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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대통합 연석회의 최종 합의문에 대해:
자본가 정치에 맞서 진보의 단결이 필요하다

 이 글은 6월 4일 개최된 민주노동당 중앙위원회에서 다함께가 배포한 리플릿에 실린 글이다.

6월 1일 새벽, ‘진보정치대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진보진영 대표자 연석회의’(이하 연석회의)에서 주요 참가 단체들이 최종 합의문에 합의했다.

자본가 정치가 지배하는 한국 공식 정치에서 진보정치가 의미 있는 세력이 되려면 진보정치세력이 단결해야 한다. 게다가 진보정당의 분열이 노동자·민중의 단결과 투쟁에도 적잖은 난관을 조성하곤 했다. 이런 현실을 타개하고자 많은 진보 염원 대중이 진보정치세력의 단결을 원했다. 그래서 우리도 진작부터 진보대통합을 지지해 왔다.

이번 합의문은 아쉬움과 우려가 있지만, 진보의 가치를 상당 부분 포함하고 있다.

‘새로운 진보정당’이 “세계 변혁운동의 이상과 역사적 성과를 비판적으로 계승하고 자본주의의 폐해와 한계를 극복”하며 “남한 자본주의와 북한 사회주의의 한계를 넘어서는 인간 존중·노동 존중의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주장은 공감할 만하다.

노동자·민중이 “사회생활 전반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정치권력을 수립하기 위한 진보적 대중정당”이 돼야 한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부속 합의문으로 채택한 ‘20대 주요 정책과제’도 진보세력의 공동 요구로 삼을 만하다. 비정규직 해소, 무상의료, 무상교육, 투기자본 규제, 핵발전 폐기, 국가보안법 철폐, 해외 파병 반대, FTA 반대 등이 그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몇 가지 아쉬움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진보정치세력의 단결을 향해 일보를 내딛은 이번 합의를 지지한다.

진보대통합의 3대 쟁점에 대해

하지만 이번 합의문은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완주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한다”면서도 “가치 중심의 정책연대와 호혜 존중을 기준으로 선거연대를 추진할 수 있다”며 자본가 야당인 민주당과의 연합(민주대연합) 가능성을 열어 놨다.

“2012년 대선 선거연대”라는 뒷문을 열어 놓음으로써 “진보정치 세력의 승리를 위해 완주”한다는 “기본 원칙”을 공문구로 만들 위험성을 안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진보 후보의 완주가 예외적이고 실천에서는 민주당과의 선거연대가 “기본 원칙”이다시피 했기 때문에 이것은 근거 없는 기우가 아니다.

우리는 진보 후보의 독자 출마를 원칙으로 하되, 진보 후보가 출마하지 않은 선거구에서는 일부 민주당 소속 개혁 후보에게 비판적 투표를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당 지도부의 ‘범야권연대’는 이런 투표 전술이 아니라 민주당과 체계적 협력을 맺는 것을 뜻한다. 진보정치세력의 연합이 한나라당은 물론이고 민주당 같은 자본가 정당이 아닌 진보 정치 대안을 효과적으로 건설하는 데 복무하기보다는 민주대연합을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이 될 위험성이 있는 것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민주당과의 동맹이 선거 영역만이 아니라 투쟁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되곤 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노동자 정당과 자본가 정당과의 체계적 협력(적대 계급과의 동맹)을 뜻하는 민주대연합은 노동자 투쟁에 해악적이다. 민주당이 선거를 위해 현안 쟁점에 대해 ‘진보적’ 미사여구를 남발할 수는 있어도 노동자 투쟁에 대해서는 자본가의 본능적 적대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강령에도 있고, 애초 연석회의 합의문 초안에도 있었던 “자본주의 극복”이 “자본주의의 폐해와 한계 극복”으로 완화된 것도 이런 민주대연합 전략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진보대통합 당의 지향점을 톤 다운 한 것은 2008년 이래 계속되는 세계경제 위기와 아랍 세계의 혁명 등으로 반자본주의 사상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상황에 걸맞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진보대통합을 지지하지만, 그 진보대통합이 민주대연합을 향해 나아가려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둘째, 이번 합의 과정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 하나가 이른바 ‘북한’ 문제였다. 최종 합의문은 첨예한 견해 차이를 절충했다. “새로운 진보정당은 6·15 정신에 따라 북의 체제를 인정하고, ‘북의 권력 승계 문제는 국민 정서에서 이해하기 어려우며 비판적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견해를 존중한다.”

이 합의문에 대해 진보신당 ‘독자파’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런 반발 중에 일부 내용은 우파적 동기에서 비롯한 듯해 우려스럽다.

그렇다고 북한의 핵 개발과 인권 탄압, 권력 승계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죄다 ‘반북주의’라고 매도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반제국주의 입장에서 미국 제국주의와 남한 지배자들의 대북 압박을 단호하게 반대하지만, 북한 체제가 남한 체제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본다. 즉, 북한은 남한과 꼭 마찬가지로 착취적이고 억압적인 사회이며 남북한 모두에서 근본적 사회 변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의 북한 비판은 우파의 ‘반북주의’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또, 일부 진보 인사들처럼 지배계급에게 ‘합리적 진보’로 인정받기 위한 종류의 북한 비판이 아니라, 진정한 사회 변혁의 대안을 옹호하기 위해 우리의 지향 체제가 북한의 그것과 다르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권력을 세습하는 북한이 사회주의라면,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자본주의에 반감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은 사회주의에 환멸감을 느끼지 않겠는가.

