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번째 죽음은 안 된다:
쌍용차 해고자를 모두 복직시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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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두 번째 죽음 이후 쌍용차 투쟁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지지가 커지고 있다. 더 이상의 죽음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민주노총을 비롯한 67개 단체들이 모여 범국민추모위원회도 구성했다.
“지난 3년 동안 단 한 명의 노동자도 복직되지 않았습니다. 공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이라도 주었다면 그렇게 많은 노동자들이 목숨을 끊었겠습니까.” 권지영 쌍용차 가족대책위 대표의 이 절절한 외침이 말해 주듯 이윤에 미친 정부와 자본이 스물두 명을 죽였다.
2004년 쌍용차를 인수해 기술만 빼가고 회사를 거덜 낸 상하이차는 막대한 이윤을 챙기며 ‘먹튀’ 했고, 정부는 상하이차의 책임을 묻기는커녕 오히려 노동자들을 대량 해고하고 이에 맞선 노동자들의 점거파업에 살인 진압을 자행했다. 특히, 이명박이 직접 쌍용차 살인 진압을 지시하고 그 ‘성공’을 ‘치하’했다는 전 경찰총장 조현오의 실토는 치 떨리는 분노를 느끼게 한다.
정부의 무자비한 구조조정과 부채 정리로 헐값에 쌍용차를 인수한 마힌드라는 재고용 약속을 헌신짝처럼 팽개치고는 단 한 명도 복직시킬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노동자 2천6백46명이 공장에서 쫓겨나 가족이 파괴되고, 정신적·경제적 고통으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동안에도 정작 이 모든 비극의 원인 제공자들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다.
지난 3년간 많은 사람들이 노동자들의 아픔에 공감하며 연대해 왔다. 정혜신 박사와 후원자 수천 명이 상담치유센터 ‘와락’을 열어 노동자들과 가족들의 생채기 난 가슴을 위로하고,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의 많은 조합원들이 꾸준히 연대 집회를 열고, 노동자들의 생계 지원을 위해 기꺼이 각종 모금에 참여했다. 좌파 단체와 학생 단체의 회원들도 헌신적인 연대를 건설해 왔다.
지난한 시간과 고통을 견디며 투쟁해 온 쌍용차 노동자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곁을 지켜온 수많은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과 헌신이 있었기에 쌍용차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사회적 목소리가 커질 수 있었다.
쌍용차 투쟁은 더 이상의 죽음을 막기 위해서뿐 아니라 지배자들의 경제 위기 고통전가에 맞선 투쟁이라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2009년 파업의 교훈
2008년 미국발 경제 위기가 터지자 정부와 자본은 쌍용차를 본보기로 삼았다. 자신들이 얼마나 무자비할 수 있는지 보여 주려 한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순순히 무릎 꿇지 않았다. 물과 음식 반입이 중단된 공장에서 에어컨 물까지 먹으며, 온갖 살상무기를 동원한 경찰의 살인진압에 굴하지 않고 무려 77일을 싸웠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의 실질적 연대 부족 속에서 안타깝게 패배했지만 쌍용차 투쟁은 고통전가에 맞서 노동자들이 얼마나 강력하게 싸울 수 있는지도 보여 줬다.
2009년 일부 노동자들과 다함께 등이 요구한 대로 쌍용차를 공기업화 했더라면 오늘의 참사는 없었을 것이다. ‘기업 회생이냐 노동자 희생이냐’ 하는 압력에서 벗어나 노동자들의 고용을 지키기 위해서는 파산 기업을 국가가 인수해 공기업화 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필요했다.
지배자들은 한국 경제 위기가 다시 심화되면 또 쌍용차에서처럼 유혈 낭자한 공격을 시도할 수 있다. 따라서 고통전가에 맞선 강력한 노동자들의 투쟁, 부문과 업종을 뛰어넘은 전 계급적 연대, 분명한 대안 제시가 결합돼야 했다는 2009년 쌍용차 투쟁의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이번에는 반드시 노동자들이 빼앗긴 것을 되찾고 ‘죽음의 행진’을 끝내야 한다.
