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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현 교육감 초청 강연회:
경쟁교육의 폐해와 모순을 꼬집다

5월 24일(화) 서울교육대학교 종합문화관에서 서초강남교육혁신연대와 서울특별시 강남교육지원청 주최로 곽노현 교육감 초청 강연회가 열렸다. (서초강남교육혁신연대는 작년에 곽노현 후보 당선 운동을 펼친 지역의 교육운동연대체다.) 평일 낮 시간임에도 약 3백 명이 참가해 진보교육감의 ‘공교육 혁신’ 이야기에 기대를 나타냈다.

곽노현 교육감은 강연에서 한국의 중고등학생들이 겪는 경쟁 교육의 모순을 잘 지적했다. 한국의 청소년들은 2009년 OECD 주관 하에 65개 국에서 실시한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최상위권을 차지했다. 그런데 ‘자기주도 학습’ 부분에선 65개 국 중 58위를 기록했다. 곽 교육감은 이를 두고 “학원 주도 학습”이라고 비꼬았다.

또 중고등학생 17퍼센트가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다고 한다. 유니세프(UNICEF)에서 실시한 ‘어린이·청소년 행복 지수’에서 OECD 국가 평균을 100으로 봤을 때 한국은 66점으로 3년 내리 OECD 국가들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행복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에 대한 대답에서 한국의 고등학생 26퍼센트가 ‘돈’이라고 대답했다. 곽 교육감은 과도한 학업량과 경쟁으로 인해 한국의 청소년들은 무기력과 수동성이 특징이라며, “PISA 최상위권 국가라는 성적은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다”고 꼬집었다.

시험 점수로 서열을 매기고 옆의 친구들을 경쟁 상대로 만드는 한국의 교육 현실은 청소년들의 연대 의식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의 청소년들은 사회적 상호작용(협동) 역량 조사에서 26개국 중 25위를 기록해 꼴지 수준이다.

곽 교육감은 “학벌사회와 대학 서열 체제, 그에 따른 노동시장에서의 임금 격차”가 문제의 근본 원인이라고 올바로 지적했다.

곽 교육감은 이에 대한 대안으로 “교육감의 모든 자원·역량을 동원해 혁신학교를 성공시키겠다”고 했다. 곽 교육감은 혁신학교를 통해 “주입식 교육을 탈피하고, 학생들이 참여하는 수업을 만들고, 학부모와의 소통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국·영·수 문제집에 파묻혀 지내지 않고 “합창과 무용, 체육, 목공, 원예 등을 경험하게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선생님들의 자발성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고 했다.

교원평가제를 수용하는 모순과 아쉬움

이후 질의·응답 시간엔 예정 시간을 30분이나 넘겨 활발하게 질문과 의견이 쏟아졌다.

우파들이 무상급식을 무력화시키려는 것에 대한 질문에 곽 교육감의 대답은 아주 통쾌했다.

“무상급식을 두고 ‘망국적 포퓰리즘’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오히려 그러한 선동이 부자를 위한 포퓰리즘이다. 연말만 되면 멀쩡한 보도블럭을 파헤치고 새로 까는 데 이런 정책이야말로 망국적 포률리즘 아닌가? 각 가정에서 점심도시락을 만들기 위해 시장을 보지 않아도 돼서, 친환경 무상급식으로 오히려 물가가 0.2퍼센트 인하됐다는 결과가 있다. 이런데도 왜 ‘망국적 포퓰리즘’이라고 하는가? 그리고 이미 경상남도와 경기도 과천에선 무상급식을 실시하고 있다. 그런데 세금 부자인 서울에선 왜 못하나?”며 우파들의 전면 무상급식 반대 주장에 대해 속 시원하게 반박하자, 청중석에서 많은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또 “선생님들이 아이들과 좀더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도록 공문을 최소화해 달라”는 한 학부모의 요청에 “선생님들이 잡무가 많으면 수업에 열성을 다할 수 없다. 내년부턴 달라질 것이다”고 답했다.

곽 교육감은 “고교 서열화를 해체”시켜야 한다는 주장에도 공감했다. 다만 “선거를 통해 정리될 것”이라는 주장은 다소 아쉬웠지만 말이다.

그런데 “사교육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하는 질문에 곽 교육감의 답변은 다소 모호하거나, 해결책을 학부모 개인에게 돌리는 것이었다.

곽 교육감은 사교육 문제를 해결할 “보완책을 마련하겠다”면서도 “아이를 (사교육에) 묶어 둘 것인지 말 것인지는 학부모의 선택이다. … (경쟁에서 뒤처지지 말아야 한다는) 불안에서 벗어나는 것 밖에 없다. 또한 유권자로서 교육 정책을 심판해야 한다. 내년은 선거의 해인데, 선거에서 변화시킬 수 있는 건 변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한 참가자는 “사교육에 투자할지 말지를 부모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며 개인의 선택만이 아니라 시스템을 고칠 것을 주문했다.

이에 대해 곽 교육감은 “시스템과 싸우는 사람은 많을 수 없다. … 한꺼번에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방향은 잡아가고 있다. 각성하는 개인으로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대답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당장 시스템에 맞서 행동에 나서지는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진보교육감이라면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기기 보다는 좀 더 분명히 경쟁 교육의 폐해와 원인을 폭로하고 근본적 해결책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진보교육감이 대중의 열망을 등에 업고 정부와 체제가 강요하는 교육 정책에 브레이크를 걸기 위해 나설 때, 지금 당장 다수는 아니어도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감을 갖고 진보교육감을 응원하며 그러한 싸움에 동참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곽 교육감이 교과부의 압력에 제대로 저항하지 않고 교사들을 줄 세우는 점수 매기기 방식의 교원평가를 수용한 점은 매우 아쉬운 일이다.

한 참가자가 곽 교육감의 후보 시절 선거 공약과 달리 교원평가 방식에 대해 교육과학기술부 안(체크리스트 방식으로 점수를 매기는 것)을 대폭 수용한 점에 대해 비판성 질문을 하자, 곽 교육감은 “워낙 예민하고 민감한 문제”라며 약간의 뜸을 들인 뒤, “제도로서 교원평가제를 반대하진 않았다”며 “오히려 교과부가 내 의견을 적극 수용하여 문항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부작용을 최소화”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곽 교육감이 받아들인 교원평가는 경쟁교육을 더 심화할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수밖에 없다.

진정한 교육 개혁을 이루려면 현장의 요구를 과감히 내걸고 저항을 촉발하는 진보교육감이 돼야 할 것이다. 그럴 때, 정부와 우파들의 압력으로부터 진정으로 진보교육감을 방어하고 함께 싸울 아래로부터의 동력이 더욱 확산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