셋째, 당 운영 문제다. 당내 민주주의의 핵심은 동지적 신뢰다. 몇 가지 제도들이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민주주의를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그런데 현재 진보대통합은 한때 분열했던 사람들 사이에서의 신뢰 회복을 바탕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진보대통합의 구성요소들은 정치적으로 이질적이다. 그래서 합당은 원칙, 강령, 전략 등을 둘러싼 구성요소들 간의 정치적 이질성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진보대통합 당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얼마간의 정치적 수렴이 이뤄졌다는 뜻이지만, 그와 동시에 그 수렴은 부분적일 수밖에 없다. 이미 나름의 원칙과 강령을 가지고 있는 세력들이 쉽게 양보하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북한 문제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듯이).

정치적 수렴이 단지 부분적이기 때문에 상이한 경향들이 숨쉬고 공존할 조직 구조, 즉 공동전선적 모델이 필요하다. 이런 공동전선적 모델은 정치적·조직적으로 느슨하고 그 구성요소들의 정치적·조직적 독자성을 보장해 줄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진보대통합의 조직 모델은 당 모델(신설 합당)이다. 그것이 더 단단하고 높은 수준의 단결을 보장해 준다는 믿음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지난 민주노동당의 경험에서 봤듯이, 당 건설이 자동으로 불신과 이견을 해소해 주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당 모델을 채택했을지라도 그 운영은 공동전선적으로 하는 것이 단결에 더 이롭다.

강령 논쟁

강령에서 사회주의 구절 삭제 반대한다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당 강령에서 ‘사회주의’ 구절 삭제를 추진하고 있다.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을 계승 발전”, “북한 사회주의의 경직성 극복” 등의 문구를 삭제하고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문구로 바꾼다는 것이다.

최규엽 강령개정위원장은 “당이 처한 국내정치적 상황이나 세계사적 변화의 흐름을 감안해” 강령 삭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2008년 이후 전 세계적 경제 위기로 자본주의에 대한 불만과 의구심이 커지고 있고, 경제 위기·독재·제국주의에 반대하는 혁명이 중동을 휩쓸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자본주의를 뛰어넘는 대안을 제시할 때 아닌가.

‘사회주의 강령이 진보대통합에 걸림돌’이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분당 사태 때도 논쟁이 된 것은 패권주의와 북한 문제였지 사회주의 강령이 아니었다. 이번 진보대통합 논의에서도 진보신당, 사회당 등은 사회주의 강령을 문제 삼지도 않았다. 더구나 ‘사회주의’와 ‘북한 경직성 극복’ 등의 문구를 삭제하는 것은 자주파 지도부가 수적 우위를 통해 자신들의 의견만 관철하려는 시도로 보일 테고, 이것은 진보대통합 논의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뿐이다.

“당원의 눈높이”를 핑계대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강령은 미래의 대안 사회 체제를 제시하는 것이지 당원들의 현재 의식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지금 사회주의 삭제 주장은 당원들이 아니라, 위로부터 지도부가 제기한 것이다. 오히려 〈한겨레〉는 “기층 당원들 사이에선 사회주의 원칙의 포기를 심각한 후퇴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라고 했다.

심각한 후퇴

‘더 많은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라는 것도 강령 개정의 이유가 못 된다. 그러려면 대중의 요구와 정서에 부합하는 적절한 전술과 정책을 제시할 일이지 원칙을 후퇴시키는 방식으로 할 일이 아니다.

‘국가 탄압의 빌미가 된다’는 것도 설득력이 없다. 그러면 국가보안법이 북한을 핑계로 삼고 있으니 북한과 교류도 하지 말자고 할 텐가. 더구나 대중적 진보정당이 사회주의를 삭제하며 탄압을 피하려 하면 ‘공안’ 기관의 기만 살려 줄 것이다.

당의 급진성을 희석시켜 선거에서 표를 더 얻으려는 선거주의와 민주당 등 친자본주의 정당들과 계급연합하려는 계급협조주의가 강령 개정의 진정한 의도일 것이다. 그래서 민주노동당 강령을 후퇴시키고, 새로운 통합 진보정당의 강령 논의도 더 오른쪽에서 시작하려는 것이다.

물론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그동안 사회주의적 실천을 하거나 사회주의를 선전한 것은 아니지만, 강령에서마저 사회주의 문구를 삭제하는 것은 명백히 노동운동의 이데올로기적 후퇴를 뜻한다. 당장 조중동은 ‘민주노동당도 사회주의를 포기했다’고 좋아할 것이다.

비록 현재의 당 강령도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많지만 이런 후퇴를 방기할 수는 없다.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사회주의 강령 삭제 시도를 중단하고,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진보적 대안을 발전시키고 주장하는 데 더 힘을 쏟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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