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반대 투쟁 ─ 평가와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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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반대 운동이 성장하면서 그동안 원내에서 한미FTA 반대 투쟁의 선두에 있던 민주노동당이 큰 지지를 받고 있다. 그동안 불필요한 타협으로 비판받던 민주당도 장외 투쟁에 나섰다. 심지어 정동영, 천정배 등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전면적인 투쟁’을 선동하고 있다.
반대로 한나라당은 자중지란에 빠진 듯 하다. 이명박의 레임덕은 심화하고 한나라당에서는 분열이 깊어지고 있다. 비준안 처리의 1차 관문을 맡고 있는 남경필을 비롯해 한나라당 의원 25명이 이명박의 대국민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고, 청와대 관계자는 “적을 눈앞에 두고 뭐하는 짓이냐”며 한탄했다. 당대표 홍준표는 당사를 없애고 ‘천막 당사 정신’으로 돌아가겠다고 ‘쇄신’ 쇼를 하고 있지만 냉소와 비아냥만 쏟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이명박과 한나라당은 언제든지 직권상정과 날치기를 시도할 수 있다. 경제 위기 상황에서 그들의 핵심 기반인 재벌·부자 들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기 때문에 내년 선거에서 불이익도 무릅쓰려는 것이다. ‘이왕 버린 몸이고 더 잃을 것도 없다’는 심정일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불리해진다는 위기감도 점점 커지고 있다.
교활하게도 최근까지 이명박 정부와 우파는 민주당의 약점과 모순을 파고들며, 한미FTA 비준 저지 투쟁에 균열을 일으키려 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시작한 한미FTA, 이명박 대통령이 마무리하겠습니다” 하는 TV광고가 대표적이었다. 민주당이 한미FTA를 시작했고 적극 찬성해 왔다는 것을 계속 들춰내려 한 것이다. 민주당은 실제로 여러 차례 이런 시도에 흔들려 왔다. 처음에는 ‘10+2 재재협상’으로 그 다음에는 ‘미국이 비준하면’, ‘농업 피해 대책이 포함되면’, ‘중소기업 대책이 포함되면’ 하는 식으로 하나씩 타협하더니 원내대표 김진표가 일단 협정 발효 뒤에 ISD 재협상을 한다는 합의문에 서명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민주당 김진표는 지금도 “양국 행정부가 투자자 국가 소송제도(ISD) 유지 여부에 대해 지체없이 협의한다는 약속만 하면 저지하지 않겠다”는 말을 하고 있다. 물론 현재 최대 쟁점인 ISD는 노무현 정부 시절 법무부조차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을 정도로 독소조항이다. 그러나 ISD를 포함한 독소조항들은 노무현 정부가 한미FTA를 체결할 당시에도 이미 포함돼 있었다.
따라서 노무현의 한미FTA는 ‘진품’이고 이명박의 한미FTA는 ‘짝퉁’이라는 민주당 등의 주장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 그보다는 “이명박의 FTA를 반대하려면 먼저 노무현의 FTA를 넘어서야 한다”(이정환 기자, 〈미디어오늘〉)는 지적이 더 타당하다.
분노와 열기
경제 위기가 심화하는 지금 한국의 기업주, 부자 들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가속화할 한미FTA 체결에 더욱 목을 매고 있는데, 재정과 인력을 이들에게 의존하는 민주당은 이것을 간단히 무시할 수 없다. 민주당이 거듭 동요해 온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런 과정은 민주당에만 의존해서는 한미FTA를 막을 수 없음을 보여 줬다.
반면, 한미FTA 반대 운동 진영은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한미FTA ‘폐기’를 요구해 왔다. 2006년부터 수만 명이 몇 달 동안 시청 광장과 도심 곳곳에서 반대 시위를 벌였고,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는 2007년에 파업을 하기도 했다. 4년 넘게 비준을 막아 온 진정한 힘은 바로 여기에서 나왔다.
그런데 이런 힘이 약화되면서 한미FTA 반대 운동이 최근까지 고전을 면치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민주노동당 지도자 등이 민주당과의 무비판적인 동맹에 치중한 것도 하나의 요소였다. 한미FTA 폐기 요구를 민주당의 요구인 ‘재협상’으로 후퇴시킨 것이 대표적이다. 이런 후퇴는 한미FTA 반대 운동이 민주당만 쳐다보게 만들면서 기층의 사기를 갉아먹는 효과를 냈다. 그래서 민주당이 동요할 때 우리 쪽도 흔들리게 된 것이다.
다행히 최근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이 참패하면서 기층의 자신감이 높아지고 다시 투쟁이 분출하기 시작했다. 민주노동당 지도부도 앞장서서 거리의 투쟁을 고무하고 있다. 반한나라당·비민주당 정서가 확인되고 민주당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커지면서 민주당도 한미FTA 비준 저지 입장을 취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로 몰렸다.
한미FTA 비준 저지를 위해 촛불을 든 수많은 사람들이 2008년 촛불을 떠올리며 고무되고 있다. SNS에서 확인되는 분노와 열기도 심상치 않아 보인다. 이 모든 과정은 한미FTA 반대 운동이 어디에 강조점을 둬야 할지를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한나라당이 과연 한미FTA 비준안을 강행 처리 할 수 있을지 정확히 예단할 수는 없다. 이명박의 레임덕이 워낙 심각하고 한미FTA 반대 운동의 사기는 점점 높아지고 있는 상황을 볼 때 비준안 처리가 더 미뤄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물론 그렇다 해도 이명박 정부는 한미FTA 비준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미FTA 반대 운동 진영은 이런 상황에서 한미FTA 폐기 입장을 분명히 하고 민주당이 동요할 때 비판을 삼가지 않으며 기층의 투쟁을 계속 건설해 나가야 한다.
1퍼센트만을 위해 99퍼센트를 희생시키려 하는 한미FTA는 완전히 폐기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