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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혁명과 중동의 연속혁명

이라크 전쟁이 민주주의를 위한 전쟁이었다고 포장하는 데서도 드러나듯이, 서방 지배자들은 중동 지역의 민주주의 확대가 자신들의 군사적·정치적 개입에 달려 있다고 선전해 왔다. (물론 이는 거짓말이다.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 등 독재 왕가나 이집트 무바라크 독재를 후원해 왔다.)

그러나 지난 1월 중순 튀니지에서 벤 알리를 축출한 혁명이 중동 각국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반란으로 이어지고, 마침내 이집트에서 무바라크가 물러나자, 지배자들의 선전은 여지없이 깨졌다. 중동에서도 민주화는 대중 자신의 힘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이번 혁명이 생생히 입증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중은 이제 자신이 원하는 바를 모두 성취했는가? 이제 서구식 자유민주주의로 ‘질서 있는 전환’을 추진하면 되는가?

그러나 중동의 민중은 단지 서구식 자유민주주의 체제 도입을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독재뿐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가 낳은 불평등과 경제 위기 때문에도 고통을 겪었다. 대중은 엄청난 실업과 가난에 허덕였다. 튀니지 혁명에서 ‘빵과 교육과 자유’가 주요 요구로 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대중의 삶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려면, 단지 기존 정치 권력을 타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불평등과 가난을 낳는 근원인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도 도전해야 한다.

자본주의 체제 변혁을 이끌 수 있는 사회 집단은 노동계급이다. 노동계급은 파업 등 집단적 행동을 통해 기업주들의 이윤 생산에 타격을 가할 수 있다. 나아가 노동계급은 자신들의 민주적 조직을 통해 생산 수단을 집단적으로 통제하고 대중의 필요에 따라 생산을 재조직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사회 집단이다.

문제는 선진국보다 자본주의가 덜 발달한 중동 지역에서도 노동계급이 자본주의 체제 변혁에 나설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트로츠키

이것은 새로운 물음이 아니다. 이미 1백 년 전 즈음 당시 후진국이던 러시아 사회의 변혁을 둘러싼 논쟁에서 이런 물음들이 제기됐고 물음뿐 아니라 답도 제시된 바 있는데, 바로 트로츠키의 연속혁명론이 그 해답이다.

트로츠키의 주장의 핵심은 러시아의 후진성에도 러시아 노동계급은 서구 노동계급보다 먼저 권력을 장악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트로츠키의 사상은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성공으로 그 유효성이 입증됐다.

연속혁명론은 몇 가지 상호 연관된 문제의식을 전제로 한 것이다.

첫째, 상대적 후진국에서는 정치적·시민적 권리 제약, 제국주의 지배, 농업 문제, 노동계급 조직 불인정 등을 해결할 부르주아 민주주의 과제가 있다.

둘째, 상대적 후진국에서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후진적 잔재와 선진적 산업이 병존하고 그것도 결합된 형태로 존재한다.

셋째, 그 결과 부르주아 민주주의 과제 성취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와 제국주의 체제를 변혁하는 것과 긴밀히 결합돼 있다. 따라서 자신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그런 변혁에 나설 수 없는 부르주아 자유주의자들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과제 해결조차 수행하지 못한다.

넷째, 후진국에서도 자본주의 발전으로 노동계급이 생겨났고, 비록 인구의 소수라 해도 비교적 집중돼 있다. 자본주의에 도전할 잠재력이 있는 노동계급이 부르주아 민주주의 과제 해결을 위한 투쟁도 지도할 수 있다.

다섯째, 노동계급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과제 해결을 위한 투쟁과 사회주의 혁명을 연결시킬 수 있다. 노동계급은 권력 장악을 통해 부르주아 민주주의 과제를 해결하고 연속적으로 사회주의 혁명을 시작할 수 있다.

여섯째, 후진국에서 노동계급은 권력을 장악해 사회주의 혁명을 시작할 수 있으나, 사회주의 혁명을 독자적으로 완수할 수는 없다. 혁명이 국제적으로 확산돼 적어도 몇몇 선진국에서 노동계급의 권력 장악이 성공을 거둬야 한다.

중동의 연속혁명

오늘날 중동의 민중 반란은 트로츠키가 정식화한 연속혁명론 중 몇 가지 정식을 고스란히 입증하고 있다.

중동 지역에는 해결해야 할 부르주아 민주주의 과제가 있다. 제국주의 지배와 독재에 시달려 온 이 지역에서 정치적·시민적 권리는 극도로 제약됐으며, 독립적 노동계급 조직도 거의 인정받지 못했다. 이집트는 농업 문제 해결도 과제인데, 1950년대에 이룬 토지개혁의 성과를 무바라크가 되돌린 바람에 토지개혁으로 재분배된 땅을 옛 지주들이 되찾을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이번 중동 혁명의 동력은 부르주아 자유주의 세력이 아니라 노동계급 투쟁에서 나왔다. 튀니지에서 벤 알리를 축출하는 데 성공한 결정적 계기는 튀니지 노총이 행동에 나섰기 때문이었다. 이집트에서도 무바라크 사임 직전 수백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은 노동계급의 대중파업 동력 덕분이었다.

