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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사노련 방어 집회에서 사회주의적 주장은 필요했다

김무석 씨가 쓴 독자편지('사노련 방어 집회 참가기-의미 있는 집회, 아쉬운 구호')에 이견이 있다.

김무석 씨는 3월 4일 사노련 방어 집회에서 사회주의적 주장이 너무 부각됐던 점이 불편했던지, 국가보안법 반대를 “사회주의자들의 투쟁으로 협소하게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국가보안법은 사상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법이므로 광범한 사람들이 국가보안법에 반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사회주의자가 아니더라도 국가보안법을 반대할 수 있으므로, 추상적으로만 본다면 김무석 씨의 말이 그리 틀린 말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집회의 구체적 맥락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국가보안법이 사상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맞지만, 모든 사상이 똑같이 억압당하는 것은 아니다. 김무석 씨는 독자편지에서 국가보안법이 좌파와 노동운동을 겨냥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지만, 모든 좌파적 사상과 모든 노동운동 세력이 국가보안법에 의해 처벌받는 것도 아니다.

이날 집회는 국가가 국가보안법을 이용해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의 사회주의 정치활동을 탄압한 것에 항의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국가보안법에 의해 공격 당한 구체적 당사자들은 모두 사회주의자들이었다.

왜 특별히 사회주의자들이 탄압받는가?

사회주의에 대한 세간의 온갖 편견이 있지만, 진정한 사회주의 사상은 노동자 대중 스스로 행동을 통한 해방을 최고 가치로 여기기 때문이다. 체제가 총체적 위기에 처하고 노동자들의 저항이 급격히 분출할 때면 어김없이 사회주의 사상이 계급투쟁의 무기가 되곤 했다. 이 때문에 지배자들은 비록 지금까지는 사회주의자들이 소수였을지라도 미래의 계급투쟁을 내다보며 사회주의자들의 선전‍·‍선동‍·‍조직‍·‍행동의 자유를 옥죄려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주의자들은 물론이고, 아직 자신이 사회주의자가 아닌 사람들일지라도, 자본주의를 심각하게 의심하고 진정으로 정의‍·‍자유‍·‍평등이 구현되는 사회를 꿈꾸고 경제 위기 책임 전가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사회주의 정치활동의 자유를 방어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이날 집회가 “사회주의 정치활동 쟁취 결의대회”로 정해진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 공격에 맞선 집회임과 동시에 특히 사회주의적 정치활동에 대한 탄압에 맞서는 집회였던 것이다. 그런데 김무석 씨는 이날 집회의 구체적 성격을 무시하고 “사회주의자들의 투쟁으로 협소하게 접근”했다고 비판한다.

물론 김무석 씨가 비판한 것처럼 사회자의 “사회주의 쟁취하자” 구호 선창은 부적절했다. “사회주의 정치활동 쟁취하자” 구호가 더 나았을 것이다.(실제 이날 집회의 사회자는 두 구호를 모두 외쳤다.)

그런데 김무석 씨는 단지 사회자의 구호 선창만 문제 삼는 것 같지 않다. 사회주의적 주장을 펼치고 구호를 외친 “개별 참가자들의 발언”도 부차적이지만 문제였다고 여긴다. 즉, 김무석 씨는 이날 집회에서 사회주의적 주장이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것 자체를 불편해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날 집회에서 다수의 연설자들이 사회주의적 주장을 펼친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사회주의 사상을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처벌받는 상황에서 탄압 받는 사회주의자들이라면 법정 최후 진술, 토론회, 집회 등에서 사회주의 사상을 공개적으로 선전할 기회를 마련하고자 하지 않겠는가?

김무석 씨는 이날 집회에 사회주의자가 아닌 자신의 지인이 왔다면 그가 불편해했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김무석 씨는 사회주의적 주장이 지배적인 집회는 “광범한 연대”를 그르친다고 보는 듯하다. 그러나 사회주의적 주장과 “광범한 연대”는 대립되는 것이 아니다. 그 두 가지는 결합돼야 하고, 사회주의자라면 응당 두 가지를 결합시키려 애써야 한다.(얼마나 효과적으로 두 가지를 결합시키느냐 하는 점은 그 다음 문제다.)

지인이 불편해할 것을 우려해 사회주의적 주장을 삼가야 할까? 이질적인 사상은 서로 충돌하기 때문에, 다른 사상에 기초한 주장을 접한다는 것은 늘 불편함이 따를 수 있다. 지인이 불편해할까 봐 사회주의적 주장을 삼가는 것은 사회주의적 운동 건설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태도는 오히려 음모적으로 느껴져 “연대”를 그르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