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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
비극의 뿌리는 미친 교육 체제에 있다

12월 19일 대구의 한 중학생이 장문의 유서를 남기고 투신 자살했다. 유서에는 그 학생이 친구들한테서 당한 수많은 학대와 그로 말미암은 마음의 고통이 절절히 드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내가 몸담고 있는 교육 현장에서 가족들을 사랑하고 가족들의 사랑을 받고자 했던 학생이 ‘매일 남몰래 울고, 제가 한 짓도 아닌데 억울하게 꾸중을 듣고, 매일 맞던 시절을 끝내는 대신 가족들을 볼 수가 없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라는 말을 남기고 몸을 던진 비극이 일어난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 이 글을 쓰면서 유족들에게 부족하나마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이런 비극적인 일 앞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자살한 학생을 괴롭힌 학생들과 그것을 미리 알아채고 조처하지 못한 담임 선생님, 나아가 교장 선생님에게 분노하고 있다. 물론 나는 자살한 학생을 직접 괴롭힌 학생들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를 십분 공감한다. 그리고 가해 학생들이 평생 씻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다른 사람보다 학교 현장을 더 깊이 경험하고 이해하는 교사로서, 이러한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살인적인 경쟁교육은 학생들의 인간성을 짓밟고, 학교를 차별, 따돌림, 폭력으로 얼룩지게 만든다.

사실 학생들이 하는 모든 행위는 학생 개인을 둘러싼 수많은 상황에서 비롯한다. 어른들이 직장 동료와 싸우는 것 역시 과중한 업무로 말미암은 스트레스와 관계 있듯이 말이다.

자살한 학생은 친구들에게 비인간적인 괴롭힘을 받았지만, 이는 괴롭힌 학생 개인의 문제, 담임 교사의 문제, 학교에서 책임을 지고 직위해제된 교장의 문제로만 협소하게 볼 것이 아니다. 학생들이 그렇게 서로 미워하고 싸우고 괴롭히도록 만든 미친 교육 체제 자체에 근본적인 책임이 있다.

더욱 심해지는 경쟁과, 경쟁에서 낙오한 학생들을 인간 취급하지 않는 이 교육 속에서, 많은 학생들이 계속된 패배 끝에 ‘나는 무얼 해도 가능성이 없다’는 절망을 내면화한다. 그리고 그런 절망감과 무기력을 자신들끼리의 비정상적인 관계를 통해 푼다.

경쟁과 서열

나는 얼마 전에 우리 반 한 학생에게서, 학생들이 얼마나 경쟁과 서열을 중시하는지를 들을 수 있었다. 학생들은 중학교 때 각 반에서 ‘매치를 떠서’ 싸움 순위를 정하고, 많은 학교를 돌아다니면서 상위 서열을 정한다. 한 번 정해진 서열은 거의 바뀌지도 않고 서열이 낮은 학생들은 서열이 높은 학생들이 시키는 일을 ‘감히’ 거부해서도 안 된다고 한다. 비극적이게도 학생들을 절망으로 몰아넣은 이 경쟁교육 체제에서 보상을 받기 위해서 자신들 역시 폭력적인 방식으로 경쟁과 서열을 재현하는 것이다.

그런 서열을 지키는 것, 이를 위해서 싸움을 하는 것, 그리고 서열이 높은 학생들이 낮은 학생들을 마음대로 다루는 것이 학생들의 자존심이 되는 것이다. 인간으로서 정상적인 행동에서 자존감을 얻을 기회가 얼마나 없었길래 이런 비정상적인 순위 다툼을 벌이는 것일까? 나는 이 미친 교육 체제와 이를 만들어 내고 공고화하려는 정부에 분노를 느낀다.

이처럼 학교 폭력의 책임은 개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교육 체제에 학교 폭력의 뿌리가 있다. 그럼에도 기성 언론은 연일 대구 중학생 비극의 가해자들이 한 자극적인 행위를 보도하며 개인의 문제로 분위기를 몰고 있다.

마치 4년 전 미국 버지니아 공대에서 총기 난사 사건으로 32명이 사망한 비극적인 사건을 두고 〈조선일보〉가 ‘개인의 책임을 사회의 책임으로 돌리지 말라’ 하고 논설을 썼던 것과 꼭 닮았다. 이런 태도는 우리가 살아가는 교육 제도와 사회 체제가 수많은 평범한 개인들에게 절망을 주는 비정상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반대로 정상적인 교육 제도와 사회체제 속에서 비정상적인 인격을 가진 개인이 문제라는 착각을 하게 한다.

그러나 1퍼센트만을 골라내겠다며 학생들에게 미쳐 버릴 듯한 경쟁 압력을 가하는 교육이 정상인가? 그 속에서 학생들의 마음이 뒤틀리고, 병들어 온갖 폭력이 벌어지는 학교가 정상인가?

이런 비극을 막으려면 단지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학생들을 만든 비정상적인 교육 자체를 바꿔야 한다.

지금도 일부 사례에서 우리는 더 나은 학교를 만들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경기도에 있는 혁신학교인 장곡중학교는 교문 지도를 폐지하는 등 학생들에 대한 억압적 통제를 없애려고 노력했고, 그 결과 학생 폭력이나 교사·학생 간 갈등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한다.

이렇게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경쟁적 시험으로 학생들을 옥죄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서로 협력하는 즐거운 배움의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할 때 지금과는 다른 학교가 가능할 것이다. 또 교사 수를 대폭 늘려 교사가 학생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해야 한다. 입시 경쟁을 완화하기 위한 조처들이 즉각 도입돼야 한다.

더 나아가 독초를 제거하려면 독초의 뿌리를 파야 하듯, 미친 경쟁 교육을 바꾸기 위해서는 이 교육의 근원인 경쟁적이고 비인간적인 자본주의 체제를 바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