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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의 봄과 노동계급의 연속혁명

혁명적 변화의 시대를 알린 일련의 기념비적 사건들이 ‘아랍의 봄’을 수놓았다. 반란의 물결은 수십 년 동안 정치적으로 정체돼 있던 아랍 지역을 단 몇 달, 아니 몇 주 만에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다. 아랍의 혁명은 더 급진적인 사회 변화로 나아갈 가능성을 품고 있었다. 이 잠재력을 이해하려면 아랍 세계를 뒤바꿔 놓은 사회 깊숙한 곳의 변화를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 이 연구를 위해서는 우선 아랍 세계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많은 편견들을 깨뜨릴 필요가 있다.

2012년 이집트 노동절 집회 아랍 혁명은 사회주의적 변화로 나아가는 투쟁으로 발전할 수 있다. ⓒ출처 기기 에브라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아랍 혁명이 단순히 제국주의에 맞선 투쟁에서 발생한 “교정”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튀니지에서 벤 알리가, 이집트에서는 무바라크가, 또 예멘에서 알리 압둘라 살레가 퇴진한 것은 제국주의에 큰 타격을 입혔다. 바레인에서는 선거권을 잃은 국민들과 미국·사우디 정권이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데, 이 항쟁 또한 제국주의를 향한 도전으로 볼 수 있다. 이 점에서 보면 리비아와 시리아의 반란은 일탈적인 사례이다. 두 나라의 정권 모두 제국주의와 첨예하게 대립한 반면 혁명 세력들은 한편에서는 대중의 불만을 대변하는 것으로 비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제국주의의 술책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근본적 차이

이것은 단지 관점의 차이나 제국주의 전략을 둘러싼 다양한 해석 정도로 치부할 수 없는 문제다. 아랍 혁명의 성격을 규정하는 데서 뿌리깊은 차이가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아랍 민족주의, 자유주의, 이슬람주의 사상을 고수하는 이들은 아랍 혁명을 과거의 프리즘을 통해 본다. 아랍 민족주의자들에게는 혁명이 반제국주의 투쟁을 되살릴 기회인 것이고, 자유주의자들에게는 독재에서 의회 민주주의로 나아갈 전망을 제시해 주는 것이며, 이슬람주의자들에게는 1979년 이란 혁명과 함께 시작된 반서방 투쟁의 지속을 알리는 것이다. 그러나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에게 혁명은 “연속 혁명”, 즉 사회주의적 변화로 “나아가는” 투쟁의 실질적인 가능성 문제를 제기한다.

이 혁명의 기원을 이해하려면 지난 수십 년 동안 아랍 지역에서 일어난 사회 변화를 추적해 봐야 한다. 구 체제는 개혁을 통해서든, 또 자신이 열렬히 추종했던 신자유주의 정책을 통해서든 그 변화에 조응하는 데 실패했다.

오늘날 아랍 세계는 40년 전, 심지어 20년 전과도 판이하게 다르다. 아랍 지배자들이 통치해야 하는 인민들은 더는 손바닥만한 땅뙈기에 기대 연명하는 무지렁이들이 아니다. 생존을 위해 자기 노동력을 팔아야 하는 도시 인구가 압도적으로 많다. 혁명을 만들어 가는 젊은이들의 삶은 그들의 조부모의 삶과 판이하게 다르다. 이들은 더 잘 교육받았고, 도시 생활에 더 익숙하고, 국제 뉴스에도 더 민감하며, 국제 운동, 예컨대, 반세계화 운동,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 반전 운동 등을 통해 정치적으로 각성했다.

이런 변화들이 아랍 세계의 사회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지만, 여전히 과거의 다른 사회 관계 속에 발전된 정치 사상이 주를 이루고 있다. 1919년 이집트에서 시작된 반식민주의 투쟁의 시대는 1967년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이집트에게 승리하며 막을 내린다. 이 시기에 형성된 사상은 아랍 민족주의, 이슬람주의, 스탈린주의, 반식민주의 투쟁, 발전 문제 등을 핵심으로 했다. 이 사상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지만 혁명의 소용돌이 안에 빨려 들어갔다. 새롭게 떠오를 사상이 무엇일지 아직 알 수는 없지만 새로운 시대는 분명 새로운 사상을 만들어 낼 것이다.

