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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진보 정당의 강령은 어떠해야 하는가?

통합 진보 정당 창당 전후로 강령 논의가 진행될 예정이다. 현재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2011년 6월 정책당대회에서 기존 창당 강령을 새 강령으로 교체하여 통합 진보 정당 강령안으로 제출했다. 진보신당도 2008년 창당 과정에서 만든 강령을 약간 수정해 통합 진보 정당 강령안으로 제출했다.

이 논의에 사회주의자들과 반자본주의자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사회민주주의 정당으로서 통합 진보 정당이 급진적 강령을 채택하더라도 당의 지도자들은 그 강령대로 실천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사회주의자들과 반자본주의자들은 통합 진보 정당이 급진적 강령을 채택하도록 애써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미칠 이데올로기적 효과와 그로 인한 정치적 효과, 특히 좌파의 입지 문제나 노동계급의 전투적 행동 고무 여부 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통합 진보 정당의 강령은 어떤 요소들을 갖추어야 하는가? 먼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양당의 지도부들이 각각 제출한 강령안(이하 각각 민주노동당 초안, 진보신당 초안)과 기존 민주노동당 창당 강령(이하 창당강령)을 비교해보자.

반자본주의 지향

전체적으로 봤을 때, 민주노동당 초안과 진보신당 초안은 창당 강령에 비해 급진성이 약화됐다. 몇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먼저 양당이 제출한 두 초안은 창당 강령보다 반자본주의적 어조가 약해졌다.

창당 강령은 전문에 오늘날 노동자·민중이 겪는 고통이 자본주의에서 비롯했다고 밝히고 있고 “자본주의의 질곡을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문뿐 아니라, 각론에서도 현실의 문제점들의 원인을 자본주의에서 찾는 경우가 많다. 물론 분단, 가부장제 등 다른 요소들과 절충적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지만 말이다.

반면, 두 초안에도 “자본주의의 폐해 극복” 등의 표현이 있지만, 강조돼 있지 않고, 각론들과 반자본주의 지향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지도 않다.

그리고 ‘사회주의’ 관련 구절도 약화됐다. 민주노동당 초안은 지난 6월 정책당대회에서 ‘사회주의의 이상과 원칙을 계승하고 국가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오류를 극복하겠다’는 구절을 삭제한 강령안이다. 진보신당 초안에는 “사회주의의 이상을 계승”한다는 구절이 포함돼 있지만, 그렇다고 민주노동당 초안보다 더 좌파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애초 2008년 진보신당의 창당 강령에는 ‘사회주의’ 관련 구절들이 없었다. 2008년 분당은 결코 좌파적 분열이 아니었던 것이다.

진보신당 지도부는 민주노동당 6월 당대회에서 강령 교체에 대한 반발이 거셌던 것을 의식해서 사회주의 구절을 포함시킨 듯 하다.

게다가 여기서 ‘사회주의’란 노동계급의 자기해방으로서의 사회주의가 아니다. 대체로 좌파 사회민주주의 버전을 뜻한다. 창당 강령에 포함됐던 ‘사회주의’ 구절은 강령의 전반적 이데올로기 수준을 표현하는 상징이었다. 그렇다면 진보신당 초안의 ‘사회주의’ 구절은 그런 구실을 하고 있는가?

핵심은 소유 문제

창당 강령의 ‘사회주의’ 요소의 실 내용은 소유 문제를 둘러싼 내용이었다. 창당 강령은 전문에서 “사적 소유권을 제한하고 생산수단을 사회화함으로써 삶에 필수적인 재화와 서비스는 공공의 목적에 따라 생산하도록 한다”고 밝히고 있다.

경제 분야를 다룬 각론에서도 창당 강령은 “소유의 사회화와 사회적 조절을 다양한 소유와 시장적 조절보다 우위에 둠으로써 자본주의적 모순을 해결”한다고 밝히고 있다. “직접 생산자와 생산 대중이 경제를 민주적으로 통제할 것을 보장한다”는 더 급진적 구절도 있다.

즉, 민주노동당 창당 강령은 전반적으로 사적 소유 제한과 공공 소유를 큰 비중으로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초안은 전반적으로 소유 문제를 핵심으로 다루지 않는다. 게다가 “소유구조를 다원화”한다고 밝히고 있는데, 이는 창당 강령에 대면 명백한 후퇴다.

다른 한편, 진보신당 초안은 “독점재벌 중심 경제체제로부터 탈피한다”는 표현이 있지만, 민주노동당 초안과 마찬가지로 그 문제를 소유 문제로 접근하지는 않는다. “연기금에 대한 노동자 민중의 참여”와 “협동조합, 노동자 자주관리 기업, 사회적 기업 등 대안적 소유지배구조를 갖춘 중소기업을 육성”하자는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이 소유 문제를 중시하는 이유는 “사회적 소유” 형식 자체가 중요해서라기보다는, 노동자 투쟁 과정에서 그것이 소유 문제를 제기하는 수준으로 발전하게 되면, 경제에 대한 노동자 통제를 고무하는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보신당 초안이 제시하는 소유 문제 해법은 경제에 대한 노동자 통제를 고무하는 효과를 내기에는 한계가 크다.

