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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와 빈곤의 뿌리

‘빈곤’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아마 처음엔 아프리카가 떠오를 것이고, 잠시 후 ‘제3세계 빈곤’이라는 말을 어렵지 않게 생각해 낼 것이다. 그리고 아랍 혁명과 빈곤의 연관을 따져볼 수 있을 것이고,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본 중국의 농민공이나 북한의 꽃제비들도 떠올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조금 더 고민해 보면 빈곤이란 것이 꼭 먼 나라의 문제가 아니다.

매일 아침 거리에서 보게 되는 ‘어느 핏발 서린 리어카꾼’의 문제고, 홍익대 청소 노동자들이나 쌍용차 해고자들의 문제다. 심지어 매번 지갑 속에 얼마가 남았는지 고민하며 뒤풀이 자리를 망설이는 나의 문제일 수도 있다. 이렇듯 빈곤은 우리에게 먼 것 같으면서도 가깝고 현실적인 문제다.

그런데 오늘날 빈곤 문제를 다루는 관점은 대개 일면적이기 일쑤다.

크게 두 가지로 접근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제3세계의 문제로 접근하는 경향이다. 이런 접근은 물론 장점이 있다. 이들은 부패 정부, 다국적 기업, 제국주의 국가 들의 야만성을 날카롭게 폭로하고 분석해 제3세계 빈곤 문제의 심각성을 환기하는 중요한 구실을 했다.

하지만 좀더 포괄적이고 근본적인 접근이 아쉽다. 이들은 흔히 빈곤 문제를 특정 지역으로 국한한다. 대표적인 빈곤 관련 서적들을 살펴봐도 알 수 있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장 지글러),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피터 싱어), 《세계의 빈곤, 누구의 책임인가?》(제레미 시브룩), 《빈곤의 종말》(제프리 삭스) 등의 저명한 책 대부분이 빈곤 문제를 제3세계의 문제로만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빈곤 문제를 지금 내가 발딛고 있는 곳에서 멀리 옮겨 주는 ‘편안함’의 부작용은 적지 않다. 특히 일부 보수적 학자들의 저작은 마르크스주의 학자인 데이비드 하비가 지적하듯, 국제지원을 대리해 주는 NGO의 활동을 적당히 지지하면서 빈곤 문제를 제3세계만의 문제로 각인시켜려는 정치적 의도가 다분하다.

서울 시내 한복판인 상도동에서 강제철거로 집을 잃은 사람들 어떻게 빈곤이 제3세계만의 문제일 수 있겠는가.

이와 대조적으로, 주요 산업 국가에서도 ‘워킹푸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는 빈곤 문제를 다루는 이들이 있다. 《가난뱅이의 역습》(마츠모토 하지메), 《워킹 푸어, 빈곤의 경계에서 말하다》(데이비드 K 쉬플러), 《워킹 푸어, 열심히 일해도 보상받지 못하는 시대》(가도쿠라 다카시) 등은 제3세계가 아닌 나라들, 심지어 신진국에서도 빈곤 문제가 존재한다는 당연한 현실을 폭로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이 분석들은 ‘기성세대 책임론’ 등으로 빠지면서 빈곤의 구조적 원인을 규명하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있다.

체제의 동학

빈곤에 대한 이런 접근들이 각각 제시하는 해결 방안들을 보면 그 약점이 더 확연해진다. 폭로의 구체성에 견줘 다소 빈약해 보이는 대안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것이다. 윤리적 기부(피터 싱어), 진정한 인간성 회복을 통한 전 지구적 연대(장 지글러), 빈국에 대한 집중적 원조(제프리 삭스), 체제 밖으로 탈주(마츠모토 하지메), 계급적 투표(데이비드 K 쉬플러), 정부 주도의 정책 개선(가도쿠라 다카시) 등이 그 사례다.

물론 이렇게 몇 단어로 그들이 제시하는 대안을 정리한다는 것은 다소 무례하고 무리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몇 마디를 덧붙인다고 빈곤 문제의 뿌리를 건드리지 않는다는 아쉬움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실제로 유엔이나 G20 등이 제시해 온 기부·원조·정책 지원 등은 전 세계적인 빈곤 문제를 조금도 해결해 오지 못한 것이 사실 아닌가. 이는 보수적인 학자건 진보적인 학자건 모두 인정하는 부분이다.

제3세계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는 빈곤 문제가 분명 양적·질적으로 상당히 차이가 있지만, 이는 자본주의 체제의 동학이 만들어 낸 결과라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미국이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에 1천2백조 원 이상을 쓰고 이명박이 4대강 삽질을 위해 수십조 원을 쓰는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빈곤으로 고통받는 것은 자본주의가 생산수단과 권력을 소유하는 소수와 그렇지 않은 다수로 분리된 체제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세계 최고 부자 세 명의 재산이 가난한 48개국의 부와 맞먹는, 상상하기 힘든 불평등을 낳는다. 다시 말해, 빈곤의 구조적 원인은 자본주의의 논리 자체에 내재해 있다. 사실 이것은 위에서 언급한 책들이 폭로한 사실을 포괄적으로 분석하면 쉽게 이를 수 있는 결론이다.

따라서 자선과 기부 등으로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물론 탐욕스런 기업주들과 권력자들에 대면 이런 실천은 너무나 훌륭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대안은 빈곤 문제를 발생시키는 자본주의 고유의 결함을 건드리지는 않는다. 따라서 빈곤을 완화하기도 어렵고 오히려 문제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 빈곤의 뿌리에 도전하는 운동에 적대적인 보수 언론과 지배자들도 자선·기부 등은 찬양하지 않는가.

결국 빈곤을 해결하려면 부를 재분배하는 급진적인 과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개인적 실천이 아니라 집단적 투쟁이 필요하다. 실제로 지금 아랍을 뒤흔드는 혁명은 지금까지 어떤 원조나 지원, 정책 개선보다도 빈곤을 해소하기 위한 더 나은 방안을 보여 줄 것이다.

물론 가만히 앉아서 아랍 혁명의 불기운만 지켜보자는 것은 아니다. 바로 지금 여기서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투쟁과 비정규직 차별에 맞서는 투쟁에 지지를 보내고, 대학 등록금 인상에 반대하는 투쟁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기업주·부자에게 세금을 부과해서 빈곤을 해결하고 복지를 확대하기 위한 투쟁을 건설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투쟁을 생산수단을 독점한 소수의 권력에 도전하는 투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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