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 노동자가 더 내야만 보편적 복지가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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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진영 내에는 보편적 복지를 하려면 정규직 노동자들도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견해(이른바 ‘보편적 증세’)가 있다.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가 대표적인데 이들은 노동자들이 건강보험료를 대폭 인상해 무상의료를 하자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이 운동은 대중적 호응과 지지를 얻지 못해 왔다. 그 이유는 첫째, 복지를 늘리려면 그동안 투쟁으로 쟁취한 임금을 일부 포기해야 한다는 ‘협박’에 조직 노동자들이 굴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둘째, 이런 주장이 결국 정부와 기업주들의 ‘정규직 책임론’에 굴복하는 것이고 이는 복지 확대의 원동력인 노동자들의 투쟁을 약화시킬 것이라는 좌파의 일관된 반대 덕분이었다.
당시 〈레프트21〉은 이런 대안이 노동계급의 아래로부터의 투쟁 잠재력을 무시하고 위로부터의 개혁을 추구하는 데에서 비롯한 한계라고 지적한 바 있는데, 최근 이 운동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인 오건호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이 〈미디어오늘〉과 한 인터뷰는 이를 잘 보여준다.
그는 지난 2년여간의 복지국가 운동이 사실상 ‘실패’했다며 그 원인을 민주노총과 진보정당 등 노동자 조직들이 ‘보편적 증세’ 정책을 채택하지않은 데서 찾는다.
그러나 이는 열악한 복지에 대한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복지를 위해 노동자들이 해야 할 일은 스스로 세금을 더 내는 것이 아니라 기업주·부자 들이 양보하게 만들 운동을 건설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복지국가가 건설되는 과정에서는 언제나 이런 운동의 구실이 결정적이었다.
잠재력
조직 노동자들은 그들이 자본주의체제에서 차지하는 물질적 지위 때문에 기업주·부자 들을 강제할 잠재력이 있다.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일손을 놓으면 자본가들은 이윤의 일부가 아니라 그 원천을 잃는다.
그런데 이 잠재력이 아무 때나 발휘되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일손을 놓으려면 단결해야 하고 자신감을 떨어뜨리는 온갖 공격을 극복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보편적 증세’론은 더 열악한 노동자들의 처지에 대한 책임이 정규직의 이기주의에 있다는 ‘정규직 책임론’과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노동자들의 단결을 가로막고 자신감을 갉아먹을 뿐이다.
복지국가 운동이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아직 노동자들이 이런 장애물을 극복하고 본격적인 투쟁에 나서지 못했기 때문이지 거꾸로 양보하지 않아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