‘연기금에 대한 노동자 참여’ 대안은 현장 노동자들을 일종의 연기금 투자자로 정체성을 부여하게 되고 주식이라는 소유 형식에 매달리게 만들기 때문에, 생산 현장에서 비롯하는 노동계급의 파워와 연결할 연계 고리가 약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소유권에 도전하는 주체는 현장 노동자들이 아니라 ‘연기금 투자자’들의 대표 격인 노동조합 관료들이기 쉽다.

반제국주의 투쟁

제국주의 문제를 보자. 창당 강령과 민주노동당 초안에는 반제국주의 투쟁이 강조돼 있지만, 진보신당 초안은 이 점이 미온적이다. 무엇보다 진보신당 초안에는 제국주의라는 단어 자체가 없고, 평화라는 단어로 대체돼 있다. 사회주의자들은 평화주의자들과도 함께 전쟁에 반대해 공동으로 투쟁할 수 있지만, 평화주의는 제국주의 문제에서 일관되게 맞서기 어렵다.

한편, 창당 강령과 민주노동당 초안 사이의 차이도 있다. 주한미군 철수와 한반도 평화 체제 사이의 관계 문제다. 창당 강령은 함의적으로 주한미군 철수를 통해 한반도 평화 체제를 구축한다는 입장으로 읽힌다.

반면, 민주노동당 초안은 “남북 군축과 한반도 평화체제 실현을 통해 한미 군사동맹 체제를 해체하고 주한미군을 철수시킨다”며 평화체제 실현 이후에 주한미군을 철수시킨다고 순서를 뒤바꿨다. 그러나 주한미군 철수 전에 평화체제를 수립할 수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여성 쟁점에 대해서 창당 강령은 “여성의 성을 억압하고 소외시키며 상품화하는 모든 가부장적·자본주의적 제도와 가치체계에 맞서 싸운다”고 밝히고 있지만, 민주노동당 초안은 “성에 따른 차별·억압·폭력의 원인인 가부장 제도와 그 가치체계를 철폐”한다고만 돼 있다. 용의주도하게 “상품화”와 “자본주의적”이라는 표현을 삭제한 것이다.

소수자 문제에 대해 상대적으로 진보신당 측이 더 열의가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강령 상으로는 양당의 초안에서 큰 차별성이 드러나지는 않는다. 국가보안법 폐지, 핵발전에 대한 태도, 복지, 교육 등에서는 큰 차이가 드러나지 않고, 대체로 진보 강령으로서 부족함이 없는 내용들이다.

행동 강령

지금까지 비교 결과, 양당이 통합 진보 정당 강령 초안으로 제출한 안들이 창당 강령보다 상대적으로 더 온건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사회주의자들과 반자본주의자들은 통합 진보 정당 강령을 새롭게 작성할 때, 민주노동당 창당 강령의 급진적 요소들이 복원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창당 강령의 반자본주의적 요소조차 그것을 성취하려면 노동계급의 대중 투쟁이 사활적이다.

따라서 통합 진보 정당 강령은 급진적 요소들을 담고 있으되, 현재 노동계급의 투쟁과 연결될 수 있는 요구들을 중심으로 작성돼야 한다. 즉, 노동계급과 진보진영이 광범하게 단결해 투쟁할 수 있는 행동 강령이 돼야 한다.

행동 강령의 요소들 자체는 명시적으로 자본주의를 뛰어넘는 요구가 아닐 수 있다. 노동계급은 당장은 지배계급의 경제위기 고통전가 공격에 맞서 자신들의 삶의 조건을 방어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동시에 노동계급은 이를 위한 투쟁 과정에서 자신들의 힘을 자각하고, 대안적 사회 체제로 나아갈 수 있는 맹아를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행동 강령은 노동계급이 지배계급의 공세에 맞서 삶의 조건을 방어하는 투쟁을 고무하고, 노동자들이 투쟁 과정에서 자본주의적 소유권에 도전하는 전투적 행동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가교를 놓을 수 있는 강령이 돼야 한다. 그래서 임금과 노동조건, 생활조건을 둘러싼 요구들과 기업주들의 소유권에 도전하는 요구들(가령 국유화 요구)을 결합해야 한다.

사회주의자들과 반자본주의자들은 통합 진보 정당 강령이 좌파적 진보 강령이자 실질적인 행동 강령이 될 수 있도록 투쟁해야 한다. 그리고 노동계급과 피억압 대중의 운동 속에서 이런 요구들을 중심으로 투쟁을 일으킬 수 있도록 애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