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 강령 후퇴:
민주노동당의 새 강령 채택, 그 의미를 곱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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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은 창당 당시 만든 기존 강령을 6월 19일 정책당대회에서 폐기하고 성격이 다른 새 강령을 채택했다. 즉, 좌파적 사회민주주의 강령에서 진보적 민주주의 강령으로 후퇴한 것이다.
명백히 새 강령은 기존 틀을 유지하는 “개정” 수준에 그치지 않았다. 하지만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폐기”나 “대체”라는 말을 쓰기가 부담스러워 “개정”이라는 부정직한 용어를 썼다.
또한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기존 강령의 어떤 구절이 새 강령에서는 어떻게 바뀌었거나 삭제됐는지를 당대회 자료집에 전혀 명기하지도 않았다. 논란이 될 만한 ‘개정’ 내용이 두드러지는 것을 원하지 않아서였겠지만, 설사 그것을 개의치 않았다 해도 개정 항목을 일일이 나열하기는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변화 폭이 워낙 전면적이었기 때문이다.
기존 강령과 새 강령 사이의 핵심적 변화는 무엇인가? 그것은 생산수단의 소유 문제다.
기존 강령에는 이렇게 돼 있다. “사적 소유권을 제한하고 생산수단을 사회화함으로써 삶에 필수적인 재화와 서비스는 공공의 목적에 따라 생산되도록 한다.”
반대로 새 강령은 “생산수단의 소유구조를 다원화”한다고 했고, 해설에서 “사적 소유를 인정”한다고 밝혔다.
기본 원칙의 이런 후퇴는 새 강령이 지향하는 진보적 민주주의 체제의 성격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 곧, “진보적 민주주의 체제는 … 사적 소유와 시장경제를 용인하는 민주주의 체제이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는다.”
생산수단의 공공 소유
생산수단의 공공 소유 비전을 폐기한 것은 중대한 후퇴다. 그것은 창당시 민주노동당이 자본가 정당들과는 다른 좌파적 사회민주주의 정당임을 선언한 상징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사회화”라는 모호한 표현을 사용했지만 말이다. 세계적으로도 그것은 대중적 개혁주의 정당의 표상이었다.
그래서 지난 1995년 토니 블레어가 영국 노동당 당헌 4조(생산수단의 공공 소유 조항)를 폐지했을 때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 창립자 토니 클리프는 그것이 “개혁주의 이데올로기와 결별하려는 노력”이라고 풀이했다. 블레어는 노동당 전통을 오른쪽에서 공격했던 것이다.
물론 생산수단의 국가 소유가 곧 사회주의의 근본 원칙인 것은 아니다. 고전 마르크스주의에서 국유화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 국가를 분쇄하고 노동자 국가를 수립하는 것이고, 그렇게 해야 자본가 계급을 정치적으로 패퇴시키고 생산수단을 장악할 수 있다. 따라서 엄밀히 말해서 기존 민주노동당 강령이 진정한 사회주의 강령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기존 민주노동당의 강령을 방어할 가치가 있(었)다. 1987년 노동자 투쟁 이후로도 10년 넘게 자본가 정당에 기대던 노동조합들이 2000년 독자적인 정당을 새로 만들고 좌파적 개혁 강령을 내건 것은 큰 진보였다. 그것은 남한 사회의 왼쪽 이동을 뜻했고, 노동자 정당이나 진정한 사회주의에 관한 논의도 더는 극소수 종파들의 관심사가 아니게 됐음을 뜻했다.
그런데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이런 점이 오히려 민주노동당을 협소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즉, 노동조합 기반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 지지 기반을 확대하는 데 어려움이 있으므로 “계급 정당”이 아니라 “다계급 대중정당”으로 변해야 하고,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좌파적인 강령도 솎아 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참여당과의 통합이나 민주당과의 연립정부 등 자본가 정당들과의 동맹을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그들을 향한 일종의 약속인 셈이다.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새 강령이 지향하는 “진보적 민주주의 체제”의 “정권형태”가 “계급 연대연합 정권”이고, 이 정권에 “자본가들의 참여를 적극 보장”하며 “자본가들의 생산수단 및 생산활동을 보장”해 준다고 밝히고 있다.
