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바뀌네 쇼’ ─ 광폭 사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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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가 8월 20일 새누리당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서 “국민 통합”을 선언하더니 연일 “박근혜가 바뀌네 쇼”를 벌였다.
박근혜는 후보 선출 다음 날, 노무현 묘역에 갔다. 23일에는 반값등록금 문제로 학생 대표들과 만났고, 27일에는 청계천 전태일다리에서 헌화를 시도했다. 심지어 박정희가 죽인 인혁당 피해자 유족들을 만나려 한다는 소식도 있다.
이뿐만이 아니라 김종인을 다시 앞세워 ‘경제 민주화’ 정책을 강조했고, 검사 시절 차떼기 수사로 인기를 얻었던 안대희를 정치쇄신특별위원장으로 영입했다.
그러나 박근혜의 ‘광폭’ 사기극은 역풍을 일으키고 있다.
27일 전태일 열사 유족들은 박근혜의 방문을 공개 거절했고,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태삼 씨는 ‘쇼를 그만 두라’고 일갈했다. 박근혜는 발길을 돌려 청계천 전태일 동상에 헌화를 하러 갔다가 김정우 쌍용차 지부장에게 통쾌한 면박을 당했다.
사실 박근혜는 ‘민주화 세력’의 핵심인 노동운동·진보진영과 ‘화해’할 생각이 눈꼽만큼도 없을 것이다.
박근혜는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면담과 청문회 수용 등을 요구하며 새누리당 당사에 찾아가자 경찰을 시켜 접근을 가로막고 노동자들을 구타·연행했다. 박근혜가 사실상 소유한 정수장학회 산하 영남대의료원과 부산일보의 언론 탄압과 노동자 해고는 악랄하기로 유명하다.
대선캠프 인사도 새로울 게 없다. 김종인과 안대희의 유명세를 앞세웠지만, 막상 새누리당 대선캠프의 돈과 조직을 총괄하는 자리는 최경환과 이주영 같은 친박 핵심들로 채워졌다.
김종인이나 안대희 등은 “바뀌네 쇼”의 장식물일 뿐인데, 그 장식물들마저도 과장 광고로 덧씌워진 이미지가 전부다.
김종인은 비정규직 해법의 걸림돌은 민주노조라고 말하는 자다. 그는 박정희와 전두환 정권 시절에 국회의원과 장관을 하면서 승승장구한 낡고 부패한 인물이다.
노태우 정부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막강 권력을 누리던 시절, 동화은행 비자금을 뇌물로 받고, 노태우 비자금 사건에도 연루돼 실형도 살았다.
그래서 김종인이 2004년 17대 총선에 출마했을 때, 총선시민연대가 비례대표 부적격 후보라고 공표한 바 있다.
안대희도 전형적인 기회주의적 보수의 일원일 뿐이다.
노무현의 사법고시 동기인 안대희는 [자신을 유명하게 해준] 2002년 대선자금 수사 과정에서, 삼성 비자금과 박근혜의 뇌물 수수 부분은 제대로 조사도 하지 않고 넘겨 버렸다.
경제 민주화?
김용철 변호사는 안대희가 삼성 비자금인 걸 알면서도 넘겼다고 폭로한 바 있다.
대법관이 된 뒤에는 ‘1퍼센트 프렌들리’ 판결로 두드러졌다. 〈중앙일보〉조차 그를 당시 대법원에서 “보수의 핵”이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파업 참가를 이유로 전국공무원노조 조합원의 승진을 취소한 울산시장의 조처가 적법하다고 판결했고, 상지대 비리재단의 복귀를 결정적으로 돕는 판결을 했다.
안대희는 벌써부터 박지만과 그의 처 서향희 관련 비리 의혹에 관해서는 “그런 의혹들이야 옛날에 거론된 것”이라며 박근혜 치부 가리개로 나서고 있다.
