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카리아트’와 사회 변혁의 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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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노동자 계급이 더는 사회 변혁의 주체가 될 수 없고 불안정·비정규 노동자층에 주목해야 한다는 논리가 노동운동과 진보진영의 활동가들 속에서 흔히 제기된다. 최근에는 ‘프레카리아트’에 대한 논의도 부상하고 있다.
프레카리아트는 ‘불안정한(precarious)’과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를 합성한 말이다.
이 개념을 본격적으로 체계화한 사람은 영국의 가이 스탠딩 교수다. 그는 “불안정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 안정적인 고용 전망을 갖지 못한 사람들, 별다른 직업 경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 등으로 구성된 집단이 증가”하고 있다며 “프레카리아트는 단순히 고용 형태나 임금 수준 등을 넘어 사회와 공동체, 삶의 안정과 불안 등의 측면에서 폭넓게 노동자 집단을 파악하는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프레카리아트’ 개념을 널리 수용하는 이들은 프레카리아트가 포함하는 범위를 더욱 넓힌다. 불안정노동자뿐 아니라 고통 받는 아동, 청소년, 청년, 대학생, 백수, 장애인이나 비혼모까지 프레카리아트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이들 주장의 공통점은 프레카리아트가 불안정한 상태에 있는 모든 종류의 이질적이고 다양한 사회세력들을 통칭하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최근 이 쟁점이 급부상한 직접적인 경제적 배경은 2008년 이후 지속되고 있는 대불황이다. 대불황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 특히 청년들의 고용 상황을 끔찍하게 악화시켰다. 스페인, 그리스, 포르투갈의 청년실업률은 50퍼센트에 달한다. 한국에서도 청년실업은 심각한 사회 문제가 돼 있다. 그래서 한국 청년들 사이에서는 사회로부터 배제되고 소외된 자신들의 상황을 한탄하는 ‘잉여’라는 말이 유행이다.
다른 한편, 급진적인 청년운동이 부상하면서 프레카리아트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졌다.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이나 스페인의 광장 점거 운동, 이집트 혁명 등에서 급진적인 청년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대불황의 초기 국면에서 청년들의 투쟁은 특히나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 왔고 많은 이들에게 자신감과 영감을 줬다.
이렇게 ‘프레카리아트’라는 말은 자본주의 위기가 낳은 불안정과 이에 대한 대중적 항의와 연관돼 있다. 그래서 영국 사회주의자 리처드 시모어는 “우리 모두가 프레카리아트다” 하고 주장한다. 프레카리아트라는 말이 유행하는 현상이 자본주의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1퍼센트에 맞서 99퍼센트가 스스로 이름을 부여하고 투쟁의 주체로 나서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프레카리아트를 하나의 계급이라기보다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반대를 담은 선언적 개념이라고 본다.
프레카리아트는 계급인가?
그런데 ‘프레카리아트’가 프롤레타리아트와 별개의 계급이라고 보는 입장이 있다. 예컨대 곽노완 교수는 프레카리아트가 ‘다중’의 이질성을 넘어서 실질적으로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21세기 계급이라고 말한다. 이진경 교수는 프레카리아트가 노동자 계급과 다르며 정규직 노동자들의 안정성을 갖지 못한 사람들, 정규직 노동자와 대립하는 공통성을 지녔다고 주장한다.
마르크스주의에서 계급은 사회‘관계’다. 그것도 적대적인 사회관계이고 그 적대성은 생산을 둘러싸고 벌어진다. 공장, 토지, 기계, 건물 등 생산수단의 소유와 통제, 그 과정에서 하는 구실 등이 계급을 이루는 핵심이다. 생산수단을 소유·통제하는 자본가들에게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할 수밖에 없는 계급을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라고 불렀다. 이 정의에 따르면 프레카리아트는 불안정한 프롤레타리아로 당연히 프롤레타리아의 일부다.
