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우리는 왜 이슬람을 혐오할까?》(김동문, 선율):
기독교 목사가 들려 주는 이슬람 혐오 반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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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난민 500여 명이 예멘에서 제주도로 입국해 한국 정부에 난민 지위를 신청했다. 우익들은 난민 배척 선동을 계속하고 있다.
난민 배척 선동의 가장 큰 근거가 바로 ‘이슬람 혐오’이다. 이슬람교에 대한 온갖 악선동이 난무하고 있다. 악선동을 노골적으로 퍼뜨리는 우익이 아닐지라도, 이슬람교에 대해 여러 의심을 하는 사람들이 예멘 난민들을 수용하는 데서도 반대 목소리를 내는 듯하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왜 이슬람을 혐오할까?》는 난민을 환영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지금 읽기 좋은 책이다. 저자는 여러 아랍 나라에서 25년 넘게 거주한 개신교 목사이다. 이렇게 흔치 않은 배경과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다.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이슬람교도 획일체가 아니라는 점을 아는 게 중요하다. 저자도 무슬림의 범위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넓다는 것을 지적하며 책을 시작한다. “무슬림 집안에서 태어난 구성원들은 날 때부터 저절로 무슬림”이 되며, 법적으로도 무슬림이다. 그렇기에 이슬람 신앙에 무관심할지라도, 심지어 무신론자일지라도 무슬림일 수 있다. 따라서 개신교 우익의 과장과 달리, 무슬림 인구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수치에도 허수가 많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이슬람교의 다섯 가지 기본 의무를 모두 실천하는 무슬림도 많지 않다.
이슬람교는 폭력적이라는 주장도 저자는 설득력 있게 반박한다. 이슬람 혐오론자들 중에서는 간혹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모든 무슬림이 테러리스트는 아니다. 그렇지만 테러 사건 대부분이 무슬림에 의해 자행되고 있다.” 얼핏 그럴 듯해 보이지만, 저자의 지적대로 “인종혐오의 표출일 뿐”이다. 1970년에서 2012년까지 미국에서 벌어진 테러 2400건 중 60건만이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저지른 것이었고, 2011년부터 2015년 사이 유럽연합에서 일어난 테러 중 2퍼센트만이 종교적 극단주의자들이 저지른 테러였다.
이슬람교는 그 자체로 여성 차별적이라는 주장도 옳지 않다. 여성 할례는 이슬람교가 아니라 아프리카의 오래된 악습이며, 대다수 이슬람 법학자들은 이를 금지한다. ‘집단 강간 놀이’라고 소개되는 ‘타하루시(가마이)’는 실은 집단 따돌림, 성희롱이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단어이며 이슬람 국가 그 어느 곳에서도 성폭행이 문화나 유행으로 자리 잡고 있지 않다. 히잡 착용은 무슬림 사이에서 다양한 의견이 있고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며, 모든 무슬림이 여성의 히잡 착용을 무슬림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그 외에도 저자는 한국에서 개신교 우익을 중심으로 퍼져 있는 여러 ‘이슬람 괴담’을 세세히 반박한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면 이슬람 혐오가 도대체 왜 퍼지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이슬람 혐오는 유럽과 북미 등 여러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더 강력하게 퍼져 있다. 서방이 중동과 북아프리카 등지에서 벌여 온 제국주의 정책을 정당화하고, 오늘날 경제 위기의 속죄양을 만들고, 노동계급을 이간질하기 위해서 이슬람 혐오가 체계적으로 유포됐기 때문이다. 저자는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 이라크 긴급 지원 활동을 하고 미국의 이라크 전쟁의 명분이 거짓이라고 폭로하는 책을 펴냈다. 그래서 이슬람 혐오와 제국주의의 상관성을 알 듯한데, 이 책에는 그런 얘기가 없어 조금 아쉽다.
그러나 저자의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세밀한 이야기를 전하는 면에서, 이 책은 이슬람 혐오에 반대하는 논리를 탄탄하게 쌓을 수 있는 유익한 책이다. 이슬람 혐오에 맞서 예멘 난민들을 옹호하고 그들을 환영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이 꼭 읽어 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