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헌법재판소는 여성의 요청에 의한 낙태 시술자를 처벌하는 형법 제270조 1항에 대한 합헌 판결을 내렸다.
이번 위헌 소송은 여성과 성관계를 한 상대 남성이 고소를 한 것이 계기가 됐다. 지난 2010년부터 프로라이프의사회가 낙태 시술자들을 고발하면서 반낙태 캠페인을 벌이자, 일부 남성 등이 낙태한 여성에게 협박, 고소를 하는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이번 판결은 낙태를 불법화하면 여성의 삶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국가와 타인의 통제에 의해 좌우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줬다.
헌법재판소는 ‘사익인 임부의 자기결정권이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공익에 비하여 결코 중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태아는 여성 몸의 일부고, 여성에게 온전히 의존해야만 살 수 있는 존재다. 무엇보다 출산은 여성의 삶과 직결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원치 않는 임신을 중단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인 낙태를 금지한다는 것은 자신의 몸과 삶에 대한 여성의 결정권을 포기하라는 말일 뿐이다.
이 때문에 역사적으로 낙태를 금지한 조건 속에서도 수많은 여성들이 원치 않는 임신을 중단하기 위해 낙태를 선택해 왔다. 결국, 낙태를 처벌하면 낙태를 음성화해 여성들이 더 위험하고 불안한 조건에서 낙태를 하도록 내몰 뿐이다.
2010년 초에도 낙태단속 캠페인 속에서 낙태비가 치솟아 비용을 마련하기 어려운 많은 여성들이 어려움에 처했다. ‘생명 존중’ 운운하는 낙태 반대론자들의 주장은 낙태 처벌이 여성의 생명을 위협한다는 것은 보지 않는다.
한편, 최근 식약청은 사후응급피임약을 의사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에서 의사 처방이 필요 없는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하는 안을 발표했다가 철회했다. 사후피임약이 낙태와 똑같은 효과를 낸다는 우파의 반발을 의식한 것이다.
그러나 사후피임약은 성관계 후 3일 안에 복용해야만 효과가 있는데 의사 처방을 받도록 절차를 번거롭게 하면 시기를 놓쳐 이 피임법을 사용하기 어렵게 된다.
여성의 몸과 삶에 대한 자기결정권이 공문구가 되지 않으려면 낙태를 합법화하고, 사후피임약도 의사 처방 없이 복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