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는 왜 투표시간 연장에 결사반대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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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세론은 잘 먹히지 않는데 경제 위기는 갈수록 심화하는 상황 속에서, 지배계급 전반은 위기감이 커져가는 듯하다.
대세론에 금이 간 뒤 좌충우돌하던 박근혜가 이제 우파 결집으로 방향을 좀 더 분명히 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NLL” 문제로 하루에도 서너 개씩 논평을 내며 야권을 “종북”으로 몰아붙였다.
민주통합당 김광진이 백선엽을 ‘민족 반역자’라고 한 것도 문제 삼았다. 만주에서 항일투쟁부대를 때려 잡는 일본 군인이었던 자를 옹호하며 자신의 뿌리를 드러낸 것이다. 급기야 낡아 빠진 우익인 선진통일당과 합당하면서 ‘1백 퍼센트 국민대통합’은 ‘1백 퍼센트 보수대통합’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여기에 발맞추려는 건지 ‘레임덕’ 이명박도 5년을 끌어 온 영리병원 도입 조처를 강행 처리했다. 내곡동 특검으로 드러난 사실만이 아니라 지난 5년간 저지른 온갖 범죄적 행태와 악행 때문에 당장 구속수사 받아도 모자란 자가 죄목 하나를 추가한 것이다.
사실 그동안 박근혜는 우파 결집을 출발점으로 삼으면서도, 중도층으로 외연을 확대하려고 무진 애를 써 왔다. 그런데 투표가 두 달 남은 시점에서 “[지지율] 확장성의 한계”를 절감하는 듯하다.
〈내일신문〉의 10월 초 설문조사는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되는 후보’ 1위로 박근혜를 지목했다. 지역에서는 수도권, 세대에서는 30~40대, 심지어 중도층에서도 박근혜 거부 응답은 상대 후보들보다 두세 배나 높았다.
그래서 박근혜는 집토끼라도 단단히 단속하는 게 남는 장사라는 계산을 한 듯하다. 박근혜 반대층의 투표율이 낮거나 분열하면 견고한 우파 지지층 결집으로도 승산이 있기 때문이다. 올해 총선에서도 이런 책략이 민주당의 무능 속에서 효과를 거둔 바 있다.
박근혜가 ‘투표 시간 연장’에 그토록 결사 반대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체육관 선거로 정권을 유지한 박정희의 후계자로선 국민투표 자체가 “낭비”로 여겨지기도 할 터다.
진흙탕
NLL에 이어서 우파는 ‘성장’ 프레임도 꺼내들고 있다. ‘무상복지’를 ‘경제민주화’라는 모호한 구호로 물타기 해 놓은 것도 성에 차지 않던 우파들이 이제 ‘안보’와 ‘성장’ 프레임으로 이데올로기 지형을 더 오른쪽으로 이동시키려는 것이다.
박근혜는 31일 한 강연회에서 “무상복지는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옳지 않으며 경제민주화와 성장, 투트랙으로 가야 한다”며 달라진 강조점을 선보였다.
그러나 성장을 강조하면서 새누리당이 막상 내놓은 경기부양 방안에는 복지 예산이 절반이나 된다. 혼돈 그 자체인 것이다.
박근혜와 새누리당의 평소 ‘우파 스타일’과 어울리지 않게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내세우는 것도 어색하기 짝이 없다. 선진당과의 통합도 결국 반발과 이탈이 심해 겨우 철새 이인제 하나 건진 것에 지나지 않게 됐다.
이처럼 박근혜와 집권당은 우파 본색으로 돌진하면서도 혼란돼 있다. 이는 이들의 모순된 처지를 보여 준다.
박근혜는 집권당 위기를 벗어나려는 우파 결집에는 적격자였지만, 애초 문제의 뿌리인 우파 정부에 대한 반감을 해소하는 데는 적격이 아니다.
한편, 올해 3분기 성장률이 제로에 가까운 상황에서 10월 들어 포스코가 본격 자산 구조조정에 들어가고 현대중공업이 인력 감축에 나서는 등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박근혜 대세론은 잘 먹히지 않는데 경제 위기는 갈수록 심화하는 상황 속에서, 지배계급 전반은 위기감이 커져가는 듯하다. 여론의 역풍을 맞으면서도 집권 우파가 ‘안보’(종북)와 ‘성장’(복지 거부) 프레임을 꺼내들고 문재인과 안철수를 단도리하려는 까닭이다.
문재인과 안철수 역시 문제다. 이 둘이 우파 프레임에 타협하고 굴복하면서 박근혜가 모순과 위기 속에서도 살아날 기회를 계속 주고 있다.
사실 박근혜가 말한 ‘경제민주화와 성장의 투트랙’은 안철수가 먼저 내놓은 ‘두바퀴 경제’와 흡사하다. 문재인은 “NLL에 대한 어떤 도발도 용납하지 않는 확고한 안보능력” 운운하며 우파 공세에 장단을 맞췄다.
노동자들이 스스로 투쟁에 나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 중요한 까닭이다. 진보진영은 이런 투쟁들을 엮어서 독립적으로 진정한 진보 의제를 부각하려고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