 안 해도] 지금 이대로도 별 문제가 없다”(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대표)거나 “대기업 정규직의 기득권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비정규직의 처우개선을 외치는 건 진정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김기원 방송대 교수)는 식으로 대기업 조직 노동자들을 비난하거나 그들의 양보를 촉구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대기업 조직 노동자의 조직력과 투쟁력이야말로 복지 확대의 주요한 동력이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의 조세저항은 바로 현재의 불합리한 조세제도에서 특혜를 누리던 부자·기업주의 저항이다.

그런데 이 저항을 무력화시키지 않고 무상복지를 할 방법은 없다. 서구 복지국가의 역사적 경험에서 볼 수 있듯이 그러려면 자유주의 세력과의 동맹보다 강력한 노동자 대중투쟁이 뒷받침돼야 한다.

진보진영은 노동자들에게 부담을 떠넘기려는 모든 시도에 맞서 부유세, 사회복지목적세 등 기업주와 부유층한테서 직접세를 거둬 복지에 사용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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