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희망의 버스’:
정부와 우파의 공세를 뚫고 1만여 명이 결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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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버스’가 전국적 정치 의제로 뜨겁게 부상했다.
7월 30일과 31일 열린 3차 ‘희망의 버스’는 이명박 정부의 정치 공세·탄압 속에서도 자그마치 1만여 명 가까운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휴가철인데 누가 가겠냐고 걱정”들도 많았지만, “‘희망의 버스’ 출발지는 오히려 더 늘었다.”(송경동 시인)
경제 위기 고통전가에 대한 광범한 불만은 ‘희망의 버스’로 결집했다. 〈조선일보〉조차 말했듯이 “집회 현장은 각종 피켓들의 백화점”이었고, “국내 사회 문제나 불만이 총 망라”했다.
많은 노동자들은 “희망의 버스가 이겨야 우리가 이긴다”는 심정으로 휴가를 반납하고 부산으로 달려 왔다. 사회단체·정당 활동가들은 물론, 학생·장애인·성소수자·종교계·학계 등도 연대의 꽃을 피웠다. 개인적으로 가족·친구 들과 함께 참가한 이들도 있었다.
보수 언론들은 경찰과 우파 단체가 ‘희망의 버스’에 “제동을 걸었다”고 말했지만, 이들은 결코 ‘희망의 버스’를 제압하지 못했다. 참가자들은 “계엄”을 방불케하는 경찰 탄압과, 영도 진입로를 점거하고 각목까지 휘두른 ‘어버이연합’의 폭력 속에서도 85호 크레인에서 가까운 수변 공원에 모였다.
많은 사람들이 경찰 차벽과 불심검문 등을 피해 시내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한두 시간을 걷고 또 걸었다. 일부는 작은 산 하나 만한 언덕을 넘어야만 했다. 그렇게 해서 새벽까지 5천여 명이나 수변 공원에 집결했다. 이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경찰 탄압은 연대 투쟁에 대한 열정을 결코 꺾지 못했다.
오히려 대중의 분노와 연대에 겁을 먹은 것은 이명박 정부였다. 정부와 우파들은 3차 ‘희망의 버스’를 막으려고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정부와 보수 언론은 “훼방 버스”, “절망 버스”, “외부 세력” 운운하며 비난을 퍼부었지만, 지지 여론이 꺾일 줄 모르고 커지고 국제적 관심까지 확대됐다. 이 때문에 정부는 시커먼 “바퀴벌레” 같은 경찰 병력을 내세워 시위대를 가로막았다. 더 많은 인력을 수해 복구에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1백 개 중대의 전경과 수백 대의 경찰 버스를 투입해 영도 일대를 완전히 차단했다. 심지어는 시내버스 운행까지 통제했다.
이들은 “불법 시위는 안 된다”더니 도로를 점거한 보수 단체의 집회와 폭력은 수수방관했다. 그리고는 3차 ‘희망의 버스’가 끝나기 무섭게 ‘희망 단식단’ 농성장도 강제 철거했다. 탄압으로 진보 대중의 자신감을 억누르려고 애쓰고 있는 것이다.
레임덕
그러나 세 번이나 성공적으로 계속된 ‘희망의 버스’는 여전히 이명박 정부와 보수 세력들을 초조하게 만들고 있다. 저들의 탄압은 오히려 정부의 위기감 수준을 반영할 뿐이다.
한나라당 김무성이 “김진숙을 끌어내리라”며 “대통령의 임기말 레임덕을 조장하려는 불순 세력의 불법 행동”을 저주한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정부·우파들의 압력에 밀려 “‘투쟁 노선’에 치우”쳐선 안 되고 “다양한 계층을 아울러”서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손학규는 자본가들의 눈치를 보는 민주당의 한계만을 보여 줄 뿐이다. 3차 ‘희망의 버스’ 직후 일부에선 노사정 위원회 등을 통한 ‘중재’ 얘기도 나오고 있지만, 이것은 정리해고를 철회시킬 효과적 방법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 지배자들이 두려워하는 핵심, 즉 투쟁을 더 밀어붙이고 조직 노동자들의 실질적 단결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2차 ‘희망의 버스’에 이어 이번에도 참가자 조직에 온 힘을 쏟지 않은 민주노총·금속노조 지도부는 매우 유감이다. 이들은 대한문에서 단식 농성을 벌였지만, 이것을 실질적인 참가 조직으로 연결시키지 않았다. 그러니 지도부의 단식 농성이 “면피용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는 것이다.
그럼에도 적잖은 노동자들은 노조의 깃발을 들고, 혹은 개별적으로라도 부산을 찾았다. 이들은 ‘희망의 버스’를 통해 기층의 연대 투쟁 열망을 보여 주고 있다. 정말이지, 조직 노동자들의 참가를 늘리고 운동의 힘을 강화해야 한다. 이것은 ‘희망의 버스’가 진지하게 추구해야 할 핵심 과제 중 하나다.
한편, ‘희망의 버스’ 기획단이 좀 더 집중적인 방식으로 시위를 계획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남는다. 경찰의 무차별 탄압이 이어져 어려움이 있기는 했지만, 수변 공원에서 자리를 확보할 대열을 제외한 나머지를 모두 결집시켜 부산 시내에서 대규모 행진을 벌였다면 참가자들의 사기도 더 고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3차 ‘희망의 버스’는 성공적이었다.
이것은 민주노총 지도부에게도 상당한 압력과 자극을 줬다. 그래서 민주노총 지도부는 8월 20일에 서울에서 대규모 ‘희망 시국대회’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고, 이것을 4차 ‘희망의 버스’와 연결하자고 제안했다.
만약 이런 제안대로 4차 ‘희망의 버스’가 서울 한 복판에서 조직 노동자들을 포함해 수만 명을 결집한다면, 이 운동의 잠재력은 한층 더 커질 것이다. 진보진영은 지금부터 이런 일을 현실화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