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퍼센트의 요구: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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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먹튀 자본들의 배를 불려 주는 동안, 우리 쌍용차 노동자 3천여 명이 길거리로 나앉았습니다. 36세의 젊은 동지가 홀어머니를 두고 또 세상을 떠났습니다. 지난 3년간 열일곱 명의 아까운 목숨을 떠나 보냈습니다. 피눈물이 쏟아집니다. 이 망할 놈의 자본 천국이 우리 동지들의 생명을 빨아먹고 있습니다.”(쌍용차지부 양형근 조직실장)
노동자들의 목숨과 삶이 1퍼센트 재벌·부자 들의 돈벌이를 위한 제물로 바쳐지고 있다. 특히 최근 경제 위기 심화는 더 끔찍한 고통이 다가온다는 것을 뜻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 고통의 첫 희생양이 될 수 있다. 2008년 세계경제 위기 직후에도 비정규직, 그중에서도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들이 집중적인 타격을 입었다.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해고자 박현제 조합원은 이렇게 말했다.
“2005년경 노동부 통계로만 현대차 비정규직은 1만 명이 넘었는데, 지금은 6천여 명 정도입니다. 많은 동지들이 해고된 것입니다.
“사측은 몇 년간 최고 수익을 냈는데도 정작 필요한 사회적 책임은 지지 않으려 합니다. 오히려 불법파견 판정을 무시하고 외주화 등을 통해 법망을 피할 길만 찾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이런 “불법”을 방조하고 부추기며 비정규직 확산에 앞장서 왔다.
이명박 정부가 내놓은 일자리 대책이라곤 고작해야 불안정·저질의 일자리뿐이고, 지금도 정부는 “고용 유연성이 근본 대책”이라는 말만 하고 있다. 최근엔 아예 법을 뜯어고쳐 합법적으로 파견 노동자를 더 늘리겠다고 한다.
사내하청
안 그래도 사내하청은 제조업뿐 아니라, 공기업, 병원 등 전 분야에 광범하게 퍼져 ‘나쁜 일자리’의 상징이 됐다. 심지어 양질의 일자리를 책임져야 할 공기업의 사내하청 활용률은 75.8퍼센트로, 민간기업(58퍼센트)보다도 높다.
이 속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시름과 한숨은 깊어지고 있다.
물가는 치솟는데 임금 인상률은 이것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가뜩이나 어려운 형편에 자식 등록금 걱정, 가족 치료비 걱정은 더 커졌다. 그런데도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라”는 최저임금 인상 요구는 자본의 이윤 논리 앞에 무참히 짓밟혔다. 이명박 정부 들어 최저임금 인상률은 계속 낮아져, “최저임금이 아니라 최악 임금”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게다가 이 쥐꼬리만 한 최저임금조차 못 받는 이들이 임노동자의 12퍼센트나 되고, 정부 부문에서조차 10만 명에 이른다.
냉혈한 같은 정부와 자본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이런 고통에 맞서 저항하면 무자비하게 짓밟아 왔다.
지난해 25일간의 점거파업 이후 공장 출입도 가로막힌 채 생활고에 허덕이는 현대차 비정규직 해고자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 자살 충돌을 느낀다”고 호소한다. 노조를 만들어 투쟁에 나선 대학·병원 청소 노동자들은 노조 파괴 공작과 수천만 원 ‘벌금 폭탄’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이 보여 준 강력한 힘과 사회적 지지가 확대되는 것을 차단하려는 것이다.
일각에선 기업주·정부가 아니라 정규직에게 문제의 책임을 돌리는 주장이 있다.
예컨대, 사회디자인연구소 김대호 소장은 “파이를 나눌 때 힘 있는 존재(정규직)가 많이 떼어 가면 나머지(비정규직)는 적게 가져간다”며 정규직의 임금·복지 양보를 촉구한다.
이런 주장이 힘을 얻는 것은 지난 수년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가 늘어나고, 적잖은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투쟁에 소홀한 탓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현실이 정규직 양보론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파이에서 가장 큰 몫을 가져가는 것은 바로 기업주들이고, 지난 수년간 바로 이들의 몫이 커져 왔다. 전체 국민소득에서 노동 몫을 뜻하는 노동소득분배율은 1996년 63퍼센트에서 지난해 52.5퍼센트까지 떨어졌고, 지난 3년간 정규직·비정규직 모두의 실질임금이 동반 하락했다.
정규직 노동자들조차 자신의 임금·노동조건을 제대로 방어하지 못하는 동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통은 더 커졌던 것이다. 이것은 정규직 양보가 아니라, 정규직 연대 투쟁의 필요성을 보여 준다.
파이
사내하청 확산의 주범인 재벌들은 지난 몇 년간 사상 최고의 높은 수익을 구가해 왔다. 삼성·현대 등 재벌그룹 주요 계열사들은 수조 원씩 수익을 내면서도 최고 70퍼센트가 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고용했다.
이 속에서 비정규직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경제 위기의 고통을 표현하는 대명사가 됐고, 대중적 불만의 초점이 됐다. 〈한겨레〉가 ‘1퍼센트에 맞선 99퍼센트 운동’의 한국판 요구를 “비정규직 철폐”로 규정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근래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앞다퉈 비정규직 대책을 내놓은 것도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보여 준다.
‘비정규직 철폐’ 요구는 ‘희망버스’에서도 주요 요구였고, ‘99퍼센트 저항’ 운동에도 이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2차 비정규직 없는 공장 만들기 희망버스의 종착점은 22일 서울 시청 광장이다. 우리 99퍼센트가 모여 저들 1퍼센트에 대항해 하나가 되자. 희망으로 세상을 점령하자.”(김소연 기륭전자 분회장)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향한 전진 공동조직위원회’는 최근 비정규직 투쟁 대장정을 선언했다. 이것이 성공하려면 ‘희망버스’처럼 정치적 투쟁과 강력한 연대를 결합시켜야 하며 민주노총으로 대변되는 조직 노동조합운동이 이런 운동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이런 대중행동은 내년 선거를 앞두고 더 확대될 비정규 대책 논의에서도 운동의 요구를 강제할 수 있는 동력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