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 억류 루렌도 가족 항소심 재판:
“국경 수비” 운운하며 난민 배척 정당화하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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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은 침략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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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9일 200일 넘게 공항에 갇혀 있는 난민 루렌도 가족의 항소심 1차 재판이 열렸다.
루렌도 가족은 지난해 12월 인천공항에 도착해 난민 신청을 했지만, 인천공항출입국 측은 루렌도 가족에게 난민인정심사 불회부 결정을 내려 난민인정심사 기회를 박탈하고 입국을 불허했다.
1심 재판 과정을 통해 한 가족의 운명이 걸린 이 중요한 결정이 얼마나 졸속적으로 이뤄졌는지가 드러났다. 또한 루렌도 가족의 난민 신청이 ‘명백히 이유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는 인천공항출입국 측의 처분이 루렌도 가족이 앙골라에서 겪은 박해와 폭력을 완전히 무시한 것이었음도 드러났다. 그런데도 1심 재판부는 진실을 외면하며 인천공항출입국 측의 손을 들어 줬다. 강제 출국 위기에 처한 루렌도 가족은 곧장 항소했다.
오늘 열린 항소심 1차 재판에서 루렌도 가족의 공동법률대리인 이상현 변호사(사단법인 두루)는 앙골라 현지에서의 콩고 출신자들에 대한 박해와 차별 여부를 유엔난민기구가 확인하도록 재판부에 요청했고, 이 요구가 받아들여졌다. 1심 재판부는 루렌도 가족이 앙골라에서 받은 박해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정당한지 확인해 보자는 것이다. 또한 인천공항출입국 측이 어떤 근거로 불회부 처분을 했는지 처분 근거를 담은 심사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 1심 재판부가 심사보고서 제출을 명령했지만 인천공항출입국 측은 어떠한 명분도 없이 이를 제출하지 않았다.
나아가 이상현 변호사는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해서 난민에게 정식 난민 심사 기회조차 부여하지 않을 수 있는 출입국항에서의 난민인정 회부 심사 제도에 대해 근본적 문제제기를 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국경 수비대”?
법정에서 인천공항출입국 측은 또 “국경 수비대” 운운하며 인종차별적이고 비인도적인 난민 배척 조처들을 정당화해 방청인들을 분노케 했다.
인천공항출입국 측은 출입국항에서 난민 신청 권리를 제한하지 않으면 누구든 난민 신청을 해 “국경 수비에 큰 타격을 준다”면서 난민심사 회부에 대한 판단은 “개개 사건”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사건의 파급 효과”를 고려한다고 말했다. 이는 결국 행정의 고려사항이 살기 위해 타국의 문을 두드리는 절박한 난민들의 상황이 아니라 난민을 얼마나 적게 받을 수 있는지라는 말이었다. 이것은 루렌도 가족의 상징성을 따져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국경 수비대”라는 말 자체가 난민에 대한 이 정부의 인식이 매우 인종차별적임이 드러난다. 난민이 무슨 침략자라도 된다는 말인가. 난민이 범죄자이거나 나라의 부를 침범하는 존재라는 지독한 편견에 기초한 주장이었다. 그러나 난민은 그저 전쟁이나 가난, 모진 박해 등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발버둥치는 사람들일 뿐이다.
결국 인천공항출입국 측이 “국경 수비” 운운한 것은 같은 법리적 시시비비를 떠나 자본주의 국가기관으로서 자본주의 국가 운영을 무엇보다 우선하라는 경고 메세지를 법원에게 보낸 것이다.
재판 뒤에 열린 기자회견(난민과함께공동행동 주최)에서 한국디아코니아 홍주민 목사는 출입국 측의 “국경 수비대” 운운이 “망상”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홍주민 목사는 출입국 측이 “조작도 서슴지 않는다”고 폭로했다. 1심에서 출입국 측은 집주인이 ‘루렌도 씨가 한국에 가고 싶다는 말을 했었다’고 앙골라 대사관에 증언했다며 루렌도 씨가 ‘경제적 목적’의 가짜 난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루렌도 가족 변호인들은 그런 말을 한 적 없다는 집주인의 증언을 확보해 법원에 제출했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이주가 비난받아서는 안 되지만, 이 사례는 한국 정부가 난민을 내치기 위해 거짓도 서슴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 주는 것이다.
가족의 삶을 갉아먹는 공항 노숙
한편, 기자회견에서는 200일 동안의 공항 노숙 생활로 루렌도 가족이 매우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음이 지적됐다.
루렌도 가족을 꾸준히 진료해 온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의 최규진 인권위원장은 “루렌도 씨는 고혈압이 매우 심각한 상황이고 바체테 씨는 녹내장과 위염이 매우 심각하다”면서 “뇌졸중이나 실명, 장천공 등이 지금 당장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또한 최근 아이들이 부모에게 “우리들이 공항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것이냐”고 물었다는 이야기를 하며 아이들의 마음이 공포에 질려 있고, “이런 [억류] 상황이 지속되는 한 의학을 아무리 동원하더라도 이들의 건강 상태를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아동인권센터 정병수 사무국장은 정부의 아동 정책의 모순을 지적했다. “지금 대한민국은 모든 아동을 위한 포용국가 아동 정책을 이야기한다. 대한민국이 비준한 국제아동권리협약에서는 모든 아동을, 즉 국민만이 아니라 잠시 지나가는 아이들의 인권조차도 국가는 보호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루렌도 부부의] 아이들은 지금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들을 박탈당하고 있다.”
루렌도 가족의 항소심을 앞두고 여러 이주·난민단체들뿐 아니라 민주노총, 녹색당, 민중당 인권위원회와 같은 노동·진보 정당들과 4대 종단의 여러 종교 단체들이 포함된 40여 곳이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항소심 재판부가 1심 판결의 문제점을 바로 잡아 루렌도 가족이 끔찍한 공항생활에서 벗어나서 난민심사 기회를 보장받을 수 있기를 촉구했다. 다음 재판은 8월 23일에 열린다.
루렌도 가족이 하루빨리 공항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 재판부는 루렌도 가족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난민심사 불회부 결정 취소 판결을 내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