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에 대한 실망과 양극화가 드러난 미국 선거
〈노동자 연대〉 구독
재선한 오바마는 “미국이라는 하나의 가족이 고락을 함께하자”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그 어느 때보다 ‘하나’가 아니다. 실업률은 오바마 1기 정권 동안 가파르게 올라갔다. 빈부 격차는 그 어느 때보다 벌어졌다.
이번 대선은 이런 경제적 양극화가 정치 영역에 깊이 드리워진 채로 치러졌다. 출구 조사를 담당한 여론조사기관은 “투표에 참여하는 평범한 미국인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지난 사반세기를 통틀어 그 어느 때보다 양극화돼 있다”고 지적했다.
가장 뚜렷한 지표는 소득에 따른 계급 분단선이었다. 표에서 보이는 것처럼, 소득이 낮은 층위에서 오바마 지지가 더 높았고, 소득이 높을수록 롬니 지지가 더 높았다.
불안정노동에 종사하거나 실직 중인 18~29세 사이의 청년층에서, 노동과 가사의 이중고에 시달리는 30대 워킹맘 사이에서 오바마 지지율이 올라갔다. 노동계급이 밀집한 대도시에서는 70퍼센트에 달하는 사람들이 오바마를 지지했다.
하지만 이번에 ‘부자도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말하는 오바마가 싫었던 지배자들이 공화당에 기부금을 더 몰아준 것은 사실이지만, 민주당 역시 엄청난 기부금을 챙겼다. 이번 선거에 두 당이 쓴 돈은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그만큼 기업들에게서 많은 후원과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거의 반세기 동안 인종차별주의를 가장 중요한 선거 전술 중 하나로 사용해 온 공화당은, 이번 대선에서도 인종 문제를 계속 물고 늘어졌다. 공화당 지지자들은 “백악관에 백인을 다시 집어넣자”, “히스패닉 계는 ‘셀프 추방’돼야 한다”며 공격을 퍼부었다.
악질적 인종차별 선동은 노예제 등 인종차별의 악법이 더 오래까지 존재했던 지역에서, 노동계급이 밀집해 있지 않은 농촌 지역에서, 인종 장벽을 넘어 함께 투쟁한 경험이 적은 곳에서 더 잘 통했다. 공화당은 이 지역에서 백인과 흑인의 이해관계가 대립돼 있다는 식으로 주장해 인종차별적 백인 노동계급 표를 가져갔다.
하지만 오바마와 민주당은 인종차별에 진지하게 도전하지 않았다. 민주당은 유색인 노동자·농민 들이 공화당의 악선동에 반발한 데서 조용히 반사이익을 챙기기만 했다.
반사이익
지난 대선에서 오바마를 지지했던 7백만 명이 오바마 4년에 실망해 이번에는 투표에 불참했음에도 민주당이 승리한 데는 이런 종류의 반사이익도 한몫했다. 공화당이 되면 중산층이 붕괴하고 유색인종이 가혹한 차별에 시달릴 것처럼 보인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공화당은 미국에 그나마 있던 사회복지를 대폭 민영화하고 정부의 공공지출을 삭감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냈다. 이는 한편으로 민주당이 공화당에 대한 공포를 조성하기 쉽게 해 줬다.
다른 한편에서, 이런 고통전가 시도는 노동자들의 분노를 불렀다. 경합 주 대부분이 민주당으로 기운 데에는 이런 분노가 있었다. 분노는 강경 우파 공화당 주지사들에 맞서 노동계급이 전투를 치른 위스콘신과 오하이오 같은 지역에서 더 뚜렷이 드러났다. 이 지역 조직 노동자들은 다른 지역보다 투표율도, 민주당 지지율도 더 높았다.
하지만 오바마는 벌써부터 그나마 남았던 기대를 배신하고 있다. 당선 몇 시간 후 오바마는 예멘을 무인전투기로 폭격했다. 11월 14일,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폭격해 수십 명의 사상자를 낸 데 대해서도 오바마는 “우리는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이 이스라엘 남부에 퍼부은 폭격을 강력 규탄한다”며 이스라엘을 옹호하고 나섰다.
국내 정책에서도 벌써 중요한 후퇴의 조짐이 보인다. 오바마는 부자 감세를 지속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미 선거운동 기간 중에 오바마는 당선 후 제일 과제를 복지재정 삭감을 통한 재정 안정화라고 꼽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선거는 그림의 밝은 부분 또한 보여 줬다. 대선과 함께 시행된 주민투표에서 3개 주가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는 등, 미국 진보운동의 오랜 염원들이 일부 이뤄지기도 했다. 공화당에 대한 분노처럼, 이는 명백히 성장하는 운동의 기세를 담은 것이다. 수십 년 만에 분출하고 있는 노동계급의 투쟁, 긴축과 차별에 맞선 저항이 더 성장해 오바마와는 다른 대안 건설로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