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고엽제 매립 사건:
제국주의의 또 다른 범죄가 드러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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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엽제 후유증으로 고통과 죄책감에 시달리던 퇴역 미군 병사의 폭로로 주한미군의 고엽제 매립 사건이 세상에 드러났다.
경북 왜관의 ‘캠프 캐럴’뿐 아니라 부천 ‘캠프 머서’, 부평 ‘캠프 마켓’, 춘천 ‘캠프 페이지’에도 대량의 화학물질이 매립됐다는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1970년대에 한국에서 근무한 미군들은 당시 모든 부대에 고엽제를 없애라는 명령이 내려졌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전까지 미군은 미군 부대 주변 곳곳에 고엽제를 뿌려 왔다. 1960년대에 비무장지대(DMZ)에 고엽제를 살포하는 과정에는 민간인도 동원됐고 “고엽제 살포 작업은 보호 장비 없이 맨손으로 진행됐다.”(녹색연합)
미군은 뻔한 거짓말로 일관하고 있다. 첫 현장 브리핑에서 고엽제의 존재 자체에 대해 아무 기록이 없다고 했지만 일주일 만에 미군이 제출한 공병대 보고서에서 에이전트 오렌지를 저장했다가 반출한 기록이 발견됐다.
2004년 조사 결과라고 공개한 부대 내 다이옥신 수치가 미국 환경보호청의 기준보다도 높은 것으로 알려지자 3일 만에 그 수치를 1천 분의 1로 정정보도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이명박 정부는 반환된 미군기지 1백13곳에 대한 오염조사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놀라운 사실은 지금까지 이 부지들에 대한 국방부의 오염조사가 단 한 차례도 없었다는 것이다.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에 따르면 미국은 “주한미군에 의해 야기되는 인간건강에 대한 공지의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을 초래하는 오염을 신속하게 치유한다”고만 돼 있을 뿐 그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이 무엇인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 우기면 그만인 것이다.
가장 어처구니없는 것은 미군이 우기기 전에 나서서 이들을 비호하는 이명박 정부다.
환경부장관 내정자이자 소망교회 신자인 유영숙은 때마침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미군이 자국민 보호차원에서라도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미군을 변호했다.
그러나 미군이 세계 곳곳에서 저지른 환경오염은 미국 정부조차 인정한 바 있다.
“1993년 미 국방부가 국회에 제출한 국방환경정화프로그램의 연간보고서에 의하면 외국 기지를 포함한 미국기지 3천3백54곳에서 2만 2천5백9개 싸이트가 오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1992년 발표된 미국연방회계감사원 보고서에선 미군이 위험물질을 다룰 때에도 어떤 환경기준도 고려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정명희, ‘미군의 오늘을 필리핀에서 보다’, 녹색연합)
이명박 정부가 미군 측에 통보한 한국측 조사단원에는 전직 국방부 환경과장이 포함돼 있는데, 현지에서 활동하는 녹색연합에 따르면 “민간전문가로 포장돼, 미국 측 입장을 대변하는 데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 지난 5월 23일 미군부대 방문시에도 미국 측 입장을 대변하다가 국방부 고위 관계자의 제지를 받은 적도 있다.”
고엽제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에이전트 오렌지에는 TCD 다이옥신이 포함돼 있다. 이 물질은 식물을 말라죽게 하고 동물에게는 기형과 암을 유발한다. 몸속에 축적되고 태아에게도 영향을 끼친다.
“베트남 정부에 의하면 베트남전 당시 5백만 명 이상이 고엽제에 노출됐고 3백만 명 이상이 고엽제 후유증을 앓고 있으며, 그중 최소한 1백만 명이 심각한 신체장애를 겪고 있다. 베트남 적십자사의 자료에 의하면 15만 명 이상의 어린이들이 고엽제 후유증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다이옥신의 유전 독성으로 5만 명 이상의 기형아가 태아났다.”(우석균, ‘베트남 전쟁의 또 하나의 피해자 : 베트남 참전 군인’)
평범한 한국인들의 생명을 위협해 온 주한미군은 당장 진상 규명과 피해 보상에 나서야 하고, 이런 사태를 조장한 SOFA도 개정돼야 한다. 더 나아가 환경 파괴뿐 아니라 이 지역의 불안정과 긴장을 고조시키는 근원인 주한미군 자체가 사라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