칼 마르크스는 그의 저서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언급했다. “새 언어를 배운 초심자는 늘 자기 말을 모국어로 번역한다. 그가 새 언어를 제대로 익히고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려면, 모국어가 아닌 새 언어에 푹 빠져 살고 결국 모국어를 잊어 버려야 한다.”

과거의 혁명이 그 이전 시대의 사상에 빚을 진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혁명도 듣기에 익숙한 언어로 표현된다. 그러나 비슷한 점은 거기까지다. 새로운 사회 관계, 또 새로운 계급 관계는 한 사우디아라비아 젊은이가 “정신의 혁명”이라고 표현한 것을 만들어 내고 있다. 물론 이 혁명은 아직 사우디아라비아 거리의 대중 행동으로 표현되고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사우디아라비아의 현실은 놀랍다. 사우디아라비아 내 재소자들 중 95퍼센트가 학위를 소지하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왕자 한 명이 50년 동안 나라를 통치하고 있고, 지난 80년 동안 사우디 아라비아 왕가는 권력을 다른 세계에 의존해 왔다. 이들은 어디를 봐도 구세대이다.

도시화

세계은행의 통계를 보면, 1970년대 초에는 아랍인의 30퍼센트만이 도시에 거주했다. 2020년에는 전 인구의 70퍼센트, 즉 4억 2천만 명 중 2억 8천만 명 정도가 도시에 거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도시화는 지난 10년 동안 가속화했다. 21세기 초, 인구가 1백만 명이 넘는 아랍 도시는 16개였지만 오늘날에는 24개로 늘어났고 그 중 6개 도시는 5백만 명 수준이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메카, 리야드, 제다 같은 대도시 지역에는 9백5십만 명이 거주한다. 페르시아만 연안국 인구의 약 90퍼센트가 도시에 거주한다. 레바논과 요르단, 이라크도 곧 그 수준에 이를 것이다. 한때 고립된 소규모 마을이 대부분이었던 농촌은 오늘날에는 국제 시장과 연동된 거대 농업 산업이 존재한다. 이런 변화는 이촌향도 경향을 가속화한다. 지난 3년 동안에만 시리아인 약 3백만 명이 도시를 찾아 농촌을 떠났고, 알레포나 다마스쿠스 같은 도시 안에 새 거주지를 만들었다. 상대적으로 완만하게 도시화가 진행된 이집트조차 카이로를 중심으로 한 대도시 인구가 1965년 2백40만 명에서 오늘날 1천1백50만 명으로 폭증했다. 카이로에서 나일강을 따라 알렉산드리아까지 북쪽으로 2백 킬로미터 가량 이어지는 도시 회랑, 즉 수도권역이 형성됐다. 이런 도시화는 아랍 지역에서 끊임없이 반복돼 온 패턴이다.

이런 도시화는 사회 관계를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크리스 하먼이 2002년 논문 ‘세계의 노동자들’에서 지적한 것처럼, “도시화가 확산되면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생계를 위해 시장에 더 많이 의존하게 된다. 소농들은 비록 자기 입에 겨우 풀칠하는 수준일지라도 자기 노동으로 직접 생산한 상품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며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도시 거주자들은 그럴 수 없다. 도시 거주자들은 자기 노동이든 자기 노동의 산물이든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팔지 못하면 굶어 죽을 수 있다. 그런데 지난 수십 년 간 농촌에서 일어난 변화 때문에 시장에서 판매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생산의 중요성이 점점 커졌다.”