새누리당은 전태일재단 방문이 무산된 뒤, “갈등을 조장하는 세력을 반드시 물리치고 국민 통합의 ‘1백 퍼센트 대한민국’을 건설하겠다”는 ‘유신 정신’ 충만한 성명을 내놓았다.
쌍용차 해고자를 ‘물리쳐야 할 세력’으로 규정해서 짓밟고 끌어내는 게 박근혜식 ‘국민 통합’인 것이다.
박정희처럼 권력을 휘둘러보고 싶어서 얼마나 안달이 났으면 박근혜가 이런 쇼를 할까 싶다.
그런데 여전히 박근혜는 보수층·영남 기반을 넘어선 ‘표의 확장성’이 없다.
올해 총선에서 박근혜가 경제 민주화와 복지를 내세워 ‘중원’을 차지해서 승리했다는 일각의 평가는 신화일 뿐이다.
위기감을 느낀 우파들이 ‘이명박근혜’로 똘똘 뭉쳐 겨우 패배 위기를 넘겼을 뿐이다. 전국적으로 표를 더하면, 새누리당이 얻은 표는 야당들의 표보다 적다.
박근혜가 보수진영의 확고한 리더로 자리잡은 것은 2004년부터다. 노무현 정부의 온건 개혁조차 반대하면서 “국가정체성 투쟁”으로 맞서는 과정에서 박근혜는 한나라당을 장악했고, 당내 주류가 됐다. 박근혜의 확고한 보수층 기반과 영남 기반은 바로 이때 다져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강한 우파적 성격 때문에 수도권과 청년세대 사이에서, 심지어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을 찍었던 사람들조차 선뜻 박근혜를 지지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지금 박근혜는 이명박과 갈라서지도 못하면서 ‘공공의 적’ 이명박과 어느 정도 선을 긋는 ‘바뀌네 쇼’를 해야 하는 모순에 직면해 있다. 번복 논란 속에서 내곡동과 불법 사찰에 관한 특검을 민주당과 합의한 것도 이런 처지 때문이다.
게다가 중도 보수 성향 사이에서 박근혜와 지지층이 겹치는 것이 바로 안철수다. 바로 그 때문에 경제 민주화와 복지 뿐만아니라, ‘소통과 통합’ 이미지도 보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경제 위기 조짐이 커지면서 주류 지배자들의 반동적 태도가 강화되고 있기 때문에 박근혜의 불안정한 ‘바뀌네 쇼’가 무한정 계속될 수는 없다.
이미 홍사덕의 ‘유신 미화’ 발언 속에 ‘국민대통합’은 고사하고 새누리당 분열의 조짐만 나타나고 있다. “바뀌네” 정책들의 우파적 본질도 전혀 바뀌지 않았다.
박근혜는 5년 전 자신의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우자’는 친재벌·우파 정책) 원칙과 “경제민주화, 복지, 일자리 등 3대 원칙이 결코 배치된다고 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재정 건전성을 무시하면서까지 복지를 하는 것은 반대”한다는 것이 박근혜의 본심이다.
이런 한계 속에서도 박근혜가 대세론을 유지하는 데에는 민주당의 무능과 한계가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민주당의 찌질한 대선 후보 경선과 거듭되는 비리 의혹은 진보·개혁 대중에게 ‘짜증과 분열’을 주고 있다.
김종훈, 안대희 등 박근혜가 올해 들어 영입한 인물들 다수가 민주당 정부에서 중용됐던 인사들이라는 것도 민주당의 한계를 보여 준다. 사실 노동자 가슴에 대못을 박고는 뒤로 어루만지는 척했던 쇼는 민주당도 자주 했던 쇼다.
1997년과 2002년에 보수진영을 분열시켜 정권을 잃거나 대선에서 패퇴하게 만든 것은 경제 위기 요인과 함께 기층의 저항 압력이었다. 이는 진보진영이 지리멸렬한 민주당과는 결이 다른 진보적 대안을 내놓고 반우파 정치투쟁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