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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점거 투쟁이 보여 준 교훈과 과제

서울대 학생들의 본부 점거 투쟁이 아쉽게도 6월 26일 해제됐다. 학교 당국과 총학생회는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협의체를 구성”하고, 내년 등록금을 동결하기로 하며 점거를 정리했다.

지난 28일간 점거 투쟁이 던진 파장은 결코 작지 않다.

2천3백 명이 모인 총회에서 민주적으로 결정된 점거 투쟁은 놀라운 활력과 능동성 속에서 유지됐다. 모금과 물품 지원도 1천5백만 원 넘게 되는 등 사회적 지지도 받았다.

6월 11일 국공립대 법인화 중단을 위한 교육주체 공동행동 본부 점거에 열의있게 참가한 사람들로 점거위원회를 구성해야 했다.

무엇보다 이 투쟁은 법인화가 대세처럼 여겨지던 분위기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본부 점거 기간 동안 경북대가 법인화 추진을 중단했고 부산대도 법인화를 반대하는 총장이 당선했다.

그럼에도, 한 달 가까이 점거장을 열의있게 지켰던 많은 학생들은 설립준비위원회(이하 설준위)를 해체하지 못하고 점거를 풀어야 하는 아쉬움에 눈물을 흘렸다.

설준위를 해체할 수 없다고 강경하게 버티는 학교에 맞서 법인화를 중단시키려면 끈질기게 투쟁을 유지했어야 했다.

그런데 학교와 학생들의 대립이 격해지자 민주당은 부적절한 타협을 중재하려 했다. 〈한겨레〉도 민주당의 타협안을 학생들의 요구인 양 보도하며 은근히 타협을 부추겼다.

이런 상황에서 총학생회는 안타깝게도 투쟁을 확대하려 하기보다는 학교와의 협상에 말려들어 갔다.

동력

한 서울대 한기연 활동가는 6월 중순에 좀더 많은 학우들이 함께 할 수 있도록 이런 저런 사업을 제안했는데 총학생회가 “그런 사업을 진행할 동력이 없다”며 거절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총운위에서는 “이미 본부와의 협상 여부를 논의”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자 점거 농성장을 떠나는 학생들이 생겼다.

총학생회와 다수 단과대 학생회장들은 “동력”이 줄어서 힘들다고 말했지만, 오히려 학교와의 협상에 치중한 것이 동력을 갉아먹은 것이다.

총학생회와 다수 단과대 학생회장들은 “설준위 해체를 결정할 수 있는 곳은 본부가 아니라 국회”라며 대 국회 투쟁에 집중하자고 했다.

물론 국회에서 법인화 법을 폐기시키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공을 국회로 넘기며 학교에 맞선 투쟁을 회피하는 핑계가 된 것이다. 서울대 본부는 엄연히 설준위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당사자인데 말이다.

더구나 본부 점거를 유지하고 학교 당국에 맞서 힘있게 싸울 때 대 국회 투쟁도 더 효과적으로 벌일 수 있었다. 이미 지난해 법인화 법 폐기 안건이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논의도 되지 않다가 점거가 벌어지자 논의가 시작된 사실이 이를 보여 준다.

서울대 총학생회는 좌파인 전국학생행진(이하 행진) 경향 활동가들이 주도하고 있다. 진지하게 대학 기업화를 반대해 왔던 행진 활동가들이 왜 이런 태도를 취했을까?

학생들의 의식을 비관적으로 보는 경향이 한 요소였던 것 같다.

실제로 총학생회 활동가들은 총회가 성사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고, 총회 성사 후에도 곧 동력이 줄어들 테니 “출구전략”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고 한다.

법인화 반대 투쟁에 대한 혼란된 생각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올해 초 행진은 법인화 법 폐기는 “‘결과에 대한 투쟁’에 머무를 뿐, ‘원인에 대한 투쟁’이 아니기 때문”에 “한계적”이라는 입장을 낸 바 있다.

