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와의 전쟁’을 통해 우파가 노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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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에서 아동 대상 성폭력 사건이 벌어진 후,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은 온갖 처벌 강화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사형 집행 재개 논의와 불심검문도 부활했다.
많은 사람들이 끔찍한 상처를 입은 아이와 그 부모에 연민을 느끼며 이런 비극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길 바라고 있다. 그래서 잔인한 범죄자들에 대한 보복과 처벌 강화에 지지를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정부와 언론이 부추기는 보복의 논리에 휩쓸리기보다는 이 대책들의 실질적 효과를 직시하고 진정한 대안을 촉구하는 것이 성폭력 없는 세상을 위해 진정 필요한 일일 것이다.
사실, 정부가 내놓은 강경책들이 성범죄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전자발찌 제도는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효과를 제대로 살펴보긴 어렵지만,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은 최근 전자발찌를 찬 채 강간을 시도한 사례처럼 전자발찌 착용자가 성범죄를 저지른 숫자가 늘었다는 점이다(2009년 0명에서 2011년 15명). 전자발찌는 이미 범죄가 발생한 후 가해자가 범행장소에 있었는지 여부를 입증할 수 있을 뿐, 예방 효과는 입증된 바 없다.
‘화학적 거세’ 역시 효과가 없긴 마찬가지다. 약물의 효과는 투입할 때뿐이지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약물치료의 특성상 본인 동의 없이 강제로 실시하는 것은 효과가 없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본인 동의 없이 시행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신체 일부를 절단하겠다는 전근대적 ‘물리적 거세’는 말할 나위도 없다.
‘화학적·물리적 거세’는 ‘남성의 참을 수 없는 성 충동이 성폭력의 원인’이라는 잘못된 관념만 재생산하는 역효과를 낳는다. 상당수의 성폭력은 자신과 사회에 대한 분노, 불만, 소외감의 표출이기 때문에 호르몬을 조절한다 해도 성폭력은 일어날 수 있다.
신상공개 확대 역시 범죄를 예방하기보다는 범죄 전력자에 대한 낙인과 배척, 공격을 부추겨 이들의 사회 복귀를 힘들게 한다. 이 때문에 좌절한 개인들이 사회에 대한 분노를 키워 더 위험한 범죄자가 될 수도 있다. 신상공개의 수위가 가장 높은 미국에서는 성범죄가 줄어들지는 않고 오히려 무고한 범죄 전력자들이 공격을 받아 희생됐다.
근거 없는
아동 포르노 제작·배포·소지자에 대한 처벌 강화도 제시되고 있는데, 아동 포르노가 아동에 대한 납치와 폭력을 동반하곤 하기 때문에 제작에 대한 규제와 처벌은 필요하다.
그럼에도 정부와 언론이 말하는 것처럼 포르노 시청이 곧 강간을 낳진 않는다. 포르노의 대부분이 성차별적이거나 폭력적인 내용을 담고 있을지라도 포르노를 보는 모든 사람들이 성폭력을 저지르진 않는다. 포르노는 강간의 원인이 아니라, 성이 상품이 된 극단적 성의 소외가 낳은 결과물이다.
사형 같은 극형조차 범죄발생률 감소와 별 관계가 없다. 유엔 인권위원회는 1998년과 2002년 광범한 조사를 거쳐 사형제가 반인륜적 범죄를 억제하는 효과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호중 교수에 따르면, 한국에서도 사형집행이 중단된 이후 10년(1998~2007년) 동안 살인범죄는 16퍼센트 증가한 데 비해, 사형집행이 빈번했던 1988~1997년까지 10년 동안 살인범죄 증가율은 무려 31퍼센트였다. 뿐만 아니라, 사형 집행 재개 운운한 이명박 정부 들어 오히려 살인 범죄 증가가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정부가 내놓은 처벌 강화 정책들은 잘못된 가정을 전제하고, 성범죄의 실상을 과장하기 때문에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없다.
우선, 성범죄 신고율이 낮아 정확한 실태를 알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강간이나 강간시도 등을 저지르는 사람은 여전히 전체 인구 중 소수고, 아동 대상 성폭력은 훨씬 더 극소수다. 따라서 이런 범죄자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넘쳐나고 우리 아이를 노리고 있다는 식의 얘기는 대중의 공포심을 부추기기 위해 과장된 것이다.
각종 가해자 격리 정책들은 한 번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또다시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다는 가정을 전제한다. 그러나 국제 인권단체인 ‘휴먼 라이츠 워치’는 매년 미국에서 일어나는 성범죄의 87퍼센트가 성범죄 전력이 없는 사람들이 저지른다고 지적한다.
2007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분석 결과를 봐도, 성폭력 범죄자의 50퍼센트가 재범자인데 그중 14퍼센트만이 이전에도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동종 재범자였다. 이것은 1997~2006년 10년간 전체 범죄의 동종재범률(30~35퍼센트 내외)에 비해서 낮은 편이었다.
또, 대부분의 성범죄 대책들은 성범죄가 주로 낯선 사람이 길거리에서 덮치는 것이라는 가정 위에 나온 것이 많다. 그러나 성범죄의 압도 다수는 아는 사람에 의해 벌어진다. 2010년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상담 분석에 따르면, 가해자가 아는 사람인 경우가 85퍼센트를 차지했고 13세 미만 어린이 피해 중 모르는 사람에 의한 것은 5퍼센트가량밖에 되지 않았다.
사실, 성범죄 처벌 강화의 진정한 목적은 딴 곳에 있다.
2009년에 용산참사 항의 운동이 계속되자 정부는 ‘강호순 연쇄살인사건’을 “긍정적 프레임으로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는 선거 때만 되면 범죄에 대한 공포심을 부추기며 더 센 처벌을 부르짖었다.
얼마 전 박근혜가 나주 사건을 빌미로 1백 일 동안의 ‘범국민 특별안전 확립기간’ 운운한 것도 대선을 1백 일가량 앞둔 시점에 사회 분위기를 흉흉하게 만들려는 의도와 관련 있을 것이다.
흉악범죄에 대한 공포심 조장은 정권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것이다. 감시제도 강화는 경찰력 증강의 구실이 될 가능성이 크고, 지배자들의 통제력을 강화하는 데 쉽게 이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