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자본가’ 안철수에게 기댈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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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의 생각》 발간과 ‘힐링캠프’ 출연 이후 안철수에 대한 검증 공세도 이어졌다. 그러나 안철수는 최근 검증 공세에 아직 큰 타격을 입지는 않았다.
검증의 주체가 검증할 자격이 없는 자들이라는 점 때문일 것이다. 새누리당과 우파는 누구보다 재벌을 위한 정책과 사면에 노력했던 집단이다. 박근혜에 맞설 수 있는 대안이 안철수 말고는 없어 보인다는 정서도 작용했을 것이다.
〈조선일보〉는 안철수가 “기성체제에 대한 불신과 도전의 ‘심벌’”이라는 점에서 “언론 매체와 정치판에서 그를 공격할수록 오히려 지지층을 더 단단하게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이번 ‘검증’에서 드러난 안철수의 지난 행보들은 그가 새누리당·민주당과는 다른 제3세력을 표방하지만 이들 기성 세력들과 일부 기반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
논란이 된 ‘브이소사이어티’는 SK, 롯데, 코오롱, 신세계 등 재벌 2~3세들과 안철수, 다음커뮤니케이션 이재웅 같은 벤처기업 사장들의 사교·연구 모임이자 자본금 42억 원으로 출범한 주식회사였다. 안철수도 여기에 부인 명의로 1억 8천만 원 규모를 투자했다.
안철수는 브이소사이어티 구성원들과 함께 인터넷 전용 은행 ‘브이뱅크’를 설립하려 했고, SK 회장 최태원과 합작해 ‘IA 시큐리티’라는 무선 인터넷 보안 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이렇듯 재벌 총수나 기업가들과 어울리고 그들과 함께 투자하고 사업을 추진하는 등의 일들을 해 온 것은 그 자체로 그가 어느 계층에 속한 사람인지를 보여 준다.
사실 안철수가 서울대에서 얼마전 강의한 주제는 “기업가적 사고방식”이다. 안철수는 ‘힐링캠프’에서 우유부단할 것 같다는 지적에 대해 “의사결정을 치열하고 빨리할 수밖에 없는 위치”인 “경영자”로서의 경험을 어필하기도 했다. 결국 안철수는 이 사회 기업경영자 집단의 일원인 것이다.
‘기업가적 사고방식’
그래서 안철수는 이들의 잘못된 문화와 관행도 공유하는 것이다. 예컨대, 안철수는 1999년 안철수연구소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헐값에 인수해 거액의 부당 이익을 봤다는 의혹도 받고 있는데, 이것은 삼성SDS가 이재용에게 BW를 인수한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그의 계급적 출신과 배경은 그가 내놓은 정책과 이데올로기에도 반영돼 있다.
대표적으로 안철수는 지난 ‘네 정권의 판단을 신뢰한다’며 제주 해군기지 자체는 필요하다고 본다. 또, ‘국가 신인도’의 문제가 있다면서 한미FTA 폐기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이 사회 1퍼센트의 이익을 반영하며 그들의 옹호를 받아 온 정책을 안철수도 지지하는 것이다.
그가 내놓은 여러 개혁 과제들도 사실 기업주들과 부자들의 이해관계를 크게 해치지 않는 매우 온건한 수준이다. 예컨대 그는 “지속가능성”이 중요하다면서 전면적 복지 제도 도입에 주춤하고 “재정적 부담”을 이유로 보편적 복지에도 비판적이다. ‘무료는 좋지 않다’며 무상 복지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어서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해 부자 증세가 아니라 “중하위층도 형편에 맞게 조금씩은 함께 비용을 부담”하자고 한다.
‘대기업 독식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지만 정작 대기업에 대한 “규제는 없애고 감시 기능은 강화”하자는 식의 실효성 없는 대책들을 내놓고 있다.
이런 점들 때문에 안철수는 한편으로 진보적 대중의 지지를 받지만 다른 한편 보수 세력의 선택지 중 하나이기도 하다. 윤여준, 김종인 등 보수적 인사들이 안철수의 조력자였다는 사실이 그것을 보여 준다.
안철수 자신이 예측하듯이 “차기 정부에선 경제 위기 등으로 국내 상황이 더욱 악화되면 생존을 위한 요구와 주장이 통제하기 어려울 정도로 분출될 것”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대중의 불만을 무마시키는 데 물대포와 곤봉을 앞세우는 이명박식 대처보다 안철수식 대처(대중의 불만을 달래면서 가라 앉히기)가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판단일 것이다.
실제로 안철수는 “근본적 접근”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현실적 여건에 맞춰” 변화하는 게 옳다고 강조한다. 또,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소통과 합의”를 말한다. 청년들에게는 ‘사회구조에 불평만 하지 말고, 도전하고 노력하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그러나 이런 식의 접근법으로는 경제 위기 시기에 고통받는 다수 노동자·민중의 처지가 나아지기가 어렵다.
이미 “노무현 정부 당시 소통과 참여를 앞세우다 결국 재벌과의 ‘협상’으로 귀결”된바 있다(〈미디어 오늘〉 정상근). 재벌·부자 들이 ‘소통·합의’만으로 노동자들을 위한 정책들을 양보할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특히 지금과 같은 경제 위기 시기에 말이다.
당장 ‘밤엔 잠 좀 자자’는 요구에 깡패 폭력으로 대응하는 것을 보라.
문제는 소통과 합의를 통한 점진적 변화가 아니라, 기업주들에 맞서서 노동자들이 얼마나 강력하고 단결된 투쟁을 벌일 수 있느냐다. ‘착한 자본가’ 안철수에게 환상을 갖기보다 독립적으로 투쟁을 건설하고, 이를 뒷받침할 진보적 정치 대안을 건설하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