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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회의 성격과 모순

이 글은 최근 다함께 학생 회원들의 토론회에서 최일붕 다함께 운영위원이 발표한 내용중 학생회의 성격과 모순을 지적한 부분을 정리한 것이다. 이 글이 서울대 점거 투쟁 등 최근 학생 투쟁들을 평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해 게재한다.

학생회는 여전히 유용한 조직 형태다. 우선, 학생회는 제도권의 일부라는 점과 그 공식적 성격 덕분에 여전히 학생 대중이 접근하기 쉬운 조직이다. 등록금 투쟁 등 여러 운동이 학생회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투쟁에서 학생회들이 부적절한 모습을 보여 줄 때가 있지만 학생들이 학생회 자체를 통째로 배격하는 일은 없었다.

또한, 제도권의 공식 기구인 덕분에 학생회에는 합법적 명분이 있다. 물론 ‘합법’이라 해서 지배자들이 다 용인하는 건 결코 아닐지라도, 학생회의 결정은 학교 당국도 간단히 무시하기 힘들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학생회는 운동 단체의 성격과 복지(봉사) 제공자의 성격을 다 갖고 있기 때문에 모순적이다. 이 두 가지 성격 중 복지 제공자의 성격이 학생회의 어젠다에서나 대중의 인식에서나 모두 학생회의 대표성을 압도하기 쉽다. 가령 학외 민중 투쟁 지지가 중요할 때는 물론이거니와, 학내 투쟁이 당면하고 중요한 때조차 학생회는 축제 등 학내 행사 조직에 더 신경쓰는 게 한 사례다.

만약 학생회 집행부가 자신을 주로 봉사·복지 제공자로 여긴다면 그 기구는 학교 당국에 맞서 학생들을 대표하는 게 아니라, 복지를 제공받기 위해 학교 당국의 파트너 구실을 하고 싶어 하게 될 것이다. 자신의 성격을 복지 제공자로 규정하는 학생회는 최악의 경우 몇 년 전 우파 주도 외대 총학생회처럼 교직원 노동조건 문제를 학생복지 문제와 대립시켜 노동자 투쟁을 반대하는 지경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다. 종종 대학 당국들이 직원 임금 문제와 학생 등록금 문제를 서로 대립시켜 설명해 학생과 노동자를 이간하려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복지 제공자 자임 학생회의 약점을 노린 전술이다.

그러나 많은 학생회들이 정의보다는 자선과 구호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을지라도 우리는 학생회의 공식 구조가 학생 급진화·정치화의 부산물임을 알아야 한다. 물론 팔삭둥이 같은 부산물이다. 행상처럼 잡다한 공약을 남발하고 베끼는 학생회 선거, 공작 정치가 난무하는 조직, 지리멸렬하고 유치한 논쟁 등이 유력한 특징인 부산물 말이다. 하지만 그런 구조물에도 틈새가 있어, 좌파가 그것을 비집고 들어가 좌파의 민주적 공간을 만들 수 있다. 그 민주적 공간은 지금은 비좁은 틈새이지만 학생운동이 대규모로 분출하면 그 안에서 좌파 연합을 구축할 수 있고 대규모 노동자 투쟁과 연결되기에 충분한 공간이 열릴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가능하면 학생회 안팎 모두에서 조직해야 한다. 가령 시위나 노동자 파업 지지 동의안을 통과시켜 학생회들에 만연한 비정치적인 분위기에 균열을 내고, 그럼으로써 급진적 의견을 더 넓은 잠재적 경청자 층에 전달해야 한다.

일부 좌파 학생 단체들이 학생회라는 조직을 신주단지 모시듯이 하는 데엔 그들의 제도권 과잉 존중과 함께 대의 제도 과잉 존중도 작용했다.

그들은 비상학생총회라는 직접민주주의 방식을 학생회라는 대의 제도의 순전한 보조물로만 여겼다. 그래서 언제나 논의를 중앙운영위원회나 전학대회의 틀 안에만 한정지으려 애썼고, 심지어 비상총회의 결정 사항을 무시하거나 보통 학생들의 비상총회 소집 요구를 무시하면서까지 그랬다.

이렇게 학생회 대의기구 중심으로 투쟁을 운영하는 것이 올해 서울대, 고려대, 이화여대 등에서 투쟁의 진전을 가로막은 중요한 원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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