반면 프레카리아트를 프롤레타리아트와 다른 독립적 계급으로 설명하는 이들이 내세우는 지표는 불안정성이 전부다. ‘촛불소녀’와 계약제 박사 연구원은 모두 불안정하고 미래가 불안하다. 그러나 그들이 어떻게 하나의 계급으로 묶일 수 있는지는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다.
이진경 교수는 프레카리아트가 “노동자 계급의 규정성이 소멸되거나 삭제된 모든 사람을 하나로 묶는 범주”라 한다. 노동자 계급 사이에 존재하는 고용에서의 안정성 정도 차이를 근본적 대립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생산과정에서 자본과 노동의 대립을 노동자 계급 내부 안정과 불안정의 대립으로 대체한 것이다.
그리고 불안정성을 중심으로 하는 프레카리아트가 사회 변혁의 새로운 주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불안정성이 불러 온 불안감은 어느 방향으로든 나갈 수 있다. 어떤 이들에게는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불안이 투쟁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또 다른 이들에게 불안정성은 두려움과 보수성을 낳을 수도 있다. 최근 유럽의 신나치와 극우가 부상한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더구나 ‘불안정한 프레카리아트 대 안정적인 노동자 계급’이라는 것은 현실과 다르다. 프레카리아트와 상대적 차이는 있지만 정규직 노동자들도 자본주의 때문에 불안정하다. 대량해고로 내몰린 쌍용자동차 노동자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삶 역시 불안정하기는 마찬가지다. 불안에 휩싸이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은 극소수 권력자와 자본가들밖에 없다.
차이를 강조하는 것은 연대를 약화시킨다. 생산을 멈춰 자본주의 사회관계의 뿌리를 흔들 수 있는 노동자 계급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하게 된다. 그래서 이진경 교수는 프레카리아트들은 ‘공장의 계급’과 다른 ‘거리의 계급’이라고 부르며 생산 현장에서의 총파업이 아니라 거리 총파업을 호소한다.
이런 주장을 바탕으로 한국에서 일부 청년들이 올해 메이데이에 ‘총파업’을 선언한 바가 있다. 그들은 5월 1일은 일하지 않는 날, 수업 없는 날, 집안 일 없는 날, 소비하지 않는 날이라고 선언하고 거리에서 그렇게 행동했다.
일단 이것은 총파업이 아니다. 총파업의 핵심은 이윤 체제의 작동을 중단시키는 것이다. 소수의 청년들이 시청광장에 텐트를 치고 맥주를 마시는 것은 자본주의 체제의 일상으로부터 일탈하는 것일 뿐이다.
물론, 불안정 고용이나 실업 상태의 청년들이 잘못된 정부 정책에 맞서 대중적·집단적으로 거리 시위를 하고 광장을 점거하는 것은 중요한 정치 행동이다. 역사적으로도 1930년대 미국에서 불안정 미조직 청년 노동자들의 투쟁과 조직화는 IWW(세계 산업노동자동맹) 운동을 일으켰다.
불안정·미조직 청년들의 행동은 작업장에서의 조직된 노동자들의 행동과 연결돼야 한다. 조직 노동자 계급의 생산을 멈추는 투쟁과 청년들의 거리 행동이 결합될 때, 자본주의의 핵심인 생산과 이윤에 타격을 줄 수 있고 진정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점은 프레카리아트라는 말이 처음 생겨난 유럽의 노동자 투쟁을 통해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그리스에서는 최근 2년간 총파업이 17번 벌어졌고 거리에서는 청년들과 노동자들이 어깨 걸고 투쟁하고 있다. 튀니지와 이집트의 혁명은 청년들의 거리시위와 광장 점거에서 시작됐지만, 결국 조직 노동자들의 총파업이 독재정권들을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청년들의 투쟁은 불안정한 상황에 놓인 프레카리아트들이 저항의 선두에 설 수 있음을 잘 보여 줬다. 레닌의 말처럼 혁명이 ‘피억압 민중의 축제’라면 이들도 축제의 주인공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의 끔찍한 소외와 불안정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저항이 노동자 계급 정치·조직과 만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