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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교원평가 거부 성공기

이 글은 한 신규 교사가 전교조 게시판에 올린 교원평가 거부 경험담이다. 자신의 경험을 생생하게 소개하면서 교원평가 반대 운동을 확산시키자고 호소하는 이 글은 적잖은 전교조 활동가들에게 자극을 줬다. 필자의 동의를 구해 본지에 게재한다.

저는 올해 경기도 시흥의 한 학교에 발령받은 조합원입니다. 제가 근무하는 지역이 가산점이 있는 곳이다보니 보수적인 분위기가 강하고, 또 학교에 조합원은 저 혼자뿐이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이번에 정부의 교원평가제에 반대하는 행동을 했습니다.

이것은 ‘동료 평가를 거부한다’는 전교조 지침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동료·선배 조합원들의 조언과 응원에 자신감을 얻어서 한 행동이었습니다.

제가 여러 분들에게 용기를 얻었듯이, 저 역시 여러 선생님들께 힘이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저와 같은 교원평가 거부자가 더 많이 생겨, 제 행동이 소수가 움직이는 ‘튀는 행동’이 아니라 많은 선생님들의 함께하는, 부당한 것에 맞선 정당한 항의로 인정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동료 평가와 학생 평가를 모두 거부했습니다.

제일 처음 한 것은 자기 평가를 위한 기초 자료 입력을 거부한 것입니다. 마감날이 되니까 연구부장님이 ‘왜 자료를 넣지 않았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정부의 교원평가에 반대한다고 답했습니다.

연구부장님은 저를 도서관으로 불렀습니다. 교장 선생님과 얘기를 나눈 모양이었습니다.

연구부장님은 왜 교원평가를 반대하는지 묻고는 ‘신규 조합원이 벌써부터 그러기보다는 일단 해 보고 나중에 거부하는 것이 꼴통처럼 보이지 않을 것’이고, ‘교원평가에 부족한 점이 있지만 차근차근 보완해 시행하는 학생인권조례처럼 보완할 수 있지 않냐’고 했습니다. 또 ‘단 2퍼센트의 갈등도 없느냐’고 채근하고, 저를 걱정해 따로 얘기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교원평가제가 교사들에게 정부의 시책을 따를 수밖에 없게 강제해 학교를 팍팍하게 할 것이며, 교사들 간의 경쟁을 유발해 협력적인 교육을 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지금 교원평가 거부를 시작하고 굳건하게 제 믿음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다른 분들에게 ‘꼴통’이 아니라 신념있고 믿을 만한 교사로 보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학생인권조례는 교육을 올바른 방향으로 바꾸는 길이니까 이것을 보완해 더 낫게 만들어야겠지만, 교원평가는 교육을 망치는 길이기 때문에 보완할 것이 아니라 폐기해야 할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제 행동이 수많은 고민과 선배 조합원 선생님들과의 대화 끝에 나온 결론이기 때문에 단 2퍼센트의 갈등도 없다고 힘줘 말했습니다.

신념

도서관에서 나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제가 교원평가를 거부한다는 사실을 많은 선생님들이 알고 있을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전 교직원들에게 교원평가의 부당성과 제 신념을 알리는 메시지를 보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전체 교직원들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정말로 떨리는 일이었습니다.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도 너무 떨려서 일단 교무실을 나왔습니다. 한참 있다가 들어가 보니, 저를 응원하는 문자도 몇 개 와 있고 지나가면서 용기있다고 격려해 주는 선생님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교장 선생님을 찾아 갔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이미 상황 보고를 들은 상황이었기에, 제가 업무용 메신저를 개인적 생각을 토로하는 용도로 사용했다는 점을 문제 삼았습니다. 제 앞날이 걱정된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개인적 메시지들 중에 오직 제 것만 문제삼는 것은 부당하고, 교원평가제는 중요한 교육 문제이므로 교사·학생 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제게 메시지를 보내지 말라는 것은 전교조 조합원들의 입을 막는 것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런 요지로 답했습니다.

