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현상’과 안철수 사이의 커지는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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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가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면서, 우파는 역겹게도 ‘그도 성인군자가 아니라 우리와 비슷하게 반칙·특권에 얼룩진 그저 그런 자다’라는 것을 입증하려 애쓴다.
그러나 진짜 ‘검증’은 지금부터인 듯하다. 안철수는 BW(신주인수권부사채)를 헐값으로 발행한 것을 통해 수백억 원의 부당이득을 챙겼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데, 이 문제가 국정감사에서 어느 정도 밝혀지면 파장이 꽤 클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기성 정치 세력에 대한 반감을 넘어서, 사람들의 분노와 변화 열망을 제대로 대변할 만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안철수 지지율은 흔들릴 수 있다. 지난 몇 차례 대선에서 이른바 ‘제3후보’의 실패가 이것을 보여 준 바 있다.
그런데 출마 선언 이후 안철수의 행보를 보면, 그가 ‘안철수 현상’에 담긴 대중의 열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안철수의 생각》에서 ‘복지, 정의, 평화’를 제시했던 그는, 출마 선언에서는 ‘성장과 결합된 복지’, ‘안보와 균형 맞춘 평화’를 제시했다. “현 집권 세력이 확장하는 것에 반대”한다던 주장은 “통합의 정치”(사실상 타협의 정치)로 바뀌었다. 민주당과 새누리당 사이층(이른바 ‘중도층’)을 겨냥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안철수의 ‘우클릭’을 상징하는 것은 이헌재 영입이다. 이어서 영입한 ‘재벌개혁론자’ 장하성도 사실 이헌재와 통하는 면이 있다.
이들이 자유로운 시장 경제가 효율적이라고 믿는 철저한 시장주의자들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의 지적처럼 김대중 정부 시절 이헌재의 경제민주화와 재벌 개혁은 실제로는 “경제 자유화”와 “주주 자본주의화”일 뿐이었다. ‘소액주주 운동’을 하고 ‘장하성 펀드’를 만든 장하성의 문제의식 역시 기업이 ‘법적 주인’인 주주를 위해 이윤 극대화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장하성 펀드는 ‘기업 소유 구조 개혁’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주주가치 극대화를 요구하는 사모펀드(투기자본)와 다를 바 없었고 외국 투기자본과 협력하기도 했다.
이헌재의 ‘재벌·금융 개혁’은 대규모 정리해고를 낳았고, ‘장하성 펀드’는 주주의 투자수익을 위해 노동자의 희생을 강요한 점에서 반노동자적이었다.
자유경쟁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안철수 또한 창업이 활성화되고 벤처·중소기업이 활성화되면 자연히 일자리도 늘고 경제가 성장할 거라 믿는다. 안철수의 ‘혁신경제’ 구상은 이런 생각에서 나왔다.
시장 자유주의
사실 이런 안철수의 구상은 기업이 잘 돼야 일자리가 생기고 그러면 노동자도 잘 먹고 잘살 수 있다는 전형적인 기업가적 관점이다. 대기업 중심이 아니라 중소기업과 청년 창업을 우선하는 차이가 있지만, 사실상 또 다른 버전의 ‘낙수 효과’인 셈이다.
그런데 이렇게 “자본주의의 역동적 생명력을 굳게 믿는 시장 자유주의의 관점”은 복지 확대 요구와 충돌을 빚을 수밖에 없다. 국가가 제공하는 복지는 ‘1원 1표’라는 시장주의 원칙과 근본에서 어긋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안철수는 무상 복지와 보편적 복지에는 거리를 둬 왔다.
안철수가 “근본주의적 접근은 안 된다”며 민주당 수준의 개혁과도 거리를 두는 것에서 그의 한계는 더욱 두드러진다. 민주당이 ‘근본주의적’이라니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다.
이렇게 보면 안철수의 ‘생각’에 이른바 ‘노동’ 의제가 보이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안철수에게 ‘경제민주화’란 대자본가와 중소자본가 사이의 공정한 경쟁 문제일 뿐이다. 그래서 안철수는 쌍용차 노동자들과, 김진숙과 에스제이엠과 현대차 하청 노동자들, 그외의 수많은 싸우는 피억압자들에게도 ‘착한’ 사람이 될 수 있는지 하는 물음이 나오는 것이다.
게다가 스스로 ‘안보’는 ‘보수’라던 안철수의 통일·외교·안보 분야의 ‘멘토’는 윤영관이라고 한다. 최근 안철수가 발표한 ‘굳건한 한미동맹에 기반한 다자 간 외교’와 ‘업그레이드 포용정책’은 노무현 정부 초대 외교부 장관 출신 윤영관이 오래전부터 해 온 주장이다.
그러나 윤영관은 당시 친미 외교를 주도해 노무현 정부 내에서조차 이른바 ‘동맹파’로 분류됐고, 이라크 파병을 추진한 장본인이었다. 윤영관은 국가보안법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천안함 사건 당시에도 정부에 강경 대응을 주문하는 등 매우 보수적인 인물이다.
요컨대, 이헌재·장하성·윤영관과 한 배를 탄 안철수의 정치는 새로울 것이 없고, 그의 구상이 구체화하면 할수록 ‘안철수 현상’과 안철수 사이의 모순은 더 커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