도시화의 주요 특징 중 하나는 국민의 문자 해독력 증대, 즉 교육받은 새 세대의 등장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농촌 삶의 숨막히는 사회 관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다. 유네스코의 통계를 보면, “성인보다 청년층의 식자율이 더 높다. 아랍 지역의 15세 이상 24세 이하 청년층의 식자율은 1990년 63.9퍼센트에서 2002년 76.3퍼센트로 증가했다. 2004년 아랍 지역 청년층의 평균 식자율은 남성이 89.9퍼센트, 여성이 80.1퍼센트이다.” 아랍 지역의 인터넷 사용 인구는 불과 몇 년 사이에 1천 배 가까이 늘어났다. 10년 전만 해도 국영 언론사의 검열된 정보만 접할 수 있었던 대중이 새 사상, 새 정보를 접하고 “온라인 활동”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빈곤의 굴레

그러나 이 젊고 교육받은 도시 인구는 빈곤에 발목 잡혀 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이렇게 평가한다. “일자리가 있는 청년들조차 저임금, 취약한 사회 안전망, 고용 안정성과 직업 전망의 부재,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노동조합의 부재 또는 약화 등 열악한 노동조건 아래 놓여 있다.”

도시의 계급 구성은 아주 복잡한데, 그 중 핵심은 급속히 성장하는 노동계급이다. 한 가족 안에 행상인, 하급 공무원, 생산직 노동자, 대졸 실업자가 공존하기도 한다. 이들은 모두 교육받았고, 저임금에, 25세 이하다. 도시 생활이 이처럼 근접해 공존하기 때문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 쉽다. 생산 과정의 핵심을 차지하는 노동계급의 힘이 증대할수록 다른 빈곤층들을 이끌 가능성도 커진다.

이 세대는 2002년에 성년이 됐다. 나는 당시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서안 재침공에 항의하는 전례 없는 시위를 취재해 《소셜리스트 리뷰》에 기사를 썼다. 우리는 집회 참가자의 연령뿐 아니라 정치적으로 자유분방한 그들의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 “레바논의 모든 가톨릭 학교가 동맹 휴업을 했다. 시아파 이슬람주의 활동가들과 프랑스어를 쓰는 그리스도교 계열 학교 학생들이 함께 행진했다. 중고등학생들이 모임을 조직하고 동맹 휴업 찬반 투표를 했다. 이 학생들은 각 학교를 오가며 행진을 했고 버거킹 체인점 앞에서 연좌했다. 바레인 학생들은 맥도널드 체인점을 뒤엎어 놓았다. 이집트에서는 KFC 체인점이 불탔다. 시리아에서는 허가 받지 않은 행진이 시작됐고, 집회 참가자들은 분노의 대상인 비밀 경찰과 전투를 벌였다. 학생들은 등교길에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외치곤 했다.”

이 시위들은 전 세대를 통틀어 가장 규모가 컸고, 모로코에서 예멘까지 번졌다. 이스라엘의 침략에 항의해 미국 제품을 불매하자는 호소는 문자 메시지를 통해 사우디 아라비아까지 확산됐다.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이런 행동은 전례 없는 것이었고, 일부 사우디 아라비아인들은 카타르까지 가서 반이스라엘 시위에 동참했다. 아랍 전역의 중고등학교와 대학들이 분노로 들썩였고, 보안 경찰뿐 아니라 운동과 거리를 두고 구체제와 타협했다고 여겨지는 기존 야당들도 타격 대상이 됐다.

2002년 시위의 핵심이었던 이 학생들이 성장해 아랍 혁명을 만들었다. 2003년 국제 반전 운동, 2006년 이스라엘에 대항한 헤즈볼라의 승리, 이스라엘의 봉쇄에 맞선 가자의 저항, 2006년 이집트의 산업 도시 마할라 알 쿠브라에서 벌어진 파업 물결, 또 이로 인해 촉발된 이집트 노동자 운동의 극적인 부상 등 우리가 목격한 운동들이 정치적 각성을 일으켰던 것이다.

