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의 ‘혁신경제’와 이헌재:
시장과 관료에 대한 굴복과 실패의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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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9일 안철수 후보의 출마 기자회견장에 전 경제부총리 이헌재가 나타나 공개적인 지지를 밝혔다. 이른바 ‘모피아’의 대부라고 불리는 이헌재가 안철수의 ‘경제 멘토’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안철수 대선캠프의 금태섭 상황실장은 “내년 세계경제가 위기를 맞을 텐데 그 과정에서 이 전 부총리가 가진 지혜가 도움될 것”이라며 이헌재 영입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이헌재가 경제 위기 때 보여 준 ‘지혜’는 대량 정리해고, 공공부문 민영화, 가계대출 방조, 금융 자유화 등으로 경제 위기의 고통을 노동자·민중에게 전가하는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이었다.
이헌재는 김대중 정부 시절 금융감독위원장과 재정경제부 장관을 거치며 4백 개가 넘는 금융기관과 재계 2위의 대우그룹을 퇴출시켰다. 그로 인해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된 노동자들이 거리에 넘쳐났다.
이헌재는 외환은행 불법 매각에도 책임이 있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헐값에 사들일 때 이헌재는 론스타의 법률 자문을 맡은 김앤장법률사무소 고문이었다.
또, 이헌재는 금융시장을 개방하고 규제를 완화하는 신자유주의 금융 세계화를 주도하고, 최근 커다란 문제가 되고 있는 가계부채와 부동산 거품에도 일조한 인물이다.
금융감독원장이었던 1999년에는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한도를 폐지해, 신용카드 대란을 가속화시켰다. 참여정부 경제부총리로 있을 때는 종합부동산세를 누더기로 만들고 1가구 3주택 양도세 중과를 연기시키고 분양원가 공개 반대에 앞장서, 부동산 거품을 키우는 데 일조했다.
결국 안철수는 스스로 한국 경제의 주요 문제로 지적한 ‘경제적 집중’과 ‘양극화 심화’를 주도한 장본인을 ‘경제 멘토’로 삼고 있는 것이다.
장본인
그러나 이헌재가 안철수의 ‘경제 멘토’로 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헌재가 경제 수장일 때 주도했던 벤처 투자붐 속에서 성공한 게 바로 안철수다. 두 사람의 경제 현실 진단과 해법도 일치한다.
안철수는 대선 출마 선언 이후에 거듭 “마치 자전거의 두 바퀴처럼 경제민주화, 복지뿐 아니라 혁신적인 경제가 뒤따라야 한다”며 ‘혁신경제’를 화두로 내세우고 있다.
청년층에 대한 창업 지원 등을 통해 경제적 혁신과 성장을 이루면 일자리와 복지 재원이 늘어나 경제민주화와 복지 확대가 이뤄지고, 이는 다시 ‘혁신경제’의 디딤돌이 된다는 논리다.
이런 문제의식은 이헌재가 최근 발간한 《경제는 정치다》에서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창출해 내는 창조경제가 되지 않으면 경쟁력을 잃게 된다”며 한국 경제의 대안으로 ‘창조경제, 창의기업, 열린시장·사회’를 제시한 것과 같다.
이처럼 경제민주화와 복지 확대를 하려면 경제 성장이 꼭 필요하다는 논리는 사실 새누리당 같은 우파의 전통적인 논리였다. 대기업 중심이 아니라 중소기업과 창업 지원으로 경제 성장을 이루겠다는 점이 우파들과의 차이점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전 세계적인 경제 위기로 세계 각국의 성장률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창업과 도전을 유도해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안철수의 ‘혁신경제론’은 허황돼 보인다. 결국 경제 성장이 제대로 되지 않을 때, 그동안 안철수가 주장해 온 경제민주화나 복지 확대도 어려워질 것이 뻔하다.
그런데 이미 불길한 조짐이 보이고 있다. ‘경제 멘토’인 이헌재는 신자유주의자에 걸맞게 최근 전직 재경부 장관들이 주도해 만든 ‘건전재정포럼’에 참여해 복지 확대에 반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또, 이헌재에 대한 비판을 피해 가려고 안철수 쪽이 새롭게 내세운 장하성 교수도 “복지는 국민 모두의 세금으로 충당하는 것이지 재벌들에 세금을 더 내게 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며 비슷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안철수 캠프에서 경제 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도 “주워 담을 수 없는 (복지) 공약을 내세우는 것은 안 후보 스타일도, 내 스타일도 아니다”며 재정건정성을 강조했다.
안철수가 설사 대선에서 승리하더라도 대기업·부유층과 경제관료에 굴복한 노무현 정부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