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해방과 이집트 노동계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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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어떤 역사가는 2010년 5월 말 이스라엘이 자행한 학살 사건을 이집트 혁명을 재촉하고, 30년간 지속된 무바라크 독재를 붕괴시킨 원인 중 하나라고 쓸지도 모르겠다. 지난해 팔레스타인을 향하던 국제 구호선을 습격하고 활동가들을 학살한 이스라엘의 만행에 격분한 이집트 민중은 전국적으로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카이로에서만 수만 명이 모였다. 이 시위는 이스라엘뿐 아니라 무바라크도 겨냥했다. 그 뒤 몇 달이 안 돼 이집트에서는 혁명이 일어났고 무바라크는 권좌에서 쫓겨났다.
무바라크의 몰락으로 이스라엘과 미국은 곤란한 처지가 됐다. 미국의 중동 지배전략에서 이집트는 핵심적 지위에 있었다. 미국은 아랍의 맹주인 이집트를 길들이고 친미 독재정부를 유지하는 데 막대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제 공든 탑이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는 위기에 처했다.
1979년 이래 아랍 민중에게 굴욕을 주고, 그들의 단결을 방해해 온 캠프데이비드 협정의 미래도 위태롭게 됐다. 이스라엘과 미국은 이 협정의 미래가 암울해지자 노심초사다. 이런 사실만으로도 팔레스타인 해방과 이집트 혁명 사이에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동안 이스라엘의 잔혹한 식민 지배에 맞서 온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은 이중의 어려움에 봉착해 있었다. 미국의 지원으로 압도적인 무력을 갖춘 이스라엘에 대면 팔레스타인인들은 가진 게 돌멩이밖에 없었다. 게다가 아랍 지배자들과 독재정부들은 이스라엘과 공모해 팔레스타인 저항운동을 억압하거나 미국의 눈치를 보며 모른 체했다. 이들은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이 행여 자국 민중을 급진화시킬까 두려워했다. 이는 모두 미국 제국주의의 중동 지배전략의 산물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이 홀로 이 모든 것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찼다.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을 이끌던 민족주의 지도부인 파타와 PLO(팔레스타인해방기구)는 이런 상황에 적응해 왔다. 그리고 얼마 전 폭로된 이른바 ‘팔레스타인 페이퍼’는 파타와 PLO의 전략이 파산했음을 극적으로 보여 줬다. 그들은 아랍 지배자들에게 호소해 팔레스타인 해방을 이루려 했었고, 이제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선처’에 의존하려 한다.
반신불구의 국가
미국과 이스라엘의 압력에 굴복하고는, 단지 손바닥만한 땅뙈기에 세운 반신불구의 국가를 인정받기만을 원하게 됐다. 이 때문에 파타와 PLO는 미국과 이스라엘에 고분고분한 ‘합리적’ 파트너를 자처했다. 그러나 이는 팔레스타인 민중의 자존심을 짓밟는 행위였고 새 세대 팔레스타인 청년들을 급진화시켰다.
새 세대 팔레스타인인들의 영웅적이고 처절한 인티파다(봉기)는 아랍 민중에게 커다란 영감을 줬다. 그러나 미국과 이스라엘, 그리고 아랍 왕정과 독재자 들의 억압을 모두 극복할 전략을 찾아야 한다는 점은 여전히 남아 있다. 아랍에 산재한 팔레스타인 난민촌이나, 강제수용소나 다름없는 서안과 가자의 피폐한 팔레스타인 마을에서 이런 전략을 발전시키기란 매우 어렵다. 결국,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효과적 전략은 아랍 전체, 특히 이집트의 변화에서 찾아야 한다. 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집트 혁명에 열광한 것은 이런 상황의 반영이다. 그들은 이집트 혁명에서 자신들의 미래를 발견하려 한다.
아랍의, 특히 이집트의 노동계급만이 이런 전략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아랍 지역에서 최대 규모인 이집트 노동계급은 집단적 행동으로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에 결정적 타격을 가할 힘을 가지고 있고 이번 혁명에서도 결정적 구실을 했다. 그들은 미국의 중동지배 전략과 아랍 지배자들의 착취와 억압 둘 다를 철폐해야만 진정 해방될 수 있다.
이집트를 비롯한 중동 노동계급은 혁명의 의제에 팔레스타인 문제를 올리기 시작해야 한다. 이는 아랍과 이집트에서 연속혁명 전략을 추진하는 데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