이런 사회적 변화들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뒤바꿔 놓았을 뿐 아니라 국제 체제에 단단히 결속된 현대 아랍 자본가 계급을 만들어냈다. 이 계급이 형성될 수 있었던 배경은 아랍 세계가 직접적인 식민 통치에서 해방되고 그 뒤 각종 사회경제적 변화를 겪었기 때문이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초대 국왕 이븐 알 사우드는 아라비아 반도 바깥 세계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었다. 이븐 알 사우드의 손주들은 그와 달리 서방 국가 수도에 집이 있고, 엘리트 대학에서 교육 받았으며, 런던 부동산 시장, 축구팀, 우량 기업 등 각종 분야에 투자를 한다. 이집트 민족주의 지도자 가말 압델 나세르 사망 후 발견된 그의 계좌에는 잔액이 없었다. 반면 호스니 무바라크의 재산은 수십억 달러에 이른다. 이 사실은 단지 나세르가 무바라크보다 더 정직하다는 것이 아니라(물론 이것은 진실이다) 식민 지배가 종식된 뒤 새로운 지배 계급이 급속히 성장했음을 보여 준다.

이집트 군의 상층부는 더는 영국 또는 프랑스 장교들의 부관 노릇이나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정치경제적 지위에 깊숙이 뿌리내린 고유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이집트 군은 대규모 공장, 작업장, 투자액을 갖춘 거대 기업 집단을 통제한다. 이집트 자본가(또는 아랍 지역의 여타 자본가)는 과거의 지주가 아니라 공장주다. 이들은 더 이상 낡은 기술로 기아에 허덕이든 농민들에게 지대를 쥐어짜낼 필요가 없다. 대신 현대식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노동에서 이윤을 뽑아낸다.

아랍 자본주의가 성장하며 제국주의와 맺는 관계도 바뀌었다. 193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 이 관계는 일종의 주종관계였다. 그러나 이제 아랍의 지배자들은 고유의 이해관계를 갖게 됐고 그 이해관계를 뒷받침할 자본도 소유하고 있다. 1940년대와 1950년대에 시작된 혁명의 물결은 식민 지배에 도전했다. 그러나 당시 아랍 노동계급이 상대적으로 규모도 작고 취약해서 중간계급 내 급진 분파가 투쟁의 지도부를 장악해 결국 그 투쟁을 제약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 마르크스주의자 토니 클리프는 이 현상을 “빗나간 연속 혁명”이라고 규정했다.

제국주의 열강은 결국 이 중간계급에게 개발, 시장에 대한 접근, 투자 등을 약속하며 협상을 벌였다. 야심만만한 “대령”의 충성심을 사는 것은 저개발 국가에서 상대적으로 문제를 덜 일으키는 방식이었다. 그 “대령”은 이제 도시 지역 유지, 지주, 이슬람 부족장 등을 매수해 대체로 문맹이었던 지역민들의 환심을 샀다.

변변찮은 출발

이 야심만만한 중간계급은 비록 출발은 변변치 않았을지라도 곧 사회와 경제를 환골탈태하는 과정에 앞장서고 그럼으로써 국제 자본가 계급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다. 이들의 부모 세대는 하층 중간계급 가정에서 태어나 발전의 부재, 이등 시민 취급, 식민 지배 등에 한숨짓곤 했지만, 이들의 자식 세대는 특권층의 자녀로 태어나 최고의 교육을 받고 현대 자본가 계급의 일부가 되도록 훈련 받는다.

아랍 사회가 큰 변화를 겪으며 이 새로운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사이 격차는 점점 커졌다. 지난 20년 동안 신자유주의가 도입되며 이 과정은 더 가속화했다. 2009년 보스턴컨설팅그룹이 수행한 연구를 보면, 백만장자 가정이 중동 전체의 절반이 넘는 부를 소유하고 있다. 반면 압도 다수의 대중은 시장 질서가 강요하는 불안정한 임금을 받으며 근근이 살아 간다. 부자들이 소유하고 있는 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흘러 내려가지” 않고 해외 투자처를 찾아 움직인다. 사우디 아라비아 부의 65퍼센트, 아랍에미리트와 쿠웨이트 부의 50퍼센트, 튀니지 부의 45퍼센트, 바레인, 레바논, 모로코 부의 30퍼센트 가량이 서방 은행에 예치돼 있다.