이집트 혁명 과정에서 언론들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전 사무총장 엘바라데이 등 자유주의 정치인들을 집중 부각했지만, 민중 항쟁이 벌어지기 전까지 그들은 이런 문제들을 전혀 해결하지 못했다. 이번에도 그들은 무바라크 세력과의 협상에 연연하는 태도를 보였다.

여기까지는 연속혁명론의 정식이 고스란히 입증됐다고 볼 수 있다. 이제 나머지 정식들, 즉 권력 장악 문제를 둘러싼 쟁점들이 남았다. 독재자를 쫓아내는 데 성공한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노동계급은 권력 장악에 나설 수 있는가?

잠재력은 있다. 노동계급 권력의 원천은 생산 현장과 지역 사회에 대한 통제에서 나온다. 노동계급은 투쟁 과정에서 자신들의 민주적 조직을 발전시킬 수 있다.

이집트 혁명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기존 경영진 사임을 촉구하거나 “노동자와 기술자들로 구성된 새로운 경영진”에 운영을 맡기는 것을 촉구하는 등 사장들의 통제에 도전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노동계급 투쟁은 이제 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파업이 확산되고 있다. 무바라크를 타도한 정치투쟁이 이제 자본의 지배에 도전하는 경제투쟁으로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것이다. 독일의 여성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는 1905년 러시아 혁명을 분석하면서 혁명적 대중파업에서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이 상호 작용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다고 했는데, 현재 이집트 노동계급 투쟁의 패턴도 그 점을 보여 준다.

노동계급이 주도하는 민중 권력 기관이 광범위하게 등장할지, 노동계급이 권력 장악에 성공할지 현재로서는 점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 도달하기까지 몇 년의 과정이 필요할 수도 있다.

만약 노동계급이 권력 장악에 실패한다면, 1920년대 독일과 1930년대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그랬듯이 반동 세력이 다시 활개를 쳐 혁명의 성과와 노동계급 조직을 파괴하려 들 수 있다. 부르주아 자유주의 세력은 부분적인 자유화는 도입하려 하지만 뿌리 깊은 제국주의 지배에 맞선 투쟁을 이끌지는 못할 것이다.

이와 반대로 중동의 심장부인 이집트에서 노동계급이 권력 장악에 성공한다면, 중동 전역의 사회주의 혁명으로 나아가는 초석이 될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 국가에 엄청난 위협이 될 것이고, 결정적으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제국주의 체제에 결정타를 날릴 것이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여파가 그 후 몇 년 간 유럽의 제국주의 강대국들에서 혁명을 낳았던 것 같은 일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연속혁명론은 자동으로 실현되는 공식이 아니다. 행위자들의 의식적 노력이 핵심적이다.

따라서 노동계급의 권력 장악은 의식적으로 추구해야 한다. 이런 과제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고 노동계급 내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혁명적 정치 조직이 미리 건설돼 있어야 이런 과제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새로 나왔습니다!

《이집트 혁명과 중동의 민중 반란》

알렉스 캘리니코스·이집트 사회주의자 외 지음, 책갈피, 8000원, 176쪽

지금 세계 지배자들은 이집트 혁명과 중동의 반란이 ‘질서 있는 전환’, 즉 제국주의와 자본주의 질서를 그대로 유지하는 수준의 변화에 그치길 바란다. 그러나 이런 이른바 ‘민주화 이행’을 통해서는 이집트 민중이 염원하는 민주주의적 과제들을 성취할 수 없다. 민주주의, 경제 정의 문제의 해결, 제국주의의 중동 억압 종식 등을 위해서는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질서 자체에 도전하는 ‘혁명적 전환’이 필요하다. 이제 투쟁의 전면에 등장한 노동계급이 이런 과제를 해결하는 열쇠를 쥐고 있다.

이 책은 이집트 혁명과 중동의 민중 반란이 그런 혁명적 전환을 위한 첫걸음을 뗐다는 것을 보여 주고, 이집트 민중의 요구를 성취하기 위해 이집트 혁명이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다루고 있다.

책갈피 문고 | 오늘날의 마르크스주의 09

《이슬람주의, 계급, 혁명》

크리스 하먼 지음, 책갈피, 4900원, 128쪽

무슬림형제단은 왜 저항과 타협 사이에서 오락가락할까? 헤즈볼라와 하마스는 어떻게 봐야 할까? 이 소책자는 이슬람주의가 반동적 파시즘이라는 견해와 진보적 반제국주의라는 상반된 견해 둘 다 틀렸다고 지적하며, 이란·수단·이집트·알제리 등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이슬람주의의 진정한 계급적 성격과 정치적 한계를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