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 13일 〈레프트21〉이 힘찬 첫발을 내딛은 지 이제 4년이 지났습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레프트21〉의 뿌리는 2003년 2월 15일부터 발행된 반전·반자본주의 신문 〈다함께〉에서 시작됩니다.
〈다함께〉는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국제 반전 운동 물결 속에서 탄생했습니다. 그 뒤 〈맞불〉, 〈저항의 촛불〉로 이름이 바뀌면서도 꾸준히 발행돼 왔습니다. 그리고 2009년부터 〈레프트21〉이라는 제호로 새출발했습니다. 길게 보면 10년의 역사입니다.
〈레프트21〉은 2008년 촛불 항쟁과 미국발 세계경제 위기의 여파 속에 태어났습니다. 거대한 촛불과 심각한 자본주의 위기를 겪으며 대안을 찾는 사람들의 길잡이가 되려 했습니다. 실제로 지난 4년간 〈레프트21〉은 우파 정부의 경제 위기 고통전가와 역주행에 맞서는 사람들의 손에 쥐어진 날카로운 무기였다고 자부합니다.
2010년 말에 점거 파업을 벌이던 한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의 말입니다. 하루에 김밥 한 줄, 초코파이 하나로 버티던 노동자들에게 〈레프트21〉은 그만큼 소중했던 것입니다.
〈레프트21〉은 용산 참사 항의 투쟁, 쌍용차 점거 파업 등 투쟁의 한복판에서 투사들의 목소리가 되려고 했습니다.
우리의 심장을 뜨겁게 달군 아랍 혁명의 소식도 독자들의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보였습니다. 긴축에 맞서 수십 차례나 총파업을 벌인 그리스와 유럽 노동자들의 열기도 〈레프트21〉을 빛나게 했습니다.
무엇보다 〈레프트21〉은 고장 난 자본주의가 아닌 근본적 변혁의 대안을 제시해 왔습니다.
〈레프트21〉은 전국 곳곳 작업장과 대학 등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고자 했습니다. 이것은 기자 몇몇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독자들이 바로 현장의 리포터로서 적극 기고해 지면을 빛내 줬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레프트21〉의 지난 4년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2010년 천안함 정국에서 “안보 위기는 사기다”라고 정부를 비판한 〈레프트21〉을 판매하던 지지자들에게 불법 딱지를 붙이려고 했습니다. 우리의 입을 틀어막으려는 시도는 박근혜 시대에 더욱 악랄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레프트21〉은 결코 무릎꿇지 않겠습니다.
99%의 진실과 저항의 승리를 위한 〈레프트21〉의 전진은 박근혜 시대에도 계속됩니다.