아랍 자본의 부상은 단지 몇몇 “사업가”들의 성취가 아니라 전 국가적 지원으로 이뤄진 것이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석유 산업은 이런 경향을 명확히 보여 준다. 2005년 사우디 아라비아의 아람코는 거대 석유기업 엑손모빌보다 더 높은 가치를 가진 것으로 평가 받았다. 처음엔 주요 미국 석유기업들이 소유했던 아람코는 1980년에 사우디 아라비아 국가가 인수에 성공한다. 사우디 아라비아 국가는 더 이상 오일 달러를 긁어 모으는 사막의 무지한 부족장들이 아니다. 전 세계적 영향력을 가진 국제 관계 내 행위자인 것이다. 2010년 아랍의 소국 카타르는 전 세계 부동산 투자에서 수위를 차지했다(카타르 국민의 약 14퍼센트가 백만장자다). 이 계급은 시리아와 리비아에도 존재한다.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 격차는 “반동적인” 정권이든 “진보적인” 정권이든 상관없이 나타난다.

빗나간 연속 혁명이 가능한 조건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아랍 혁명은 그야말로 원형에 가까운 권력 문제와 마주하고 있다. 아랍의 지배계급은 이제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데 이해관계가 없다. 그저 그들과 관계를 조정하고 싶을 뿐이다. 나세르 시기 아랍의 지배계급은 국부에 대한 통제권을 얻으려고 열강과 다퉈야 했다. 오늘날 그들은 자유롭게 투자하고 공장을 짓고 주식 투기를 한다.

이런 사회적 변화가 보여 주는 것은 오늘날 혁명의 성격이 반식민주의 시대 혁명의 성격과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과거처럼 분노한 대중과 발전에 목마른 야심만만한 중간계급 사이 동맹이 아니라 국제 자본주의와 협력하는(또 그 일부이기도 한) 지배계급과 아랍 민중 사이의 뿌리 깊은 적대감이 오늘날 혁명의 성격을 대변한다.

‘아랍의 봄’과 함께 곳곳으로 번져나간 노동자 조직들이야말로 이 혁명이 어떻게 발전할지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다. 마르크스는 1848년 혁명을 되돌아보며 이렇게 썼다. “시민 사회의 어떤 계급도 그 계급 내에서, 또 대중 사이에서 열정이 넘치는 순간을, 사회 일반과 교류하고 통합하며 심지어 사회 일반과 구분이 되지 않고 그것을 대표하는 것으로 인정되고 인식되는 순간을, 그 계급의 주장과 권리가 진정 사회 일반의 주장과 권리가 되는 순간을, 그 계급이 사회의 머리이자 심장이 되는 순간을 떠오르게 하지 못한다면 이런 [혁명적] 구실을 할 수 없다.”

변화를 위해 무르익은 조건

‘아랍의 봄’이 사회주의 혁명으로 발전하는 데 결정된 것은 없다. 그러나 이 혁명은 그런 근본적 변화를 위한 조건이 무르익은 역사적 단계에 서 있는 듯하다. 새로운 사상은 혁명 그 자체의 경험, 즉 갑작스런 변화, 고점과 저점, 거리의 전투, 파업과 논쟁 등을 통해 발전할 것이다. 혁명은 특정 국경 내에 머무르지 않고 아랍 지배자들이 누린 과거의 영광도 옛일로 만들 것이다. 이런 투쟁을 통해 젊고 거대한 아랍 노동계급은 그 자신을 “사회의 머리이자 심장”으로 변화시킬 가능성을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