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당 통합 반대 운동 평가와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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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5일 민주노동당 당대회에서 국민참여당(참여당)과의 통합 안건이 부결됐다. 그리하여 민주노동당 주류 지도부(이른바 ‘당권파’)의 구상에 적잖은 차질이 생겼다.
그 구상을 요약하면, 당 강령의 대폭 후퇴(6월 19일 당대회에서 강령을 완전히 교체했다) → 참여당과의 합당을 통해 몸집 불리기 → 민주당과 선거연합을 해 2012년 총선에서 원내 교섭단체 확보 → 대선에서 민주당과 후보를 단일화해 연립정부 참여라 할 수 있다.
민주노동당의 주요 활동가인 이정훈의 다음 글은 주류 지도부의 구상을 잘 보여 준다(‘진보적 대중정당과 진보적 연합집권전략’).
“[민주노동당은] 여전히 민주노총 일부, 진보적 대중단체, 진보적 지식인 등이 주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주, 민주, 통일을 1차 목표로 한다면, 이런 정당은 노동자 계급뿐 아니라 농민, 청년학생, 지식인, 중산층, 중소상인, 민족자본가 등을 다양한 형태로 포괄[하는] … 연합전선적 대중정당 또는 ‘통일전선적 대중정당’[이 돼야 합니다.]”
“진보대통합 정당의 목표는 운동권 정당을 넘어 과거 민주노동당이 포괄하지 못한 다양한 세력을 포괄하여 집권정당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국민참여당은 물론이고 다양한 개인, 시민단체, 중산층을 과감히 새로운 통합진보정당에 동시에 병행 포괄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가장 적극적인 연합집권전략”을 구사해 “진보개혁 연합정권의 한 축을 담당하여 1단계 개혁의 기관차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구상에 따르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간의 통합 시너지 효과만으로는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없게 된다. “‘도로 민주노동당’이며 운동권 정당을 크게 벗어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민주노동당 ‘당권파’ 지도부가 진보진영 내 강력한 반대를 무릅쓰고 9월 25일 당대회를 강행한 까닭이다.
요컨대, 단순히 ‘당권파’의 음모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전략 문제였던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잘못된 전략이라는 것이다.
진보진영이 이명박 정부에 맞서 불가피한 경우 사안에 따라 부르주아 야당과 전술적 제휴를 맺을 수는 있다. 이때조차 진보정치의 독립성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자면 부르주아 야당의 불철저함과 동요에 대한 비판을 삼가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당권파’는 사안에 따른 전술적 제휴 정도가 아니라 아예 부르주아 정당과 합당을 시도하는 수준으로까지 나아갔다.
그래서 진보대통합의 초점은커녕 대상조차 아니었던 참여당과의 통합 문제 때문에, 진보진영 전체가 여러 달 동안 하지 않아도 될 논쟁과 투쟁을 해야 했다. ‘당권파’의 전략이 진보진영의 단결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의 결과를 낳은 것이다.
다행히도, 민주노총 주요 지도자들과 자민통 내 ‘인천연합’ 계열, 그리고 다함께를 비롯한 당내 좌파 등이 주도한 부결 운동 덕분에 ‘당권파’의 과속 주행에 급제동이 걸렸다(세 세력 말고도 부결 운동에 기여한 사람들이 많지만, 지면 제약상 이 글에서는 주로 세력에 관해 다룰 수밖에 없다).
노동조합 지도자들
민주노총 지도자들은 애초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분립을 극복하려고 진보대통합을 원했다. 진보 양당의 존재와 경쟁으로 말미암아 노동조합의 정치적 분열이 심화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이 진보대통합 논의의 발원지였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런데 민주노동당 ‘당권파’ 지도자들의 참여당과의 통합 기도는 진보 양당의 통합을 심각하게 방해했을 뿐 아니라, 노동조합의 정치적 분열을 가속시켰다. 이런 상황은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조직 보존 논리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었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까딱 잘못했다가는 민주노총이 분열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9월 25일 민주노동당 당대회에서 권영길 의원은 지지 정당별로 편제된 프랑스의 노동조합 상황이 한국에서 재현될 위험성을 경고했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그래서 어떻게든 진보 양당으로의 분열 고착화를 막고자 했다. 이것은 올바른 입장이었다.
반면, 민주노동당 ‘당권파’ 지도자들은 이런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기층 노동조합원들과 신생 노동조합 부문(가령,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참여당과의 통합 찬성 서명 운동을 조직했다. 요컨대, 상층 명망가들과 달리 기층 노동자들은 참여당과의 통합을 찬성한다는 논리를 폈다.
이것은 잘못 설정한 대립 구도였다. 현실의 대립선은 상층 대 기층이 아니었다. 상층과 기층 모두에서 이 쟁점을 놓고 갈렸다.
이것은 역설적이게도 ‘당권파’가 민주노동당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민주노동당을 “민주노총 일부, 진보적 대중단체, 진보적 지식인 등이 주축을 이루”는 “운동권 정당”이라고 보는 시각에 따르면, 민주노동당의 핵심 기반이 민주노총이라는 현실은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민주노총 스스로 민주노동당 창당을 통해 노동자 정치 세력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라는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의 지적과 날카롭게 충돌을 빚는다.
김영훈 위원장의 주장이 맞다.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을 낳았다. 물론 민주노총 현장 조합원들이 이 잉태를 주도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더 정확하게 말하면 민주노총 상근 간부층이 민주노동당의 산모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민주노동당은 노동조합 상근 간부층의 정치적 표현체인 것이다.