물론 동시에 “낡은 정치경제 구조를 철저히 타파”하겠다는 개혁 비전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그야말로 스스로 손발을 묶고 싸우겠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
노동조합 상근간부층
민주노동당의 오랜 지도자들 가운데는 이와 견해가 다른 경우가 꽤 있다. 특히 노동조합 상근 간부이거나 그 출신인 지도자들의 일부가 그렇다.
이들은 1997년 1월 총파업 이후 노동자들의 불만을 대변하는 강력한 노동자 정당이 의회 안에 있어야 한다고 확신했던 장본인들이다. 만약 노동자들의 정당이 있다면 계급투쟁에서 정치성을 제거하고 그것을 통제하기도 훨씬 쉬워질 것이다.
바로 이런 경험 때문에 그들은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당을 너무 온건하게 변화시켜 노동자들의 기대를 모으지 못한다면 제 구실을 할 수 없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 민주노동당이 자본주의에 대한 노동자들의 불만과 저항을 표현하지 못한다면 그 저항을 체제의 틀 안에 가둬두기도 어려울 것이다.
현장의 직접적인 압력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민주노동당 지도부와는 달리, 가까이서 노동자 대중을 다뤄야 하는 노동조합 상근 간부층의 일부는 지금 같은 위기 상황에서 민주노동당이 오른쪽으로 너무 멀리 나아가는 것의 위험성을 우려할 만하다.
몇 가지 쟁점
민주노동당이 새 강령을 채택한 것의 의미와 이를 둘러싼 견해 차이를 곱씹는 것은 패배한 투쟁의 아쉬움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은 아니다. 새로운 통합 진보 정당이 (민주노동당 기존 강령 수준의) 좌파적 강령을 채택하도록 더 잘 투쟁하기 위해서다.
사실, 다함께는 민주노동당 강령 ‘개정’ 반대 운동을 면밀하고 수미일관한 분석에 기초해 치밀하게 전개하지 못한 면이 있다. 오류에서 배우면서 분석을 보강해야 할 쟁점을 몇 가지만 꼽아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단지 강령 ‘개정’이 아니라 기존 강령을 버리고 새 강령을 채택하고자 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식했어야 했다. 한두 구절의 문제가 아니라 강령 전체가 동맹 대상인 자본가 계급 정당들이 용인할 수 있는 수준으로 하향 조정됐기 때문이다. 이 점이 명확하지 않다 보니 때에 따라서는 다함께가 마치 특정 구절 삭제만을 문제 삼는 듯한 인상을 풍겼고(심지어 운동 과정에서 이런 명시적 표현도 사용됐다), 상징적 문구 하나(예를 들어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을 계승 발전”)를 되살리면 새 강령을 인정해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내부에서 자라났다.
둘째, 강령의 성격이 어떻게 변한 것인지 정확하게 규명했어야 했다(좌파적 사회민주주의 강령에서 진보적 민주주의 강령으로). 민주노동당의 기존 강령을 사회주의 강령으로 보거나 새 강령을 NL계열의 스탈린주의 강령으로 보는 관점이 뒤섞여 있다 보니 인식상의 혼란과 모호함이 있었다.(이런 혼란은 다함께가 발행한 소책자 《왜 “사회주의” 구절 삭제를 반대하는가》에 잘 드러나 있다.)
셋째, 민주노동당의 기존 강령이 사회주의 강령이 아님에도 사회주의자들이 강령 ‘개정’을 반대하고 기존 강령을 방어하는 일의 의의를 명확하게 이해했어야 했다. 이 점이 불분명하거나 모호하다 보니 자기중심적인 논리들을 앞세운 나머지, 그만 기존 강령을 다양한 이유에서 방어하는 세력들을 충분히 규합하지 못했다.
민주노동당 강령 후퇴는 이데올로기적 지형을 우경화시키므로 전투적 노동운동에 악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좌파의 입지를 축소시킨다는 점도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옛 것이든 새 것이든 모두 개혁주의 강령인데 굳이 기존 강령을 방어할 의미가 있느냐거나, 민주노동당은 이미 새 강령대로 실천해 오지 않았느냐거나, 민주노동당의 우경화가 좌파에게 좋은 기회를 제공하는 것 아니냐며 오불관언하는 태도의 약점도 제대로 찌를 수 있다.
여기서 더 많은 쟁점들을 다루기는 어렵다. 그러나 새로운 통합 진보 정당의 강령 제정에 심각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지난 투쟁의 과오를 곱씹으며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