학생회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요인은 행진이 학생회라는 틀에 얽매여 대다수 학생회장들이 동의하는 수준으로 투쟁을 벌여야 한다는 전제를 강하게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예컨대 이번 점거 투쟁에는 학생회 활동가가 아닌 학생도 열의있게 참가했다. 이들은 자신을 ‘원자’라고 불렀는데, 마지막까지도 30여 명의 ‘원자’들은 본부를 지켰다. 하지만 이들은 총운위가 학교 측과 협상을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고, 점거 유지 여부에 대한 결정권도 갖지 못했다.

점거 농성자 전체 토론에서는 점거 유지 의견이 더 많았지만, 전학대회에서 점거 해제가 결정됐다.

“점거를 계속하시는 분들이 오히려 ‘우리는 의지도 동력도 있다, 점거 계속하자’고 외치고 있고 밖에서 오신 분들이 ‘아니다 너네 힘들어하는 것 같다, 그만해라’고 하는 별 희한한 상황이 벌여졌죠.”(점거에 참가한 학생이 게시판에 올린 글)

한 학생은 게시판에 “화가 나는 것은, 일부 대의원들은 자신이 싸우기 싫단 이유로, 타인의 싸울 권리마저 박탈했다는 것입니다” 하고 올렸다.

전학대회에서 한 대의원은 이렇게 말하면서 점거 해제를 주장했다.

“학생회는 단순히 투쟁만 하는 단체는 아니다. 복지를 위해 힘써야 하는 것도 있다. 점거 상황 때문에 학생회가 제대로 돌아가지 못해서 저희 사범대 같은 경우에는 체육대회나 농촌봉사활동 등이 미진하다.”

실제로 요즘 학생회는 운동 단체의 성격과 복지 제공자의 성격을 다 갖고 있다. 두 가지 중 복지 제공자의 성격이 학생회 활동을 압도하기 쉽다.

또 학생회는 일상적인 시기에 평균적인 학생들의 의식을 반영해 선출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학생들이 투쟁을 통해 급진화가 됐을 때 그런 의식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벌어진다.

따라서 만약 학생회가 투쟁을 제대로 이끌지 못한다면 독자적인 투쟁 기구를 꾸릴 필요가 있다. 학생회가 투쟁을 열의있게 이끌 때도 능동적인 학생들을 포괄하는 더 개방적인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

올해 고려대에서도 총장실 점거를 처음부터 지지하지 않았던 중앙운영위원들이 2차 총회를 불과 며칠 앞두고 점거를 중단시킨 바 있다. 이화여대와 한국외대에서도 중앙운영위원회는 총회에서 모인 학생들의 뜻을 제대로 대변하지 않고 투쟁을 접는 구실을 했다.

반대로, 지난해 영국에서 등록금을 세 배 인상하려는 정부 정책에 맞서 점거위원회를 구성해 성공적으로 점거를 주도한 것은 학생회가 아니라 점거가 필요하다고 여기는 학생들이었다.

이번 서울대 점거 투쟁에서도 투쟁에 실질적으로 참가하는 사람들로 점거위원회가 구성될 필요가 있었다.

행진 활동가 등 이 투쟁의 승리를 바랬던 투사들은 학생회 틀에 자신을 제한하지 말고 이런 방향으로 운동을 전진시키려고 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이 투쟁의 초반에 나타났던 정치와 조직에 대한 자율주의적 거부감을 약화시키며 왜 급진적 정치와 조직이 운동의 발전에 필요한지 입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서울대 법인화 중단을 위한 투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최영찬 서울대 교수(농경제사회학부)는 이렇게 말했다.

“점거를 한 학생들 정말 많이 배웠을 것입니다. 학생들이 어떤 결정을 하던 법인화 반대 투쟁은 계속할 것입니다. 이명박은 후반으로 갈수록 위기가 커질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법인화 법을 뒤집을 수 있습니다.”

학생들은 전학대회에서 6월에 대 국회 투쟁을 벌이고, 9월 개강 총회, 동맹휴업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번 투쟁의 경험을 잘 일반화해 혹시 있을지 모르는 학교의 보복에 대응하며 법인화 법 폐기 투쟁을 이어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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