그러나 ‘당권파’ 지도자들은 참여당과의 선 통합에 반대하는 민주노총 지도자들의 의견을 무시하듯 질주했다. 이정훈은 이렇게 주장했다.
“민주노총 등 대중단체의 분열을 극복하기 위해 진보신당과의 통합을 강조하는 것은 대단히 의미가 있는 지적이나, 그것은 현재 추진 중인 통합정당 추진 목표의 전부가 아니라 여전히 중요한 일부입니다.”
‘당권파’ 지도자들이 이른바 “통일전선적 대중정당”을 위해 참여당과의 통합을 강하게 추진한 것은 마침내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역린을 건드렸다.
9월 25일 당대회에서 노동조합 지도자들(권영길 의원, 김영훈 위원장, 나순자 보건노조 위원장, 김경자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이 민주노동당 주류 지도부의 구상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며 부결 선동을 했다.
좌파의 구실
다함께는 7월 중순경부터 참여당과의 통합 반대 운동을 시작했다. 다함께의 참여당과의 통합 반대 운동은 6월 당대회 패배로부터 교훈을 이끌어내는 데서 시작했다(다함께가 본격적인 운동을 건설하기 전에 이미 일부 당원들과 민주노동당 밖 활동가들이 이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하고 있었다).
즉, 민주노동당의 성격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그 출발이었다. 6월 당대회에서 강령의 대폭 후퇴를 막지 못한 핵심 원인이 민주노동당의 이데올로기적 측면만 고려해 자민통을 하나의 획일체로 가정하는 오류를 범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질 게 분명하니까 선전이나 제대로 하자’는 생각으로 접근해 결국 ‘자기만족적인’ 패배를 당했다.
그래서 참여당과의 통합 반대 운동은 주의 깊게 동맹을 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민주노총 상근 간부층이 민주노동당의 산모라면 바로 그 노조 지도자들이 참여당과의 통합 문제를 매우 우려할 것이라고 봤다.
노동조합 지도자들 상당수는 노동자 투쟁이 충분히 고양되지 않는 상황을 타개하려면 정치 영역(특히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돌파구가 마련돼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참여당과의 통합은 노동자 투쟁의 정치적 돌파구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노동조합을 분열시킬 위험성이 있었다. 이 점은 시간이 흐를수록, 참여당과의 통합 문제가 현실이 될 개연성이 커질수록 분명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노조 지도자들의 우려가 현실적 힘이 되려면 기층 노조 활동가들의 반대 움직임이 뒷받침돼야 했다. 그래서 다함께는 민주노동당 당원들의 반대 연서명뿐 아니라 주되게 노조 활동가들의 반대 연서명을 조직했던 것이다.
다른 한편, 이번 당대회 결과는 민주노동당이 획일체가 아니라는 점도 보여 줬다. 자민통 내에서도 참여당과의 통합 문제를 놓고 이견이 표출됐기 때문이다.
단계적 통합론(선 진보신당 통합 후 참여당 통합)에 서 있는 쪽이 선 참여당 통합에 반대했다. 특히, 민주노총 지도자들의 반대는 이들의 선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또, 비록 진보신당이 민주노동당과의 통합을 부결시켰지만, 진보신당 통합파가 통합을 향해 고뇌에 찬 행보를 하고 있다는 점도 이들로 하여금 부결로 향하게 하는 요인이 됐다.
전망
민주노동당 ‘당권파’는 당대회에서 패배했음에도 매우 집요하게 참여당과의 통합을 추진할 것 같다. 해방 후 지금까지 민중전선 전략을 전통으로 삼고 있는데다, 참여당까지 포함한 통합 진보 정당을 건설해 선거에 대응하면 꽤 성과를 볼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년 선거에서 진보의 약진을 바라 마지않는다. 그것은 필시 노동계급의 자신감 상승에 좋은 영향을 줄 것이다.
그런데 선거에서 진보가 약진하기 위해서라도 노동자 투쟁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일대 도약을 한 것은 총선 직전에 거대하게 일어난 노무현 탄핵 반대 운동 덕분이었다. 대중 투쟁 덕분에 대중의 의식과 이데올로기가 좌향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자 투쟁 활성화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진보대통합이 이뤄져 선거에 대응해야 한다. 그런데 참여당과의 통합은 적대 계급 간 통합으로서, 계급투쟁에 해악적이다. 그동안 민주노동당은 민주당과의 선거연합을 위해 진보적 요구를 민주당의 그것으로 낮추는 일이 비일비재했는데, 부르주아 정당인 참여당과 통합까지 한다면 오죽하겠는가(6월 당대회에서 참여당과의 통합을 염두에 두며 강령을 대폭 후퇴시킨 바 있다).
그나마 민주노동당 ‘당권파’ 지도부의 과속 우경 주행이 부결 동맹 세력에 의해 급제동이 걸린 것은 노동자 운동에 다행스런 일이다.
일부 좌파들은 ‘어차피 민주노동당은 우경화할 텐데 뭐 하러 애써 막느냐’는 식의 태도를 취하는 것 같은데, 정말이지 계급투쟁의 ABC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우경화가 좌파에게 정치적 공간을 만들어 줄 수 있다는 생각인 듯한데, 그것은 좌파가 효과적인 대안을 대중에 제시할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자동으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런 문제에 오불관언 하는 태도를 취한 좌파에게 대중이 정치적 미래를 맡기겠는가.
게다가 이런 발상은 민주노동당과 참여당의 통합을 진지하게 반대했던 선진 노동자들이 패배할 경우 느낄 낙담과 비통함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심히 종파적이기도 하다.
이런 태도와는 분명하게 선을 그으면서, 우리는 머잖아 재개할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우경 시도에 맞설 대비를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