그리고는 교장 선생님의 말씀을 따를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해 달라고 하고 교장실을 나왔습니다.

다음날은 학생 평가가 예정돼 있는 날이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막으려고 평소보다 조금 일찍 저희반 교실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교원평가제가 일제고사나 강제 야자·강제 보충같은 정부 정책을 더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선생님을 평가할 때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이것 없이 교원평가에 욕을 쓰고 빵점을 주는 식으로 불만을 표하는 것이 정말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좋게 하고 교육을 발전시킬까’ 하는 물음도 던졌습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몇 가지를 강조해 말했습니다. 학생 평가가 강제 사항은 아니라는 점, 저를 믿는다면 학생 평가를 하지 않아도 좋다는 점, 누군가 평가를 강요한다면 제가 그에게 항의할 것이라는 점.

조금 뒤에 학생 평가를 위해 연구부장님이 교실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우리반 학생들은 단 한 명도 평가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떨리는 순간이었지만, 너무나 기뻤습니다.

이 일이 있고나서, 한 부장님이 학생들에게 제 사상의 강요한 것이 아니냐고 말했습니다. 저는 최대한 공손하게, 그러나 의지를 갖고 말했습니다.

“저는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해서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교에선 교원평가를 반드시 해야 한다는 뉘앙스의 문제 메시지를 보냈지만, 저는 평가 여부는 학생들의 선택이라고 얘기했습니다. 대체 누가 학생들에게 강요한 것입니까? 학생들은 제 말을 믿고 스스로 선택한 것입니다.”

떨리는 순간

저는 이런 교원평가 거부 경험에서 몇 가지 중요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정말로 잘 알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제가 교원평가에 관해 충분히 알지 못했다면, 연구부장님-교장 선생님과의 논쟁에서 막혔을 것입니다. 다행히 전교조로부터 메일로 받은 글도 있었고, 신문 기사를 검색해 공부한 내용도 있었습니다. 이것이 논쟁에서 큰 도움이 됐습니다.

둘째, 굳은 심지를 보여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연구부장님도, 교장 선생님도 ‘한 번쯤 다시 생각해 볼 수 없냐’고 말했습니다. 저는 늘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없다’고 답변했습니다. 그래서 모두 저를 설득하길 포기했습니다. 제가 처음부터 강하게 나가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더 힘들었을 것입니다.

셋째, 비록 생각이 다르더라도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점입니다. 만일 제가 여러 선배 선생님들께 예의를 지키려 하지 않았다면, 메신저로 제 견해를 보낸 것에 트집을 잡은 사람처럼 곱지 않은 시선이 많았을 수도 있습니다.

넷째, 외톨이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저는 평소에도 동료 선생님들과 학생인권조례, 교원평가, 성과급 등에 대한 비판적 얘기를 자주 나눴습니다. 이것은 이번에 제가 외톨이가 되지 않도록 해 줬습니다. 저희 학교처럼 보수적인 분위기가 있는 곳에서, 제가 학교 생활을 열심히 하지 않고 평소 제 견해를 밝히지 않았다면 어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하신 선생님들 몇 분과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처럼 전체 교직원들에게 교원평가 반대 메시지를 보낸 뒤 상당한 지지와 응원을 받았다는 얘기가 많았습니다.

저는 ‘아직 행동으로 나서지는 못하지만, 불만을 가진 교사들이 많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만약 교원평가를 거부하는 선생님들이 학교에 많았다면, 서울의 어떤 학교에서 전교조 조합원들이 다른 교사들을 설득해 거의 전부가 평가를 거부했다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만들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바로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이 사람들의 불만을 밖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힘을 가진 분들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한 사람의 용기는 그 옆 사람의 용기를,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용기있는 작은 흐름이 아직 용기를 내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의 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