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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강령 후퇴:
강령 후퇴의 정치적 배경

이번 강령 후퇴는 기존의 좌파 사회민주주의적 강령을 그보다 더 오른쪽으로 이동한 중도 사회민주주의적 내용으로 대체하려는 시도였다.

민주노동당의 기존 강령은 정확히 말하면 ‘사회주의 강령’은 아니었다. 가령, “국가와 사회의 근본 개혁을 추구”하고, “시장적 요소를 적절히 통제, 활용”한다는 내용 등은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통해 자본주의 체제를 변혁하고 노동자 권력을 수립하는 것을 뜻하는 진정한 사회주의와는 차이가 있었다.

그럼에도 기존 강령에는 급진적 요소들이 심어져 있었다. “사적 소유의 족쇄로부터 … 해방”,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사적 소유권을 제한하고, 생산수단을 사회화”, “사회주의의 이상과 원칙을 계승 발전” 등이 그런 요소였다.

물론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그동안 강령의 급진적 내용을 충실하게 실천에 옮기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미 2000년대 중반부터 당명에서 ‘노동’을 삭제하는 문제가 논의되기 시작했고, 그 후로도 강령을 후퇴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다. 2008년 분당 때도 일부 지도부는 ‘민주노총당’, ‘운동권 정당’에서 탈피하고 ‘국민정당’화해야 한다는 방향을 당에 강요하려 했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다함께 등 당 안팎의 좌파와 당원들의 반발로 그대로 관철되지 못했다.

분당 사태 때는 우파 정부의 집권이 낳은 사기저하 속에서 당 지도부가 우경화를 추진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명박 정부의 선거 패배와 레임덕 속에서 진보개혁 대중의 자신감이 회복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러한 자신감은 대체로 선거에서 정권교체를 할 수 있다는 수동적 급진화로 나타나고 있다. 당 지도부는 이런 배경 속에서 정권교체와 ‘집권’을 명분으로 민주당과 동맹하고 당의 정체성을 후퇴시키는 것을 합리화하고 있다.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강령 후퇴를 통해 ‘함께 집권해도 자본가들의 소유 문제는 건드리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주려했다. 자본가 계급 일부와 민주당을 안심시켜야 집권에 다가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국민적 지지’를 얻기 위해 ‘사회주의’라는 용어가 연상시키는 ‘종북’ 이미지를 탈피하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득과 실

물론, 이처럼 진보정당의 강령과 성격에서 급진성을 탈색하고 자본가 정당과 손을 잡으면, 선거에서 자본가 정당의 양보를 얻어 당선에 유리할 수도 있고, 공동집권 등에도 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설이게도 그렇게 당선·집권하면 진보적 정책과 개혁을 추진하는 데 발목이 잡히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강령의 후퇴가 정치적으로 상징하는 바가 크고, 전체 계급세력 관계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 이번에 삭제된 요소들은 자본가 정당과 노동자 정당을 구별해 주는 표지이자, 한국 노동운동의 정치적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적잖은 노조 활동가들이 강령 후퇴를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다.

반대로, ‘강령 개정’에 가장 먼저 화답한 것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였다. 이들은 가장 큰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이 사회주의 강령을 버렸으니, 다른 좌파들도 시대착오적인 사회주의 따위는 버리라’고 충고할 것이다.

이처럼 강령의 후퇴는 명백히 우파의 기세를 드높이고, 반대로 노동운동과 좌파의 입지를 좁히는 효과를 낼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이번 강령 후퇴는 영국 노동당의 당헌 4조 삭제와 비교할 만하다.

1950년대 노동당이 선거에서 세 차례에 걸쳐 참패하고 노동계급의 사기가 떨어진 틈을 타, 노동당 당수인 휴 게이츠컬은 “생산수단의 공동 소유” 내용을 담은 당헌 4조를 삭제하려 했다. “공공 소유”에 집착하면 표를 잃는다는 논리가 동원됐다.

그러나 이 시도는 좌절됐다. 당헌 4조는 ‘노동당이 최소한의 반자본주의 태도를 고수한다는 상징’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게이츠컬이 당수가 되도록 지원한 노조 상근 간부들조차 게이츠컬의 시도에 반대했다.

1992년 총선 패배 후, 신자유주의에 타협한 토니 블레어는 당수가 되자마자 당헌 4조부터 폐지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순탄한 과정은 아니었다. 노동조합 당원들은 당헌 후퇴에 부정적이었다. 노동당 지도부는 온갖 책략을 동원해 노동조합의 투표 지분을 줄였고 그런 후에야 당헌 4조를 폐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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