이명박 정부와 측근들의 온갖 추악한 부패와 비리가 폭로되고, 고통전가에 대한 사회적 분노가 커지고 있는 상황은 우리에게 기회다. 지난 4월 26일 고용노동부장관 이채필이 쌍용차 공장을 찾아가 무급휴직자 지원과 복직 문제를 거론했다고 한다. 쌍용차 연대 투쟁이 확대될 기미를 보이자 압력을 느낀 것이다.
하지만 이채필은 무급휴직자 ‘복귀’만 언급했을 뿐 해고자 복직 문제는 꺼내지도 않았다. 해고자들과 무급휴직자들을 이간질하자는 속셈도 있을 것이다. 그나마도 쌍용차 사측은 “유휴 인력”이 많다며 거절하고, 도리어 “외부세력”의 투쟁이 “정상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비난했다.
현재 마힌드라는 2009년 구조조정 전의 생산량을 회복했고, 매출도 2004년 수준으로 증가한 만큼 “여력이 없다”며 복직을 거부하는 것은 가증스런 책임 회피에 불과하다. 따라서 노동자들의 복직을 요구하며 강력하게 싸워야 한다. 무급휴직자 4백61명은 물론이고 해고자와 정직자, 희망퇴직자를 포함해 정부와 먹튀자본의 이윤몰이에 희생된 모두를 복직시키라고 요구해야 한다.
희망버스가 보여 준 가능성
이런 요구를 쟁취하려면 높아지는 사회적 관심을 정치투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전 계급적 투쟁이라는 의미에서 정치 투쟁이 필요한 것이다. 해고 노동자들이 공장 내 투쟁으로 이윤에 직접적 타격을 줄 수 없는 상황에서, 정치투쟁으로 발전하는 것은 쌍용차 투쟁이 승리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한진중공업과 희망버스는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줬다. 희망버스는 광범한 연대를 건설해 정치투쟁으로 발전했고, 한미FTA 반대 투쟁과 맞물리면서 정치적 압력이 가중되자 지배자들이 양보하면서 성과를 거뒀다.
그런데 일부 노동조합 지도자와 좌파 단체들은 희망버스 운동의 정치적 의미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있다. 기층 투쟁 건설보다 민주당에 의존해 의회에서 타협하는 것에 더 기댄다거나, 반대로 민주당 같은 ‘불순물’이 들어오면 투쟁을 왜곡시킨다는 이유로 폭넓은 연대 건설을 지지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다른 많은 문제들이 그러하듯 민주당은 쌍용차에서 벌어진 비극에 직접적 책임이 있다. 쌍용차를 상하이차에 헐값에 매각한 것이 바로 참여정부였다.
이런 ‘원죄’를 가진 민주당조차 최근 ‘쌍용차 특위’를 만들어 쌍용차 문제에 대응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아래로부터의 투쟁과 압력이 낳은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해고자들은 ‘민주당이 해고자들에 대한 배상이나 생계지원 정도로 타협하는 것 아니냐’ 하는 의구심이 크다. 민주당이 대중적 압력에 밀려 운동에 편승해서도 금방 국회로 들어가 어정쩡한 타협을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당이 노동운동의 요구와 규율을 받아들이며 투쟁에 함께하겠다면 굳이 막을 필요는 없겠지만, 그 때도 민주당에 대한 비판을 삼가거나 주도권을 넘겨줘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쌍용차 연대 투쟁에서 중요한 것은 광범한 노동조합, 진보정당, 시민·사회단체 들을 포함해 노동자 공동전선과 대중 행동을 건설하는 것이다. 일부 좌파들처럼 ‘민주당과 야권연대 하려는 개혁주의자는 안 된다’, ‘반자본주의 입장이 철저하지 않다’는 식으로 배척하고 선을 긋기보다는 폭넓은 공동전선과 투쟁 건설 속에서 토론·입증해야 한다.
쌍용차 투쟁과 언론 파업, KTX 민영화 저지 투쟁 등 고통전가에 맞선 노동자 투쟁들을 서로 연결하고 단결을 강화해야 한다. 5월19일 쌍용차 범국민대회에 적극 참가하자. 그리고 운동을 더욱 확대·강화시켜 ‘살인정권’에 종지부를 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