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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대기업 정규직의 임금 인상도 지지해야 하는가

최근 여기저기서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그동안의 ‘고통전담’을 만회하려 하고 있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2년간 임금동결을 강요당했던 공무원 노동자들은 임금 인상에 더해 학자금대출 등 추가적인 복지 확충을 요구하고 있고, 금융노조나 금속노조도 예년에 비해 높은 임금 인상을 요구했다.

그러자 이명박 정부는 “상대적으로 근로조건이 좋은 대기업 정규직”을 비난하고 있다. 그런데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요구를 달가워하지 않는 것은 단지 정부나 우파들만이 아니다.

낮아진 노동소득분배율은 자본가들이 노동자 몫을 빼앗아 갔다는 것을 보여 준다.

민주당과 자유주의 언론, 많은 시민사회단체들도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요구와 투쟁을 마뜩잖게 여기곤 한다. 심지어 일부 좌파들도 ‘대기업 정규직은 임금 인상보다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해야 한다’며 두 가지를 대립시키곤 한다.

여기에는 대기업 정규직의 임금 인상이 노동자 간 격차를 더욱 크게 만든다거나, 노동자들의 단결을 어렵게 만든다는 등의 생각이 깔려 있다.

그러나 현대차와 기아차 등이 수조 원의 현기증 나는 수익을 올린 상황에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그 자체로 정당할 뿐 아니라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을 위해서라도 이들의 투쟁이 필요하다.

대기업 정규직 또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은 이들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 때문에 비정규직과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이명박 정부가 공무원 임금 동결을 추진했던 것도, 조중동이 현대차 노조의 임금 인상 투쟁에 펄쩍 뛰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대기업 원청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수준은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수준에 직접 영향을 끼친다. 기업주 단체인 경총이 매번 “대기업(노조)이 임금 인상을 주도했기 때문에 기업들의 평균임금이 올라갔다”고 불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부 좌파들은 1997년 경제 위기 이후 ‘대형노조의 임금 인상이 중소노조와 미조직 부문에 혜택을 주던 시대 끝났다’고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소장은 “노동조합의 임금 인상은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도 높이는 효과를 가져오면서 전반적으로 임금을 균등화하는 역할을 한다”(〈한겨레21〉 794호) 하고 말했다.

노동소득분배율

만약,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투쟁이 다른 부문을 끌어올리는 효과가 없다면 정부와 기업주들이 저토록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이간질하는 데 공들일 이유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정규직의 임금 인상 자제와 ‘양보론’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투쟁을 더 어렵게 만들 뿐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가 정규직 노동자들의 책임인 것도 아니다. 비정규직의 열악한 처우가 정규직 때문이라는 주장은 전체 노동자의 몫은 정해져 있는데 정규직이 더 가져가서 비정규직이 피해를 본다는 말이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지난 10여 년간 국민소득에서 전체 노동자에게 돌아오는 임금 몫인 노동소득분배율 자체가 정체하거나 떨어졌다. 특히 최근 5년 연속 줄어든 노동소득분배율은 지난해 59.2퍼센트로 2004년 이후 가장 낮았고, 감소폭도 36년 만에 최대치였다.

자본가 계급이 전체 노동자의 몫을 빼앗아 가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조직력과 투쟁력을 갖춘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상대적으로 자신들의 몫을 잘 지켜냈다고 해서 격차 확대의 책임이 그들에게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따라서 대기업 정규직이 비정규직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익을 얻는다는 주장은 악선동일 뿐이다.

저들은 비정규직의 열악한 처우를 들먹여 정규직을 비난할 때조차 비정규직에게 양보할 의사가 손톱만큼도 없다. 고용노동부가 정규직을 비난하면서 동시에 “최저임금이 높아 기업들이 지키기 어렵다”며 최저임금 인상 요구도 일축한 것은 이를 잘 보여 준다.

정부와 기업주들은 자신의 이윤을 지키려고 전체 노동자의 임금 인상 요구를 회피하고 무마하는 방편으로 정규직 대기업 노동자들을 공격해서 고립시키려 한다. 대기업 정규직의 투쟁이 비정규직 미조직 부문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막으려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에 맞서 전체 노동자의 이익을 방어하는 투쟁에서 조직력과 투쟁력이 있는 대기업 노조의 임금 인상 투쟁은 대단히 중요하다.

우리는 저들의 이간질과 악선동에 흔들리지 말고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투쟁을 적극 지지해야 한다. 이런 투쟁을 통해 노동자들의 자신감과 조직이 강해지고, 정치적 시야도 트이기 마련이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과의 연대 투쟁에 나설 자신감도 이런 투쟁 과정에서 확대될 수 있다.

그리고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도 자신들의 임금 인상뿐 아니라 비정규직과 미조직 노동자들의 요구를 함께 내걸고 싸워야 한다. 당면한 최저임금 인상 투쟁에서부터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힘을 보태야 한다. 그럴 때 노동자들을 이간질하려는 시도는 더 힘들어질 것이고, 노동자들 전체의 이익도 늘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